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riendly, PDF & Email

마치 무릉도원처럼

중앙선 무릉역

때는 2007년 늦가을, 풍경 좋은 농공 단지 진입로와 교차하는 과선교에서 철길을 내려다봤다. 이 좋은 가을 풍경에 기차만 지나가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던 찰나, 마을 진입로 건널목에 딸랑딸랑 소리를 울리며 예정에도 없던 화물열차가 통과하는 게 아닌가. 대체 이게 뭐라고, 벅찬 감동이 훅 밀려들었다.

글과 사진 임병국(작가)

여전히 찾고 싶은 그곳

1940년 3월 보통역으로 영업 개시, 1950년 한국전쟁으로 역사가 소실된 후 1958년 신역사를 준공했으나, 28년 뒤인 1986년 현재 역사를 신축했다. 그때 지은 무릉역사는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구조로, 승객이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해 맞이방 기능은 최소화하고 철도 안전과 시멘트 화물을 편리하게 취급할 수 있도록 ‘근무하기 좋게’ 지은 셈이다. 여객열차는 2007년 6월부터 통과하기 시작했고, 2014년 8월 무배치 간이역으로 격하되어 구내 규모가 상당히 큰 역임에도 간이역 명칭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2007년 가을 어느 늦은 오후, 안동~의성 구간을 다니는 정규 여객열차와 예정된 화물열차 운행은 종료되었고, 그렇게 돌아다니고도 아쉬움이 남아 해가 완전히 저물기 전에 한 군데라도 더 보자는 생각으로 찾아간 곳이 중앙선 무릉역이었다. 역무원들은 무릉역을 방문한 불청객을 반갑게 맞아주었고, 생각 외로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넌지시 자랑도 했다. 심지어 웨딩 촬영까지 하러 온다고. 요즘이야 간이역 찾는 일을 특별한 취미로 여기지도 않고 풍경 좋은 간이역에는 꽤 많은 사람이 방문하고 있지만, 12년 전간이역 방문은 흔한 일이 아님에도 유독 이곳을 찾는 고객이 적지 않은 이유를 두 가지 말해주었다. 하나는 무릉(武陵)이라는 이름이 지닌 낭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무릉유원지에서 가깝기 때문에 유원지에 놀러 온 사람 중 일부가 이곳을 방문하기 때문이라는 것.

나에게는 언제까지나 무릉도원

이곳은 여러모로 무릉도원(武陵桃源)을 닮았다. 우선 지명이 그렇고, 물이 굽이굽이 절벽 사이를 돌며 양지와 음지를 번갈아 드나드는 자연 풍경이 특별한 곳에 와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한때 이곳에 놀이공원이 있었고, 많은 사람이 찾는 유원지였으나 지금은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이 더더욱 그렇다. 고등학생 때 기억 속에는 중앙선 기차 여행 중 잠깐 눈을 떴을 때 산속에서 커다란 대관람차가 돌고 있던 모습이 남아 있다. 처음에는 꿈을 꾸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곳이 무릉역 옆에 위치한 무릉유원지였고, 대관람차는 무릉유원지를 품고 있는 무릉랜드의 랜드마크였던 셈이다.

가지 못한 곳을 보면 언젠가 다시 와야지 하고 버킷리스트에 추가하곤 하는데, 시간이 지나 다시 오려고 이곳을 떠올려보니 이미 나도 아재가 되어 있었고, 대관람차는 철거된 지 10년이 넘었으며, 무릉랜드 또한 그 이름조차 까마득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었다.
이런 사연으로 내게 무릉역은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는 과거의 기억 속 이상향인 무릉도원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그 때문일까, 그날 무릉역을 방문해서 찍은 사진이 하나같이 조금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 느낌이 드는 것은.

 

비상을 꿈꾸는 무릉역

이제 무릉역은 또 한 번 무릉도원이 되기 위한 변화를 준비 중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중앙선 철도 이설 구간에 무릉역도 포함되는데, 다행히 무릉역은 화물 운송이라는 주요 업무를 앞으로도 계속 담당하기 위해 현재 위치에 화물 전용 선로로 남을 전망이다. 또 지자체와 철도 기관에서는 이설될 무릉 역사 일대를 무릉유원지와 백조호수공원 등과 연계해 기차 펜션이나 간이역 펜션 같은 시설로 꾸밀 구상을 하고 있다. 물론 콘셉트는 당연히 무릉도원이다.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어부에게 “이 마을에 대해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주시오”라고 신신당부하지만, 어부는 돌아가자마자 사람들에게 마을의 존재를 알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 나섰지만, 끝내 복숭아꽃 만발한 그 평화로운 마을은 찾지 못했다. 언젠가 중앙선 무릉역이 다시 찾고 싶은 역이 되고 사람들에게 별천지가 되었다는 입소문이 퍼져 그 옛날 무릉랜드가 흥하던 시절처럼 기차를 타고 방문하는 꿈 같은 상상을 해봐도 될까?

순서대로 묘한 기운이 느껴지는 무릉역 남쪽 선로. / 역사 내 둥글게 손질한 나무 위에 올려둔 신발 한 켤레가 눈에 띈다. /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무릉역 표지판. / 중앙선 무릉역 전경.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