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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하오, 칭다오!

칭다오는 산둥반도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항구도시의 축복이자 숙명은 신문물과 외세의 침략을 가장 먼저 맞닥뜨린다는 것이 아닐까. 작은 항구도시이던 이곳은 1898년 독일에 의해 개항하면서 중국의 주요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중국의 대표 맥주인 칭다오 맥주 공장의 전신을 비롯해 현존하는 많은 유럽풍 건물을 이때 지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군의 지배를 받다가 중국에 반환된 것은 1922년경이었다. 일찍이 상업과 타 문화에 눈을 뜬 덕분일까, 칭다오의 첫인상은 상당히 현대적이고 발전된 모습이었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첫 관문은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것이다. 딱 봐도 어리바리한 여행자는 호객꾼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항을 나서자마자 택시 호객꾼들이 따라붙었다. 버스를 타면 시내까지 2시간은 족히 걸린다나 뭐라나. 물론 근거 없는 얘기다. 공항에서 칭다오 시내까지는 버스로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다. 시간도 50분 남짓 소요되고, 시내 여러 곳에서
정차해서 편리하다. 우리는 번화가 한복판에서 내렸다. 숙박 공유 사이트에서 예약한 숙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집주인이 알려준 방향으로 가니 영화에 나올 법한 고층 빌딩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이게 다 아파트라고?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꼭대기가 잘 보이지 않는 높디높은 건물들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은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도 놀라운 광경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5·4광장이 있었다. 바닷가에 위치한 이곳에는 칭다오의 랜드마크인 빨간 조형물이 자리한다. 다소 기하학적으로 생긴 이 조형물은 타오르는 횃불을 형상화한 ‘오월의 바람’이라는 작품이다.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산둥성의 권리가 일본에 양도되자 베이징 시민은 1919년 5월 4일 천안문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5·4광장과 조형물은 당시 칭다오가 시위의 도화선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혹자는 그 시위가 우리나라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도 하는데, 비슷한 시기에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한 많은 이의 노력에 새삼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역사의 아픔에서 문화의 새살이 돋다

칭다오 거리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독일풍 건물과 거리를 볼 수 있다. 특히 천주당이나 몇몇 장소는 웨딩 촬영 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간 날만 해도 열 팀에 가까운 커플이 웨딩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모든 신부가 하나같이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중국에선 빨간색이 행운의 상징이라고 한다. 이국적 건물과 중국적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풍경이었다. 하지만 가장 성공적인 ‘문화 융합’의 사례는 역시 칭다오 맥주가 아닐까 싶다. 한 개그맨의 유행어로 급부상한 “양꼬치엔 칭다오”의 그것이다. 우리나라에선 개그 프로그램으로 유명해졌지만, 사실 칭다오 맥주는 긴 역사와 명성을 지닌 중국의 대표 맥주다. 시초는 100여 년 전인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산둥반도를 조차하던 독일인은 타국에서도 조국의 맛이 그리웠는지 칭다오에 맥주 공장을 세웠다. 독일인의 뛰어난 양조 기술과 지역의 깨끗한 물로 만든 칭다오 맥주는 각종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세계 각지로 수출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중국에서 운영권을 넘겨받아 대중화했고, 초기 양조장을 리모델링해 맥주 박물관을 설립했다. 가볍게 마시던 맥주 한잔에 한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게 새삼 흥미로웠다. 그 농축된 역사를 맛보지 않을 수 없었다. 칭다오 맥주 박물관은 입장권 종류에 따라 옵션이 다른데, 기본적으로 생맥주 한 잔과 땅콩 한 봉지를 포함한다. 우리는 기본 입장권에 몇 종류의 맥주 샘플러를 추가했다. 여기서만 맛볼 수 있다는 원액 맥주 맛이 궁금했다. 칭다오 맥주 제조 과정과 스토리를 재빨리 훑어보고 드디어 시음 장소에 도착했다. 쉴 새 없이 생맥주를 뽑아내는 직원들 옆으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도 한 잔씩 들고 자리를 잡았다. 적당히 쌉쌀하면서도 시원하게 넘어가는 맛. 신선한 맥주는 그윽한 향기가 났고 거품마저 맛있었다. 여행지에서 누리는 가장 큰 기쁨 중 하나는 역시 낮술이 아닐까. 박물관 귀퉁이에서 즐긴 맥주 한 잔에 여행이 한층 더 즐거워졌음은 당연지사였다.

핑크빛 지붕이 인상적인 칭다오 저장로 천주교당. / 중국 대표 맥주 ‘칭다오 맥주’ 시음. / 중국에선 빨간색이 행운을 상징한다. 신부의 웨딩드레스 역시 대부분 빨간색이다.

