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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쓰임새의 멀구슬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 남부 해안 지방과 제주도를 비롯한 일부 도서 지역에 자라는 난대성 나무로 일본, 중국 남부, 타이완, 동남아 등 따뜻한 지역에 분포한다. 공해와 병충해에 강한 데다 빨리 자라 가로수로 적합하며, 꽃·열매·단풍이 아름다워 정원수나 조경수로도 제격이다. 꽃은 오뉴월에 연보랏빛으로 가지 끝에 다발로 핀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녹음수로도 그만이다. 가을에는 노랗게 물드는 단풍이 아름답고, 무채색 일색인 겨울철에는 노르스름한 열매를 늦게까지 달고 있어 관상 가치 또한 높다.

멀구슬나무는 구슬처럼 생긴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목(木)구슬나무’라 부르던 것이 변해서 멀구슬나무가 되었다고 전한다. 또 가을에 멀건 구슬 같은 열매를 매달아 멀구슬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얘기도 있다. 하지만 멀건 열매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주장이 왠지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왜냐하면 멀구슬나무 열매는 염주로 만들기에는 너무 작은 데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슬을 닮은 초록빛 열매가 점점 멀겋게 변하기 때문이다. 멀구슬나무는 이외에도 구주목, 말구슬나무라는 다른 이름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머쿠실낭, 머쿠슬낭 등으로 불린다. ‘낭’은 ‘나무’라는 뜻의 제주도 방언이다. 멀구슬나무는 독성이 있어서 구충제나 살충제 등으로 우리 생활에서 두루 쓰였다. 열매는 가축 사료에 섞어 구충제로 사용했고, 열매에서 짜낸 즙은 천연 살충제로 이용했다. 그뿐만 아니라 열매는 나프탈렌 대용으로 옷장에 넣어 사용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나뭇잎은 화장실에 넣어 구더기가 생기는 것을 방지했다. 제주도에서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을 때 나무껍질을 달여 마셔 낙태용 약재로 쓰기도 했다. 멀구슬나무는 빨리 자라는 속성이 있어 주로 가구재로 쓰였다. 제주도에서는 딸이 태어나면 멀구슬나무를 한두 그루 가꿨다가 딸이 출가할 때 장롱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이 외에도 멀구슬나무는 속성수로서는 좀체 보기 드물게 목질이 단단한 데다 색상이 다양해 건축재나 악기재 등으로도 널리 쓰였다.

잎이 돋아난 멀구슬나무.

계절의 움직임을 전하던 나무

멀구슬나무는 우리나라 일부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난대성 나무인 까닭에 문헌에 등장하는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쓴 시문 가운데 멀구슬나무가 등장하는 시구가 있어 여기에 옮긴다.

우헐피지늑소량(雨歇陂池勒小凉)
비 갠 방죽에 서늘한 기운 몰려오고
연화풍정일초장(楝花風定日初長)
연화풍 멎고 나니 해가 점점 길어진다
맥망일야도추료(麥芒一夜都抽了)
하룻밤 사이에 보리 이삭 부쩍 자라니
감각평원초록광(減却平原草綠光)
들판의 초록빛이 무색해졌네

다산이 강진 유배지에 있을 때 지은 ‘농가의 늦봄(田家晩春)’ 이란 시의 일부다. 중국 사람은 일찍이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바람을 모두 24개로 나누고 화신풍(花信風), 즉 꽃바람이라 이름 지었다. 그중 가장 먼저 꽃 소식을 전하는 바람을 매화풍(梅花風)이라 일컫고, 맨 마지막에 부는 바람은 연화풍(楝花風)이라 불렀다. 연화풍은 곡우(穀雨) 무렵, 즉 멀구슬나무 꽃이 필 즈음에 부는 화신풍으로 연화(楝花)는 멀구슬나무 꽃을 뜻한다. 연화풍이 불고 나면 마침내 봄은 가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한 그루의 멀구슬나무가 있는 해운대역

해운대역은 1934년 7월 15일 부산진역과 해운대역 간을 연결하는 동해남부선 개통과 더불어 영업을 시작했다. 그 후 동해남부선은 1935년 12월에 울산역까지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해운대역은 지금의 태화강역인 울산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여객 수요를 담당하다가 2013년 12월에 폐역이 되었다. 동해남부선 복선 전철화 사업으로 선로를 이설하고 역사를 이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폐역이 된 지 6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운대역은 폐역에 따른 후속 처리를 앞두고 보존과 개발이라는 상반된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어 여전히 뜨거운 감자로 남았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수많은 피서 인파로 북적였을 옛 해운대역 주변은 잡초와 잡목이 우거진 채 거미줄만 곳곳에 처져 있다. 역 구내는 이따금 건널목을 이용하려는 동네 주민만이 오갈 뿐 더 이상 사람이 찾지 않고, 낡은 역사는 유리창 일부가 파손된 채 방치되어 흉물스러운 폐허로 변했다. 다만 한 그루 멀구슬나무만이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퇴락한 역사를 쓸쓸히 지키고 있다.

광장에서 바라본 해운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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