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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정은 사진 문덕관, 홍하얀 참고 자료 및 사진 출처 <한국철도, 추억과 희망의 레일로드>(이송순), 철도박물관,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시공원조성과

1970~198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 기차는 ‘낭만’과 동의어나 다름없다. 친구나 연인과 함께 열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으로도 가슴 설레던 그때, 지금처럼 여행하기 쉽지 않던 시절이라 더욱 낭만적이었다. 열차는 주로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이용했다. 당시만 해도 무궁화호나 새마을호는 주머니 얄팍한 청춘에게는 고급스러운 기차였다. 비둘기호나 통일호는 시속 50km 안팎의 속도로 달리며 역마다 섰기 때문에 산천의 속살도 훤히 보이고, 동네 풍경도 한눈에 들어왔다. 열차가 달려가는 동안 느긋하게 바깥 풍경에 취하기도 하고, 시끌벅적한 기차 안 분위기에 젖기도 했다. 옆 사람과 삶은 달걀도 함께 까 먹고, 간식 카트에서 달걀과 사이다, 과자, 오징어, 커피, 초콜릿 같은 간식도 사서 나눠 먹곤 했다.

오늘날 고속도로 휴게소가 필수 코스이듯 기차에서는 카트가 참새 방앗간이었다. 주전부리를 잘 사주지 않던 부모도 기차 안에서만큼은 인심이 후해졌다. 시대가 발전하고 다양한 이동 수단이 생겨났지만, 아직도 비행기나 버스보다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걸 좋아하는 이가 많다. 지나간 날의 낭만과 추억을 떠올리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고 싶거나 기차가 주는 아날로그적 묘미를 만끽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경인선·경부선 철도와 함께 시작한 서구식 여행 문화

사실 기차와 여행의 역사는 함께한다. 19세기 철도 개통으로 여행이 확대되고 대중화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기차를 타고 국경을 왕래하기 시작했고, 여행의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관광 계층이 생겨났으며, 관광 여행 상품이 개발되었다. 우리나라도 1899년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유람 수준이던 여행에 서구식 여행 문화가 유입되었다. 또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전국적으로 확충되면서 철도역과 가까운 명승지나 도시는 관광지로 새롭게 부상했다. 대표적인 곳이 금강산, 경주, 황해도 장수산과 신천온천, 온양온천이다. 관광객이 늘어나자 조선철도국에서는 <조선철도여행안내>도 발간했다. 철도를 크게 선로별로 경부본선·마산선·경인선·경의본선·겸이포선· 평남선·호남선 등으로 나누어 각 역과 그 지역의 특징을 소개하고, 사진도 실었다. 한국과 일본을 왕래하는 연락선의 시각과 횟수, 열차 노선과 횟수 등 교통 정보를 비롯해 “연락선에서 담배 소지 여부를 엄중히 검사한다”, “배 안에서는 조선은행 지폐를 수수료 없이 바꿀 수 있다” 같은 세세한 여행 지식까지 소개하고 있다. 부록으로 ‘금강산 유람 안내서’까지 담았다. 일제가 한반도에 부설한 철도는 군사적·사회경제적 목적이 우선이었지만, 철도 운영 자체의 수익을 위해, 그리고 식민 지배에 대한 회유책으로 관광 목적의 철도 운영을 확대해갔다.
서울로

1970~1980년대 청춘에게 낭만의 대명사이던 기차 여행.

청춘과 사랑, 추억과 낭만의 경춘선

하지만 의외의 철도가 있었으니 바로 경춘선이다. 1939년에 개통한 경춘선은 1945년 해방 전까지 서울과 춘천을 이어주는 유일한 근대적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다가 한국전쟁을 통해 군 병력과 군수물자를 전방으로 실어 나르는 ‘전선(戰線)’ 역할을 담당했다. 또 1960년대 후반 파월 장병이 강원도 화천 등에서 훈련을 받고 경춘선을 타고 서울을 거쳐 인천항에서 월남을 향해 떠난 역사를 간직한 열차이기도 하다.

1970~1980년대에는 서울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단합 대회를 하러 가는 대학생을 실어 나르며 청춘과 사랑, 추억과 낭만의 열차로 자리 잡았다. 기타를 둘러멘 나팔바지 차림으로 기차를 타고 강촌, 남이섬, 청평, 대성리 등을 찾아 추억을 쌓던 경춘선은 사랑과 희망, 방황과 좌절이 혼재된 젊은 날의 초상과도 같았다. 19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유화와 자가용 대중화로 기차를 이용한 여행이 주춤했다가 IMF 외환 위기 이후 바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고 힐링 라이프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다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추억을 소환하는 간이역&오일장 기차 여행, 강원도 눈꽃 기차 여행 등 독특한 테마의 기차 여행 상품이 개발되었다. 더불어 바다열차, 와인&시네마열차, 서해금빛열차, 정선아리랑열차,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남도해양열차 S-train, 평화열차 DMZ-train,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 레일크루즈 해랑 등 이색 관광 열차가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며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옛것을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가 대세로 떠올랐다. 기차 여행은 뉴트로 여행의 대표 주자이자 느림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 여행 수단. 초 단위로 세상이 바뀌는 시대지만, 한 번쯤은 느릿느릿 찬찬히 세상을 돌아보며 뉴트로 감성에 젖어보면 어떨까. 더위를 피해 당일치기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차 여행 상품도 있으니 올여름 더위는 기차에서 시원하게 날려보자.

경춘선을 달리던 비둘기호(1998년) (좌) / 서해금빛열차,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등 이색 관광 열차가 전국 방방곡곡을 달리며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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