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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박물관 직영, 큰 그림의 첫 시작

철도박물관은 한때 철도청의 독립 기관으로서 옛 서울역에 분관을 설치할 정도로 활성화되었으나, 1999년에 내려온 정부 방침에 따라 2001년부터 민간에 위탁 운영하면서 경영진과 철도 직원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철도신문사, 철우회, 이브릿지(주) 등 15년에 걸친 위탁 운영을 끝내고 인재개발원 산하 기관으로 다시 직영하기 시작한 것은 2016년 2월 1일부터다. 지난 2015년 가을, 당시 홍보문화실에 근무하던 필자는 3년 단위로 이뤄지는 철도박물관 위탁 기간 종료를 앞두고 새로운 위탁 운영자 선정을 위한 계약 체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CEO 업무 보고 과정에서 철도박물관 직영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시간이 없었지만 15년 동안이나 이어진 위탁 운영의 폐해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방침 문서를 만들어 직영을 준비했다. 위탁 운영에서 직영으로 전환하면서 홍보문화실이 아닌 인사노무실의 인재개발원에서 관리를 맡도록 큰 그림을 그리고, 박물관에 근무할 열정적 직원을 공개 모집했다. 인재개발원에 파견 나가 인수인계를 마무리하고 새 직원들에게 박물관 유물이며 업무에 대해 교육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직영한 지 벌써 3년 6개월이 지났다. 박물관 직영에 대해 필자를 포함한 많은 철도 동호인이 큰 기대를 한 것이 사실이다. 오랜 기간 민간에 운영을 맡기면서 투자도 소홀했고, 자료 수집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파시형 증기기관차. / 철도박물관을 찾은 어린이 단체 관람객.

용산에 들어선 철도 교육 단지

옛 기록을 살펴보면, 일제가 용산에 처음 철도박물관을 건립한 것은 만철(滿鐵,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조선 철도 위탁 운영과 관련이 있다. 일본 정부의 방침에 따라 만철은 1918년 8월부터 1925년 3월 말까지 7년 8개월간 우리나라 철도를 위탁 운영하게 된다. 철도 소유권과 감독권은 조선총독부에 있는 상태에서 운영만 만철이 하는 상하 분리 이원화 체제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의 승리를 기반으로 만주 지역을 차지한 일본 입장에서는 한반도와 만주 철도 경영을 일원화함으로써 본격적인 대륙 침략을 준비하고자 한 것이다. 애당초 조선총독부는 국유 철도가 민간 철도인 만철을 흡수· 통합하는 것이 맞다고 나섰으나, 결국 규모가 더 크고 앞서 있는 만철이 조선 철도를 위탁 운영하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경기가 좋아 우리나라 철도에서 나오는 수익금을 배분하는 경우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으나, 불경기가 계속되자 양측 모두에 불만만 쌓여갔다. 총독부 입장에서는 식민정책의 핵심 기반인 철도를 남에게 맡기고 있자니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했으며, 만철 입장에서는 돈도 안 되는 사업을 하면서 일거수일투족 군부의 견제와 감독을 받는 것이 마뜩찮았다. 결국 1925년 만철은 위탁 운영에서 손을 떼고 조선 철도를 총독부에 다시 넘겼고, 총독부는 철도 운영권 환수를 기해 철도 노선을 대대적으로 확대하는 데 나섰다. 이것이 바로 1927년부터 시작된 ‘조선 철도 12년 계획’이다.

이 계획에 따라 한반도에서의 철도 영업 거리를 획기적으로 늘려나가던 조선총독부는 1935년, 철도 운영권 환수 10주년 기념 사업으로 용산에 철도박물관을 건립한다. 이것을 보면 조선총독부가 얼마나 철도 직영에 애착이 많았는지 알 수 있다. 박물관 위치는 만철의 유산인 철도종사원양성소(구 경성철도학교)와 철도도서관 옆이었다. 이렇게 용산에 당시 동북아 최대이자 최고 수준의 철도교육단지가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 철도에 근무하다 패전 후 귀국한 일본인이 1986년 발간한 <조선교통사>는 초창기 박물관의 대표적 유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1. 일본 황태자(훗날의 다이쇼)의 조선 방문 당시의 기념사진과 그 의자
2. 구한국 시대의 귀빈 차(대한제국 황제 및 이토 통감 등이 승차한 차)
3. 역대 철도국장의 필적
4. 각 시대의 전화기 모형
5. 터우형 기관차 종단 모형
6. 통표폐색기
7. 교량 축조 순서 모형
8. 경인철도 당시부터 역사 연혁을 나타내는 각종 자료 700여 점

 

이 기록을 보면, 지금 박물관에 남아 있는 유물 중에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경인철도 레일, 대한제국기 통표, 쌍신폐색기,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각종 전화기와 교환기 등은 1935년 최초 개관 당시 유물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차량 중에서 귀빈 차의 행방은 알 수 없으나 터우형 증기기관차가 초창기 전시물이라는 것은 분명해졌다.

동륜 부분(레일에서 떠있는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다.) / 터우형 증기기관차 좌측 절단면. / 차체에 숨어있는 전동기. 

