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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이자 동료, 동반자인 철도

“철도 속에 인생이 담겨 있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칙칙폭폭’이라는 친숙하고 다정한 표현 속에 깃든 철도는 동심의 친구이자 일상의 동료, 여행길의 동반자로 우리 곁에 늘 존재해왔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 땅에서 탄생하고 자라나며 철도를 접하는 이유는 거의 동일할 것이다. “늘 거기에 철도가 있으니까….” 하지만 왜 거기에 있는지,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이유와 근간은 잘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치열한 생존 욕망과 철저한 자기방어로 보이지 않는 벽을 쌓으며 냉혹한 현실에 이른 이 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당장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간다고 해도 창밖에서 정다운 풍경을 맘껏 보여주는 열차를, 담장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자연의 산물을,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가 선사하는 푸른 상공을 느끼지도 보지도 못한 채 손안에 든 가상현실만 들여다보는 게 흔한 일일 것이다. 그런 우리 곁에 가까이 있는 철도의 존재감을 다시 제시하고, 철도가 지닌 명확한 성격을 재확인해준 책이 바로 <기차가 온다>라고 말하고 싶다.

철도를 사랑한 나그네에게 다가온 한 권의 책

나는 철도인도 아니고 철도에 대해 식견이 넓은 사람도 아니다. 철도에 대한 감성적 애착을 지닌 나그네라고나 할까? 그런 나에게 맞는 철도 관련 서적은 사실 그동안 찾기가 어려웠다. 눈에 띄는 거라곤 철도인을 위한 전문 서적이나, 동심을 자극하는 그림책이나,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활성화한 기차 여행 관련 취미 서적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철도 관련 서적이 출간되는 경우도 흔치 않았기에 현시점까지 반영된 책이 없던 것도 사실이다.

역사가 담긴 책이 출판되고, 세월이 지나 독자가 그 책을 읽기까지 시간 차로 인해 그동안의 역사 기록이 결여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급속한 발전과 새로운 정점을 이룩해가는 현 철도의 변혁을 책에서 보기 어려웠다는 것에 꽤 큰 아쉬움이 있었다 (예를 들면 SRT, ITX 열차, 특급 급행과 관련한 사항들). 그런 의미에서도 <기차가 온다>는 나에게 큰 흥밋거리를 안겨준 따끈따끈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더 흐르고 새로운 철도 기술과 차량이 나오면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또 다른 역사가 생기겠지만, 이 책이 120년 전 이 땅에 철도가 싹트기 시작한 시간부터 최근까지의 내용을 총망라한 집약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랫동안 사랑받을 책이라는 확신엔 변함이 없다. 나는 이 책을 이틀에 걸쳐 읽었다.

하루는 집에서 포트와인에 달콤한 안주를 곁들여 신선놀음하며 읽었고, 그다음 날엔 철도박물관과 63빌딩 전망대에서 철도의 기운을 물씬 느끼며 읽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이 책이 선사하는 세계에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고 해도 될 것이다. 목차만 봐도 느낄 수 있겠지만 이 책은 학문적인 접근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 속으로 진입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다. 책이라는 것이 시작부터 너무 가벼우면 독자의 호기심이 떨어지고, 너무 무거우면 독자에게 부담감을 줄 수도 있을 텐데, 이 책은 그렇지가 않았다. 상식에서 출발해 흥미로운 내용으로 심화되며, 읽는 내내 부드럽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상식에 재미를 더한 구성

일반적으로 ‘철도’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게 철도 차량을 시각적으로 보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량을 눈으로 확인할 때 기차 또는 전철(지하철)로 분류할 수 있으며, 이를 이용해 여정을 떠나거나 좀 더 자세히 지식을 쌓거나 하는 과정은 그다음 일이다. 이 책은 첫 단원부터 흥미를 유발하는데, 최근에 선보이는 철도 차량에 대한 정보까지 싣고 있어 흥미가 배가되는 게 사실이다.

다양한 철도 차량에 대한 사진과 내용을 열거했고, 그렇게 몰입감이 충만해진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조금 더 디테일한 전문성을 알려주며, 대부분 철도를 이용할 땐 생각하지 못한 궁금증까지 시원하게 해결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이 책의 내용은 굉장히 친절하고 정감 있게 다가온다. 철도 관련 전문성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생소한 철도 용어를 보면 ‘이게 뭐지?’ 궁금증이 생길 수도 있는데, 작가는 바로 뒤에 그 용어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수록했다. 그뿐 아니라 전문성 있게 쓴 내용 뒤엔 바로 이해하기 쉽게 친숙한 비유를 덧붙였다.

