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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세비야에 닿다

세비야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 이글이글 타오르는 아스팔트가 심상찮았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온도계는 이미 40℃를 가볍게 넘어서고 있었다. 정류장에서 숙소까지 캐리어를 끌고 가는데 바퀴가 길에 엉겨 붙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게들이 셔터를 내린 거리는 아주 조용했다. ‘아, 시에스타(siesta) 시간이구나.’ 스페인의 많은 가게는 오후에 몇 시간씩 문을 닫는다. 한낮의 불볕더위를 피해 느긋하게 점심 식사를 즐기거나 낮잠을 자는 것이다. 혹자는 스페인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며 시에스타를 비판하기도 했고 관광객 입장에선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누릴 수 있으면 누리고 싶은 삶의 여유이기도 했다. 체크인까지 시간이 조금 남았다. 적막한 거리를 배회하다 문을 연 가게를 가까스로 찾아냈다. 갓 짠 오렌지 주스를 2유로에 파는 작은 카페였다. 주스는 미적지근했지만 그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스페인의 여름은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 아래 있으면 그나마 견딜 만하다. 가로수답지 않게 울창한 잎을 자랑하는 나무 아래서 바라보니 그제야 세비야의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태양보다 정열적인 예술의 심장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다. 고대 로마 때 형성된 도시는 이슬람 지배기를 거쳐 기독교 문화권에 안착했다. 다양한 세력의 흔적과 이국적 풍광이 조화를 이룬 세비야는 많은 예술가의 심장을 자극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비제의 <카르멘> 등 세계적 오페라의 배경이 바로 이곳이다. 특히 <돈 조반니>는 세비야에 전해지는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것으로, 이후 세비야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가 되었다. 세비야는 스페인의 대표 민속춤인 플라멩코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예전에 모 휴대폰 광고에서 김태희가 붉은 옷과 머리 장식을 하고 플라멩코를 추던 곳이 바로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이다. 광고에는 화려함만 부각됐지만, 플라멩코는 집시들의 한과 혼이 담긴 춤이다. 15세기경 이 지역에 정착한 집시들이 자신들의 슬픈 처지를 노래와 춤으로 표현하면서 시작된 것이다. 사실 춤뿐만 아니라 노래와 기타, 박수 치기와 발 구르기 등 여러 요소가 어우러진 종합예술이다. 스페인 친구 말로는 젊고 실력 있는 사람은 모두 대도시로 가고, 세비야에는 옛 영화를 추억하는 왕년의 춤꾼들이 주로 남아 있다고 했다. 아무러면 어떠랴, 오히려 인생의 연륜과 쓸쓸함이 배어 있는 플라멩코가 진짜배기 아닐까. 저녁에는 세비야의 플라멩코를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비야에서 플라멩코를 보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플라멩코 박물관, 공연장 그리고 거리 공연이다. 그중 박물관은 스페인 최초로 만든 곳으로 공연 수준이 꽤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왠지 ‘박물관’이라는 장소 때문인지 박제된 플라멩코의 표본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거리 공연은 언제 어디서 만날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괜찮은 플라멩코 공연장을 찾아보기로 했다. 세비야에는 대충 검색해도 플라멩코 공연장이 꽤 많았다. 플라멩코 공연은 ‘타블라오’라는 극장식 레스토랑에서 식사, 혹은 요깃거리에 술 한잔 곁들여 즐기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공연에 집중하다 보면 밥이 넘어갈 것 같지 않아 간단히 상그리아 한 잔만 곁들이기로 했다.

거리에서 펼쳐진 플라멩코 공연. 플라멩코 공연장 앞에 공연 시작 전부터 줄을 선 사람들. 그리고 플라멩코 의상을 판매하는 거리의 숍.

 

플라멩코가 선사한 감흥

해의 열기가 사그라져가니 거리가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스페인 광장을 지나는데 기타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여인이 나무판자 위에서 플라멩코를 추고 있었다. 저렇게 좁은 곳에서 춤을 추는 게 가능할까 싶던 호기심은 점차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가슴속 응어리를 절절히 표현하기 위해 오히려 좁은 곳을 택한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과장된 몸짓으로 힘들다고 외치는 것보다 아무렇지 않은 듯 절제하는 모습에서 더 깊은 슬픔이 배어나오곤 하니까. 그녀가 차지한 것은 고작 몇 개의 판자였지만 그 넓은 스페인 광장이 순식간에 그녀만의 독무대가 되었다. 우리는 광장을 지나던 많은 사람과 함께 그녀의 춤에 빠져들었다. 세비야가 선사한 뜻밖의 선물이었다. 공연장 안팎은 시작 전부터 인산인해였다. 안으로 들어가 술잔을 들고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홀 안의 불이 꺼지고 평범한 외모의 중년 남녀들이 등장했다. 화려한 색채와 과장된 장식품만 아니면 거리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얼굴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기타 연주가 시작되자 그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애절한 눈빛으로 구슬픈 가락을 뽑아내다가 갑자기 강렬하고 뇌쇄적인 눈빛으로 손뼉을 치고 발을 굴렀다.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던 삶과 그 안의 슬픔, 하지만 억누를 수 없는 열정. 텍스트로만 보았을 때는 잘 와닿지 않던 표현들이 오감으로 이해되었다. 거리에서 본 것이나 공연장에서 본 것 모두 ‘세비야의 플라멩코’다웠다.