 

도시를 오감으로 느끼는 방법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한 것 중 하나는 음식이었다. 맛집 리스트를 놓고 고민하다 첫 식사로 오리구이집을 골랐다. 오랜 시간 화덕에 구운 오리에 특제 소스와 오이, 파채를 곁들여 먹는 중국식 오리구이였다. 처음에는 머리까지 달려 있는 오리 모습이 생경했지만, 한 입 맛보고 나니 눈이 번쩍 뜨였다. 오리구이는 요즘 말로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이었다. 짭짤하고 바삭한 겉껍질에 담백한 살코기가 조화로웠다. 퉁명스러워 보이던 주인아주머니는 우리를 계속 곁눈질로 관찰하더니 연신 맛있다고 하는 걸 보고 슬며시 웃음 지었다. 계산하고 나가는 길에는 기어코 손에 기념품까지 쥐여주었다. 귀여우신 아주머니! 칭다오에서는 어느 식당에 가든 준수한 해산물 요리를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언어의 장벽이었다. 우리가 마주친 대부분의 사람은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모국어에 대한 자부심으로 일부러 안 하는 건가 싶었지만, 그들의 곤란한 표정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자리는 잡고 앉았는데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몇 년 전 공부한 짧은 중국어로는 해산물의 이름을 알 턱이 없었다. 번역기를 돌리고 옆 테이블도 훔쳐보면서 겨우 음식을 주문했다. 고생 뒤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음식은 기대 이상이었다.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간이 세지 않았고 향신료 냄새도 거의 나지 않았다. 고소한 바지락 볶음과 새우 요리, 육즙이 팡팡 터지는 만두와 불맛 나는 볶음밥까지. 좀 전의 어려움은 모두 잊고 즐거운 포만감을 만끽했다. 한 나라의 문화가 잘 응축된 곳을 꼽으라 하면 단연 전통시장과 먹자골목일 것이다. 식문화와 생활상, 지역적 특성과 역사가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칭다오의 대표 먹자골목 피차이위안도 그런 의미로 빼놓을 수 없는 코스였다. 1902년 독일식 건물들 사이에 조성된 상업 거리로, 눈에는 유럽풍 건물이 보이고 코끝에는 꼬치 냄새가 풍기니 내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피차이위안의 명물은 각종 해산물꼬치와 중국식 두부조림, 구운 만두 등이다. 좁은 골목 양쪽에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은 저마다 주력 상품을 내놓고 판매에 열중하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와 호객하는 소리, 고소한 냄새가 어우러진 거리에서는 펄떡거리는 생동감이 느껴졌다. 가격도 저렴하니 이보다 좋을쏘냐. 이것저것 맘껏 골라 먹으며 사치 아닌 사치를 부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칭다오

칭다오의 백미는 단연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이국적 풍경이다. 그중에서도 대표 관광지로 꼽히는 팔대관풍경구를 방문했다. 1900년대 독일인이 처음으로 거주한 이곳은 경관이 빼어나기로 유명하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당시 독일과 러시아·스위스·덴마크 등 각국의 부호들이 앞다퉈 별장을 지었고, 덕분에 ‘만국 건축 박람회’로 불릴 만큼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이 자리한다. 현재는 개인 별장이나 귀빈 접대용 건물로 쓰고 있으며, 몇 군데만 일반에 개방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별장들은 마치 동화 속 성이나 영화의 세트장처럼 비현실적이었다.
해안 산책로를 따라 버스로 이동하다 보면 칭다오 최초의 부두인 잔교가 나온다. 바다로 길게 뻗은 잔교 끝에는 팔각형 모양의 회란각이 있다.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칭다오 맥주 로고에 사용된 곳이었다. 하지만 엄청난 인파를 뚫고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아 멀리서 바라보는 걸로
만족했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칭다오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소어산 공원으로 향했다. 소어산 공원은 원래 어부들이 생선을 말리던 작은 언덕이었다고 한다. 해발 60m라는데 얼핏 낮은 것 같지만 주변 건물들과 바닷가를 조망하기엔 충분했다. 전망대에 오르니 시원한 미풍이 얼굴을 간질였다. 한쪽으로 넓은 백사장이, 다른 쪽으로 유럽의 마을 같은 붉은 지붕들이 펼쳐진 풍경은 이국적이면서도 칭다오다웠다. 그곳에는 외세의 지배를 받은 아픈 역사를 매력적인 꽃으로 피워낸 도시가 있었다. 중국이나 유럽의 어느 범주로도 정의할 수 없는 칭다오의 모습이었다.

마음껏 먹어도 가격 걱정 없는 가성비 좋은 음식과 활기찬 시장 풍경.

 

도시 하나를 보고 그 나라를 다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중국이라는 나라의 한 페이지를 겨우 보았다. 칭다오에 대해서도 다 안다고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앞으로는 적어도 제목이나 목차를 보고 그 내용을 짐작해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어느 곳이든 더 많이 들여다보고 경험하고 싶다. 칭다오에서 보낸 마지막 오후, 선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산책하기 좋은 팔대관풍경구. / 고풍스러운 멋을 풍기는 오래된 건물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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