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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사 먹던 음식 변천사

책에서도 밝혔지만, 철도에서의 구내 영업은 철도의 효시와 그 시작점이 거의 같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초창기에는 여유가 없던 시절이어서 기호 식품보다는 배를 채우기 위한 식품류가 주류를 이루었고, 생활수준이 나아지면서 간식류나 과자류, 다양한 음료 같은 군것질거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구내 영업은 입매(立賣)라고 하여 허가받은 조합의 판매원이 역 맞이방이나 승강장에 들어가 상품을 판매하다가 열차가 들어오면 정차하는 동안 잠깐 객차에 들어갔다 나오는 식으로 판매가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열차에 승차해 이동하면서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 방식은 1911년 융희호에서 처음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36년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철도강생회를 재단법인으로 설립한 이후 철도에서의 구내 영업은 강생회 산하로 통합되지만, 그 이전까지는 모두 사업자 조합에서 진행했다. 또한 이 조합의 구성원은 대개 철도 퇴직자나 그 가족이어서 철도국과 유기적 소통이 긴밀하게 이루어졌다. 구내 영업이 강생회로 일원화되기 전에도 철도국의 도시락에 대한 위생 관리 등은 철저하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벤또’라고 부르던 도시락의 단가나 판매 실적 등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언론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지만, 적어도 1918년부터는 전국 기차역에서 판매하는 식품류에 대해 철도국 차원에서 위생 점검을 실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역과 국수의 등장

기차에서 판매하는 간식이 아닌 주식에 획기적 변화를 불러온 것은 바로 국수(우동)의 등장이었다. 워낙 대전역 가락국수가 유명하다 보니 이것이 최초가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으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원조 가락국숫집은 1956년 1월 30일 경부선 삼랑진역에 들어선 ‘우동막’이라고 한다. 이 우동막이 인기를 끌면서 그해 7월 21일 도계역 승강장에 두 번째 ‘국수막’이 생기고, 그로부터 3년의 관찰 기간을 거쳐 1959년 전국 11개소에 국수막이 등장한다. 이때 대전역에도 비로소 국수막이 생기게 된다. 순서로는 삼랑진역, 도계역, 천안역에 이어 대전역이 네 번째이며, 1959년 6월 9일의 일이다. 가락국수가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은 도시락에 비해 조리하기 간편하고 위생적이며,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네 식성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기차가 승강장에 채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려 100m 달리기라도 하듯 국수막을 향해 달리는 풍경이 매일 연출된 것이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에 승무원이 미리 방송을 통해 객실 안으로 국수 그릇을 가지고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해도 짧게 정차하는 동안 국수를 다 먹지 못한 손님은 국수 그릇을 들고 기차에 오르기도 했다. 이것이 문제가 되자 홍익회에서는 국수 그릇 전담 청소 담당자를 채용했다고도 하니, 승강장에서 파는 가락국수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짐작이 간다.

1963년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이 출시됐을 때 가격이 봉지당 10원이었는데, 가락국수도 그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1966년 8월을 기준으로 인상된 가락국수가 20원이었다고 하니 말이다. 이 가락국수를 파는 국수막은 처음엔 나무로 만들었고, 1976년에 알루미늄재로 교체되었다가 1983년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스테인리스 재질로 깔끔하게 정비했다. 규모도 처음엔 1.5~2평 정도였으나, 실내 홀도 만들고 냉난방 설비도 갖추는 등 현대화 과정을 거쳤다. 가락국수 전성기라고 하는 1994년 가격은 1200원이었다. 1966년 이후 28년 만에 60배나 오른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입맛도 변해 2004년 고속철도 개통을 전후한 시기엔 역 구내의 국수 전문점은 대부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대전역을 포함한 일부 가락국수는 별미로 사랑받고 있지만 직영 형태는 아니며, 일반 브랜드의 전문점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서비스 카트를 개발하기 전, 홍익회 전신인 강생회 소속 판매원이 열차 내에서 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상품을 판매하는 모습.

1980년대, 새마을호에 설치된 스낵카 내부 모습.

기차 간식의 변화상

주식(主食), 즉 끼니로서의 도시락이나 가락국수 외에 우리가 군것질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열차 내 기호 식품이 호두과자다. 지금도 천안 명물로 영업 중인 ‘학화호도과자’가 효시인데, 1934년 처음 등장했다.

‘학화호도과자’의 명성이 지역을 넘어 전국에 알려진 것은 1945년 열차 안에서 판매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인기 상품은 삶은 달걀과 땅콩, 마른오징어 등 가공 단계를 최소화한 자연식품이었다. 그런데 ‘호도과자’가 인기 상품으로 떠오르면서 소규모 제과점이 경쟁적으로 납품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위생이나 품질 문제가 외부 기관의 지적을 받았다. 판매 중단 과정을 거쳐 1967년이 되자 철저한 품질관리를 위해 자체 생산에 들어갔다.