해방 이후의 철도박물관

일제는 패전 후 귀국하면서 중요 서류는 대부분 소각하거나 가져갔다. 창경원의 동물은 모두 독살했다고 한다. 철도박물관 유물의 경우에는 중량품이 많아 반출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박물관이 해방 이후 입은 가장 큰 피해는 전쟁에서 비롯했다. 한강철교와 함께 용산에 집중된 철도 관련 핵심 시설물, 즉 철도공장, 철도관사, 철도병원, 철도학교, 철도도서관, 철도박물관, 용산역 등이 집중 폭격 대상이 되었다. 이때 기적같이 살아남은 것이 터우형 증기기관차다. 터우란 텐휠러(Ten Wheeler), 즉 10륜(輪)이라는 뜻이며, 바퀴 형식은 4-6-0 방식이다. 전륜이 4개, 동륜이 6개, 후륜은 없는 차량이다. 1906년 미국 볼드윈에서 제작한 것을 처음 도입해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 차량은 국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터우형 증기기관차라는 것 외에 절개형으로 제작했다는 특징이 있다. 절개형이란 증기기관차의 구동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 양쪽이 대칭되도록 한쪽을 잘라 화실, 보일러실, 실린더, 배관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제작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기관차는 더 큰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그 비밀이란, 육중한 6개의 동륜이 레일에서 떨어져 허공에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물론 겉에서 보면 절대 알 수 없을 정도로 살짝 들려 있다. 도대체 왜 이런 구조로 만든 것일까? 놀랍게도 이 차량에는 전동기(모터)가 설치돼 있다. 마치 전기기관차나 전기동차의 대차에 견인 전동기가 설치된 것처럼 동륜 축 가까이 전동기를 설치한 것이다.

이 전동기는 동륜과 치차(톱니바퀴)로 연결돼 구동하도록 되어 있고, 동륜의 회전에 따라 크랭크축, 피스톤, 실린더의 작동을 관찰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많은 증기기관차 모델 중 절개용 전시물로 터우형을 선택한 것은, 전륜이 4개여서 비교적 안정적이고 후륜이 없기 때문에 그 자리에 지지대를 만들어 무게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 되었든 지금으로부터 84년 전인 1935년에 철도인에 대한 교육과 박물관 관람객에 대한 볼거리 제공하기 위해 절개형 증기기관차를 제작하고, 거기에 전동기를 설치해 구동 원리를 알 수 있도록 한 당시 철도 당국자들의 결단과 혜안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지금으로 치면 멀쩡한 8500대 신형 전기기관차나 7600대 디젤 전기기관차를 절개형으로 만들어 전시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인데, 만약 이 시점에 누군가 그런 아이디어를 내면 십중팔구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할 것이다. 이 기관차는 원래 자리인 용산(구 철도학교 본관과 강당 건물 사이)에 있다가 1985년 철도대학이 경기도 부곡의 철도교육단지로 이전할 무렵 지금 자리로 옮기게 되었다. 다행히 그때만 해도 이 기관차의 비밀을 알고 있는 분들이 생존해 있을 때여서 비록 전동기 가동은 되지 않더라도 원래 제작 의도대로 동륜을 레일에서 뜨도록 설치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기차에 깃든 향수 그리고 호기심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증기기관차를 운행하지 않는다. 바퀴를 굴려 크랭크축과 피스톤의 구동 원리를 살펴보고 열기와 물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이 더 이상 철도 현업에서는 쓸모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철도 밖 사정은 사뭇 다르다. 열성 철도 마니아뿐 아니라 많은 어린이와 기성세대, 증기기관차를 구경도 해보지 못한 이도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에 진한 향수와 호기심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해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포기하지 않는다. 비록 오랜 세월의 흔적이며 두꺼운 페인트 자국을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있지만, 언젠가 말끔하게 벗겨내 제대로 칠하고 유동부에 기름을 발라주면 저 육중한 동륜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수십 년 묵힌 전동기도 손봐야 하고, 배선도 새로 해야 할 것이다. 그뿐인가. 터우 본래의 기관음도 확보해서 틀어주고 기적도 울려보고 싶다. 게다가 철도 모형에서 사용하는 증기도 뿜어내면 얼마나 멋질 것인가! 매일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이라도 터우가 달리는 날을 정해 박물관 홈페이지에 올려놓으면 어린이뿐 아니라 각종 신문과 방송에서도 저마다 취재하러 달려올 것이다. 물론 드라마나 영화 소품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그다음이다. 지금 터우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인재개발원 부지다. 정확하게는 국립한국교통대학교 의왕캠퍼스 본관 앞이다. 지금 철도박물관은 고질적인 공간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1980년대 후반 개발해 우리나라 전국을 달리던 새마을호 PP동차며 산업 철도의 선봉에 선 8000대 전기기관차도 운행 중단한 이후 박물관에 들어오지 못하고 여기저기 방치돼 있는 실정이다. 예산도 예산이지만, 도시계획 등으로 박물관 증축이나 신축은 어려운 형편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의 인재개발원과 철도박물관을 하나로 묶는 것이다.

어차피 철도박물관은 인재개발원 산하 기관이다. 왜 인재개발원의 각종 시설물을 철도박물관과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인가? 우리가 그렇게 부러워하는 일본의 철도박물관은 유물 보존뿐 아니라 교육 시설이 참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훌륭한 교육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벽을 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터우는 1935년 이래 훌륭한 교육 자재이자 철도박물관의 주요 유물이다. 지금 터우가 인재개발원 울타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마도 박물관과 인재개발원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어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