이는 모르는 단어나 내용으로 정독의 흐름이 끊길 일이 거의 없다는 뜻도 될 것이다. 정감 있는 내용은 작가의 심경이 담긴 글귀나 책에 재구성한 역사 신문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꽤나 재미있다. 단순히 철도에 대한 내용을 설명하고 시각 자료를 싣기만 한 것이 아니다. 작가의 감성, 바람 등을 읽으면 철도에 대해 더 마음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론적인 배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교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듯 역사 신문 기사를 활용한 점 역시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철도의 역사를 고증하는 것을 넘어 그 시대로 역행하며 그 현장에 잠시 공존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역사를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해준 매력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 보니 소설이나 시나리오도 아닌데 작가가 언급하는 내용에 다양한 리액션을 하게 된다. 이 책이 철도에 대한 사실을 다룬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학문적이지만도 않아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작가와 대화를 하는 것 같다. 읽는 독자의 마음에도 생동감이 흐르니 한 장 한 장 넘기는 재미가 얼마나 깊이 스며드는지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은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면과 현실 사이, 생생한 독서의 시간

아까도 말했듯 나는 철도박물관에서도 이 책을 읽었다. 수많은 철도 차량이 적연부동한 곳에서도 특히 눈길이 가는 한 차량 앞으로 다가갔다. 내 어릴 적 기억에 서려 있는 푸른 열차가 그곳에 있었다. 달달거리며 독특한 구동 소리를 내던 1호선 초저항은 지금은 영원한 잠에 빠져들어 있지만 내겐 철도의 동심과 애착을 준 최초의 열차였다. 현재를 달리며 쉴 새 없이 오가는 열차들의 소리가 스며드는 정온한 초저항 객실에서 즐겁게 이 책을 마저 읽었다. 그것은 분명히 즐거운 사색이었다.

책에 특별 열차와 철도박물관 대목이 나왔을 땐 더없이 기뻤다. 심지어 책에 실린 사진 속 특별 열차는 바로 내 뒤에 있던 그 열차와 똑같은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은 것이고 나도 계산하지 않은 것이지만, 이 책은 특별히 내게 묘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박물관에 온 김에 구경을 하는 등 다섯 시간을 있다가 박물관을 나와 63빌딩 전망대를 찾았다. 살아 숨 쉬는 철도의 중심을 내려다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기 때문. 박물관에서 본 디오라마 속 모형 열차들처럼
실제 열차들이 움직이고 있었는데 신기하고도 신비로웠다. 유유하고 우아하게 흘러가는 열차를 보며 아련한 무언가가 솟아났다.

카페에서 시원한 크루저 칵테일을 마시며 남은 책을 마저 읽고 열차를, 선로를 오도카니 바라봤다. 용산역 인근 옛 서울 정비창 터가 개발을 위해 싹 비워져 그런지 열차들이 용산역에 진입하고 출발하는 과정까지 다 보였다. 책을 읽고 내려다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과거를 역사로 남긴 채 철도는 현재를,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사다난한 우리네 영혼을 묵묵히 감싸주고 수호해주며 오늘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시간은 눈 깜짝할 새 흘러가며 새로운 역사를 일구고 있으며, 세월은 그런 지난 뒤안길을 발판 삼아 오늘의 철도를 만나게 해주었다. 느림의 미학을 거슬러 고성능화되고 고성장해나가는 철도의 정점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시간을 더욱 잘게 분배하며 더 넓고 더 다양한 삶을 영위하게 되었다.

