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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과는 엄연히 다른 벽오동

오동에는 참오동을 비롯해 개오동, 꽃개오동, 벽오동, 당오동 등 여러 종이 있다. 그러나 이름만 같을 뿐 생물학적 갈래는 모두 다르다. 현삼과인 오동이나 참오동과 달리 벽오동(碧梧桐)은 벽오동과이며, 개오동과 꽃개오동은 능소화과이고, 당오동은 마편초과다. 오동과 벽오동은 갈래가 다른 만큼 한자도 다르다. 오동을 뜻하는 한자는 동(桐)이고 벽오동을 의미하는 한자는 오(梧)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조들은 두 나무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오동(梧桐)’이라 부르며 혼용했다.

하지만 벽오동은 오동과 달리 수피가 깨끗하고 풍모가 귀족적인 데다 상서로운 봉황이 깃든다는 신령스러운 나무다. 게다가 곧고 푸른 줄기는 청빈을 상징해 유교 문화가 지배하는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거처하는 사랑채나 누정(樓亭) 근처에 벽오동을 심고 가꾸며 완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조선 중종 때의 문신 김성원(金成遠, 1525∼1597)은 자신이 머물던 서하당(棲霞堂) 앞뜰에 벽오동을 심어 가꿨고, 선조 때의 문신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은 자신의 별서(別墅)인 석문정사(石門精舍) 동쪽 계단 아래에 벽오동을 심었다. 벽오동은 서원(書院)에도 심었다. 김성일은 퇴계 사후 도산서원에 들렀다가 변함없이 푸르게 자라는 벽오동을 보고 스승 퇴계를 그리워하며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천인봉황하처거(千仞鳳凰何處去) 천 길 높이 날던 봉황은 어디로 날아가고

벽오청죽자년년(碧梧靑竹自年年) 벽오동과 푸른 대만 해마다 자라는가

그림과 시가의 소재로 사용한 나무

벽오동은 옛 그림의 소재로도 쓰였다.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은 벽오동 그늘 아래 초가에서 마당 쓰는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선비의 모습을 묘사한 ‘벽오청서도(碧梧淸署圖)’를 남겼다.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1843~1897)은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를 화제(畵題)로 벽오동 아래에서 달을 보고 짖는 삽살개를 그렸다. 오원은 특히 ‘봉황이 깃든다’는 신령스러운 벽오동과 ‘귀신 쫓는 개’라는 별명이 붙은 삽살개를 대비시킴으로써 상징하는 바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겨 같은 제목의 또 다른 그림을 여러 점 남겼다. 벽오동은 봉황과 짝을 이루며 옛 시가(詩歌)의 소재로도 많이 쓰였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렸더니 내 심은 탓인지 기다려도 아니 오고 밤중에 일편명월(一片明月)만 빈 가지에 걸렸에라

조선 후기 <화원악보(花源樂譜)>에 전하는 작자 미상의 시조인데, 벽오동은 봉황과 더불어 사랑하는 남녀 관계나 군신 관계를 뜻하는 중의적 표현으로 쓰였다.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은 귀양지인 전남 창평에서 식어버린 임금의 사랑이 회복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연군지정(戀君之情)을 주제로 ‘서하당벽오가(棲霞堂碧梧歌)’를 남겼다.

 

누(樓) 밖 푸른 머구 봉황(鳳凰)아 아니 온다 무심한 뙈기 달에 홀로 배회하는 뜻은 언제나 봉황이 오면 놀아볼까 하노라

이 외에도 벽오동은 ‘열녀춘향수절가(烈女春香守節歌)’를 비롯해 ‘경복궁타령’, ‘천안삼거리’, ‘군밤타령’, ‘새타령’ 등 수많은 노래와 시가(詩歌)에 봉황과 짝을 이루며 오래도록 우리 역사와 함께해왔다.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상정역은 1939년 8월 15일 직원 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여객 수요 변동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다가 지금은 직원을 배치하지 않은 채 열차 교행이나 대피하기 위한 신호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역사(驛舍)는 2007년 여객 취급을 중단한 이래 고객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지금은 이따금 오십천을 따라 굽이도는 열차의 경적만이 한낮의 적요(寂寥)를 깨뜨릴 뿐, 구내의 벽오동마저 뙤약볕 아래 깊이 선정(禪定)에 들었다.

(좌) 장승업, ‘오동폐월도’, 지본 담채, 37.5×141.8cm (우) 강세황, ‘벽오청서도’, 종이에 담채, 30.1×35.8cm

구내에서 바라본 상정역과 상정역 구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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