1960년대 당시 자체 생산을 하던 대표적 상품은 ‘카스텔라’, ‘맛나빵’, ‘양갱’ 등이었고, 음료로는 사이다가 최고 인기를 끌었다. 1966년을 기준으로 주요 상품의 가격을 보면 특제 백반 100원, 보통 백반 50원, 김밥 한 줄이 30원이었다. 270ml 우유가 20원, 삶은 달걀 1개 11원, 신문 1부 5원, 카스텔라 20원, 맥주 80원, 사이다 33원, 소주 1병이 48원이었다. 매출 실적을 기준으로 봤을 때 과자류가 33%를 넘어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도시락 등 식료품류가 18%, 음료수류가 14%, 과실과 주류가 각각 10% 정도를 차지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차내 서비스 카트는 1969년 관광호를 운행하면서 처음 만들었는데, 이것은 객실 내 통행 횟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하나의 방안이었다. 바구니에 상품을 담아 판매하다 보니 많은 양의 상품을 가지고 다니기 힘들었고, 그러다 보니 상품을 보충하기 위해 객실과 보관 창고 사이를 자주 들락거려야 한 것이다. 서비스 카트는 개량을 거듭해 보온병을 놓거나 거스름돈용 동전을 놓는 공간을 마련했으며, 제동 장치도 설치했다. 또 판매원의 키에 맞춰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제작하기도 했다.

7080세대가 기억하는 추억의 맛

1970년대 들어 ‘삼립빵’이나 ‘새우깡’ 등이 대중적 인기를 끌자 1972년 식품류 자체 생산사업은 폐지되었다. 그러다가 식품 공장을 인수해 자체 생산을 재개한 것이 1976년이다. 연말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나온 상품이 ‘카스텔라’, ‘밤양갱’, ‘밤마론’이다. 1977년 말에는 일양식품을 인수해 ‘썬업사이다’, ‘망과씨’, ‘구미산’ 등 음료를 자체 생산했다. 이른바 7080세대에게는 익숙한 상품이다.

이 당시 최고 인기 상품은 지금 가공 음료계의 전설이 된 빙그레 ‘바나나맛우유’였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서자 캔류, 자연식품, 유명 메이커를 선호하는 소비 경향이 뚜렷해졌다. 열차 내 독점 판매로도 이 거센 흐름을 막아낼 수 없었다. 홍익회는 결국 1987년 카스텔라와 호두과자, 모둠 안주 생산을 중지했고, 1988년에는 음료 사업 생산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모든 식품류의 자체 생산이 끝난 것처럼 보이던 1980년대가 지나고 1992년이 되자 새로운 구원투수가 혜성처럼 등장했으니, 바로 육가공식품 소시지였다. 홍익회는 자회사인 일양식품을 통해 ‘하이네프랑크소시지’라는 이름의 소시지를 개발해 판매하기 시작했다. 당시 이미 롯데, 제일제당, 진주햄 등 유명 육가공업체의 제품을 열차 내에서 판매하고 있었지만 독일의 소시지 전문 회사와 기술제휴를 통해 생산한 제품으로 당당하게 경쟁에 나선 것이다. 이 제품이 선풍적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유행하던 하이트 캔맥주와 환상의 복식조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자체 평가다.

육가공식품의 강세는 2000년대에 들어서도 유지되어 훈제 오징어와 함께 기차 여행의 별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겪으며 명맥을 이어오던 이 사업이 결정적 타격을 입은 것은 고속철도 개통이었다. 코레일의 정책에 따라 열차 내 판매 서비스가 승무 사업 운영 자회사로 넘어가고, 그마저도 2017년 자판기로 대체되면서 열차 내 판매 사업이 원천 봉쇄된 것이다.

2010년, KTX에서 판매하던 프리미엄 도시락 발표회. 당시 도시락 가격은 1만 원 내외였다. /  2009년, KTX 내부에 설치된 자판기. 

기차 여행의 별미, 다시 만날 그날까지

열차 내 이동 판매를 중단하면서 기차 여행의 낭만 중 하나가 없어진 것이 너무 아쉽다. 이는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제라도 여건과 상황이 바뀌면 다시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남북 철도가 연결돼 대여섯 시간 기차를 타야 할 상황이 일상이 되고 ‘내일러’ 사이에 나진에서 목포까지, 부산에서 신의주까지 한반도 종주하기가 유행한다면 기차에서 팔던 도시락이며 이동식 판매 방식은 다시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물가와 인건비가 비싼 일본에서도 열차 내 이동 판매가 지금껏 사랑받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여건만 맞으면 언제라도 부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의주행 기차에 올라 평양역의 맛있는 도시락을 예약해놓고, 비무장지대를 지나며 ‘바나나맛우유’에 삶은 달걀을 먹는 그날을 나는 간절히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