 

가장 스페인다운 스페인을 만나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의 산피에트로, 런던의 세인트폴에 이어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성당이다. 성당을 지으면서 “완공했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미쳤다고 할 만한 성당을 만들자”고 했다더니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방문객은 압도적인 외관에 한 번, 성당 안에 있는 20톤의 금을 입힌 제단에 또 한 번 놀라곤 한다. 하지만 대성당에 사람들이 몰리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콜럼버스의 관이다.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후원을 받아 신대륙 탐험을 떠난 콜럼버스는 여왕이 죽은 뒤 찬밥 신세가 된다. 그는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다는 유언을 남겼지만, 그의 유해는 다른 나라를 떠돌다 결국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렸는데, 콜럼버스 시대에 스페인을 지배하던 4명의 왕 조각상이 그의 관을 들고 있도록 한 것이다. 어쨌든 땅은 밟지 않았으니 콜럼버스가 살아 돌아와도 웃어넘길 법한 묘안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콜럼버스를 지지하던 두 왕은 앞쪽에서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있지만, 그를 외면하던 두 왕은 뒤쪽에서 고개를 숙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래서 사람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건가…. 진지하고 엄숙한 공간에 있는 의외의 기발함에 대성당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대성당의 히랄다 탑 또한 세비야의 명물이다. 12세기 말 이슬람 세력이 사원의 첨탑으로 만들었으며, 16세기 기독교인이 첨탑 꼭대기의 돔을 떼고 종루를 설치했다. 그곳에 올라가면 세비야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가보지 못했다. 탑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를 들으며 위안을 삼을 수밖에.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라 그런지 성당 주변에는 문을 연 카페며 음식점이 많았다. 문제는 하얀 벽들에 반사된 햇빛이 그야말로 눈을 찌른다는 것이었다. 열기 때문에 걸어 다니기도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여행 2일 차에 반강제로 시에스타를 해야 했다. 그런데 웬걸, 일분일초가 소중한 여행자에게도 한낮의 휴식은 정말이지 달콤했다. 스페인 사람이 시에스타를 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들의 열정은 일상의 완급 조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콜럼버스의 관. 한산해진 스페인 광장. 세비야의 밤거리.

한여름 밤의 스페인 광장

야간 산책을 나왔다. 목적지는 스페인 광장. 세비야의 터줏대감 같은 스페인 광장은 사실 1929년 박람회를 위해 건설한 곳으로 역사가 1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아무러면 어떠랴. 광장을 감싸 안듯 반달형으로 배치된 건물과 운하, 스페인의 옛 왕국 수에서 따온 4개의 다리는 스페인 건축의 집약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게다가 조명에 비친 스페인 광장은 낮의 화려함과 사뭇 다른 요염함까지 느껴졌다. 단꿈에 취해 한참을 서성이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문제가 생겼다. 광장을 둘러싼 공원 문이 잠긴 것이었다. 우리가 있는 걸 뻔히 봤을 텐데 아무 말 없이 문을 잠가버리다니! 무심한 경비원을 탓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는데 철창 문 밖에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한국인 관광객이었다. “저희도 어제 갇혔는데… 이쪽으로 빠져나올 수 있어요.” 그들은 조금 틈이 넓은 창살로 우리를 안내했다. 몸이 워낙 뻣뻣하지만 어떻게든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니 초인적인 유연성이 발휘됐다. 그들은 몸을 오징어처럼 꼬아대는 내 모습에 손뼉까지 치며 웃어댔다. 살짝 기분 상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아니었으면 공원 철창에 기대어 밤을 새울 뻔했으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그해 여름, 그곳에는 이글거리는 태양과 살아 있는 예술혼 그리고 여유로움이 있었다. 그들은 일상에 매몰되지 않았지만 삶에 진지했고 때론 유쾌했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시대를 넘어 공존하고, 누군가의 응어리진 가슴조차 춤과 연주로 피어나던 곳. 세비야는 누군가의 말처럼 ‘가장 스페인다운 스페인’이었다. 인생에서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든다면, 뜨겁게 살아 숨 쉬는 심장을 느끼고 싶다면 언제든 한번은 가볼 일이다. 한여름의 세비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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