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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망과 분노, 진정한 반성을 가로막다

장대호가 자수를 선택한 이유도 어쩌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치고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겠다는 쿨한 행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이토록 장대호로 하여금 잔인한 사고를 저지르게 했을까? 먼저, 장대호의 인터뷰에서 “다음 생애에도 그러면 나한테 또 죽어” 라는 말부터 보자. 이 말은 바꿔 말하면, ‘네가 나한테 그러지 않았으면 나도 널 안 죽였어’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상대방이 먼저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는 지극히 인과응보적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원인 제공자인 피해자를 설령 죽였을지언정 피해자가 자신에게 한 행위는 아직도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반성할 게 없다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살해 후 사체 훼손에 유기까지 했음에도 여전히 피해자에 대한 원망이 충만해 있음을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렇게 원망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반성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며, 만약 반성했다고 하더라도 재판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한 입에 발린 표면적 행동일 뿐 진정한 반성이라 볼 수 없다. 반성은 보통 자신이 한 행위가 상대방에게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주었을 때 느끼는 미안함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미안함을 만든 행위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것이 반성이다. 그렇다면 쌍방 간 다툼이 일어났을 때는 물질적 손해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까지 감안해 상대방이 나보다 더 많이 피해를 입었다는 생각이 들어야 비로소 미안하고 반성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적 고통이 주는 위험성

그러나 이 정신적 고통은 사람이 살아오면서 겪은 단순한 희로애락뿐 아니라 그 사람만의 심적 상처, 고통, 아픔, 트라우마 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고통은 자신이 느낀 주관적 판단만으로 결정되는 부분이라 수치를 가늠할 수 없다. 그리고 해당 다툼만으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다른 이유로 쌓여 있던 것과 합쳐져 느끼는 것인지 자신이 잘못 판단할 수 있다. 이는 곧 정신적 고통은 다툼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그 수치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평소 정신적 고통이 높다는 것을 의식하거나 그 이유를 명확하게 알고 있으면 그나마 분리시킬 이성이 작동할 수도 있으나,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조금씩 고통을 받아왔다면 그 수치가 높은 줄 모르고 살아왔을 가능성이 있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지만, 정신적 고통의 수치를 결정하는 감정은 해소하지 않는 이상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말이 있다. 이런 특성으로 볼 때 평소 장대호의 정신적 고통이 이 사건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반성, 어쩌면 자기 수행

나도 운전 중 누군가에게 칼치기를 당하는, 작다면 작은 일부터 협력 업체 직원의 고의적 거짓말로 고생한 일까지 살아오면서 정신적 고통의 수치가 높은 때가 있었다. 그로 인해 다른 일에서 화를 부를 뻔한 적도 있고, 나름 정신적 고통을 기존 것과 분리시킴으로써 헤쳐나가기 위한 시도도 했다. 그러나 인정하기 힘든 만큼 쉽지 않았고, 성공했다고도 말할 수 없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라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기심은 자신의 정신적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결정하는 데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힘들게 만든다. 그러기에 당연히 그 뒤에 따라오는 반성은 힘들 수밖에 없는 건 아닌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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