이는 분명 1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그 시대, 여객 운송에 혁신적으로 등장한 이래 변혁과 감고를 겪고 인내를 감수하며 지금까지 쭉 곁에 있어준 수많은 이의 노고 덕분임이 틀림없다. 안전, 안락, 낭만, 신속 등 끈끈한 신뢰를 주며 매일 생명력을 지닌 철도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은 이 시대에 크나큰 축복일 것이다. 그 고마움에 어느 순간 괜히 두 눈이 그렁그렁해지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귓가에 음악이 들려오고 눈앞에 전동차 한 대와 중련 편성의 KTX-산천이 철교를 지나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여행이자 길잡이가 되는 <기차가 온다>

추억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배경음악으로 쓰인 ‘푸른 지구’라는 곡이 있는데, 매회 끝날 때 마무리 겸 다음 여정을 기약하며 기차가 저 멀리 우주로 뻗어가는 장면에서 이 음악이 나오곤 했다. 그 장면의 영향 때문인지, 선율 자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주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이 음악을 들으며 열차를 바라보노라면 아련한 무언가가 생기곤 한다. 헬리오스의 태양 마차에 짙은 황금빛이 드리우던 시각, 한강철교를 유유히 흐르던 그 열차들을 내려다봤을 때 역시 그러했다.

<기차가 온다> 덕분에 철도라는 이름 아래 즐거운 여행을 한 것 같다. 누가 읽든 좋은 영향력을 주는 귀한 책이다. 철도에 지식이 없는 이에겐 한 분야와 역사를 알게 해주고 더 나아가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며, 철도의 길을 바라보는 이와 이미 그 길을 걷고 있는 청춘에겐 따뜻한 길잡이가 될 것이며, 장구한 철도의 역사를 함께 일궈온 관록의 철도인에겐 긍지를 불어넣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코레일 취업을 목적으로 대부분 지극히 사회적 현실이 반영된 현시점에서 이 책은 그들에게 철도라는 이름의 자부심을 일깨워주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심고의 시간을 마련해줄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철도 역사는 특정 계층만 겪은 먼 동네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책을 덮은 뒤에도 “그땐 그랬지”라며 늘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는 얼마든지 있다. 세대 차이를 넘어서는 푸근하고도 정감 있는 소통의 소잿거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이 책이다.

책을 다 읽은 뒤 찾아온 희열을 느껴보고, 열차에 탑승했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철도가 선사하는 풍경을 만끽해보자. 열차가 지나는 순간순간 책에서 언급한 요소를 직접 만났을 때의 작은 희열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곁에 있는 철도라는 존재가 한층 부각되고 무거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앞으로 진화해갈 철도의 모습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작가의 글귀를 인용하자면 이용자 편의를 지향한다는 원칙 안에서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더욱 성대하고 안전한 진보로 도약해나갈 철도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을 맘껏 느껴도 될 것이다. 이 책을 완독함으로써 철도를 위해 애써주고 꿈을 꾸는 사람에 대한 경의를 한층 더 품게 되었다.

역장으로 있는 작가는 물론, 오늘의 철도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그 모든 이에 대한 감사와 헌정을 담아 책 곁에 하얀 장미꽃과 라그라스꽃을 두기도 했다. 하얀 장미의 꽃말엔 ‘존경’이, 라그라스의 꽃말엔 ‘당신의 친절에 감사합니다’가 담겨 있다. 우리네 일상에 철도가 스며들어 있고, 우리 역사에 철도가 공존해 있음은 묵묵히 애써주고 철도를 부드럽게 호령해주는 이들의 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기차가 온다>

저자 배은선 출판사 지성사 출간일 2019년 6월 28일

이 땅에 첫 기차가 달리기 시작한 지 올해로 120년. 한 세기 넘게 우리 산업과 문화, 역사를 이끄는 주역이자 배경으로 함께한 기차에 대해 풀어낸 흥미진진한 이야기책이다. 침략과 수탈의 도구이던 기차가 현재에 이르러 친환경 녹색 성장을 주도하는 첨단산업의 상징이 되기까지, 재미있는 글과 구성, 희귀 사진 자료 등으로 풍부하게 구성한 책은 현직 철도인과 철도 마니아 등 철도에 관심이 많은 이는 물론 보통 사람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철도 교양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철도청 역무원으로 철도에 입문한 후 수송원·차장 등을 거쳐 부역장과 역장을 지냈고, 2003년 10월 고속철도 개통을 홍보하기 시작해 2016년 1월 말까지 콘텐츠 생산과 관리, 배포, 철도사 편찬, 철도박물관 관리 업무 등을 담당했다. 2016년 2월 본사를 떠나 영등포역 역무팀장, 관리역 부역장을 거쳐 지금은 송탄역 역장으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