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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y 1
눈물겨운 가족 상봉

일정상 나 혼자 먼저 밴쿠버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잠을 설친 탓에 피곤하긴 했지만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는 의무감에 불탔다. 혼자서 그라우스산과 스탠리 공원, 개스 타운 등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아무리 새로운 것을 보아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부모님은 잘 오고 계신지 계속 신경이 쓰였다. 늦은 저녁 캘거리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하신 부모님이 벌떡 일어나 달려오셨다. 어찌나 반갑던지 마치 몇 년 떨어졌다 만나는 듯했다. 긴 비행 끝에도 부모님은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풀어내셨다. 특히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오신 아빠의 얼굴에는 실전을 앞둔 기대감이 묻어났다. 조금 수줍어하시던 아빠는 호텔 픽업 차량 기사와 금방 말문을 트셨다. 언제 이렇게 넉살이 좋으셨나, 신기할 따름이었다.

 

# Day 2
로키산맥 품으로

아침 일찍 밴프로 이동했다. 곧게 뻗은 길 끝에 만년설을 얹은 로키산맥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1885년 캐나다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밴프는 산봉우리와 호수, 빙하 등 경이로운 대자연을 품고 있다. 특히 빙하수가 흘러들어 형성된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호수들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루이스 호수를 찾았다. 10월 중순인데 곳곳에 눈이 쌓여 있었다. 만년설을 얹은 빅토리아산과 하늘빛이 녹아든 호수에 연신 감탄사가 나왔다. 자연 속에선 동심이 되살아나는 걸까. 까르르 웃으며 눈사람을 만드는 부모님이 낯설면서도 보기 좋았다. 동화 마을 같은 밴프 다운타운과 로키산맥을 조망할 수 있는 설퍼산 곤돌라도 진귀한 풍경이었다. 이날 숙소는 숲속 오두막이었다. 주변을 온통 나무가 빽빽하게 둘러싸고 있어 금방이라도 곰이 나올 것 같았다. 밤하늘의 별을 보자며 들떴던 우리는 날이 어두워지자 밖에 나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무에 둘러싸여 보낸 하룻밤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았다. 엄마의 배낭에서는 마법처럼 계속 먹을거리가 나왔다. 즉석 밥에 각종 양념, 라면까지. 여행 왔지 이민 왔냐며 타박했지만, 타지에서 먹은 한국 음식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퀘벡의 명물,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 / 퀘벡 역 전경. / 퀘벡에서 몬트리올 갈 때 탑승한 국영 철도 비아레일.

 

# Day 3
퀘벡에서의 전화위복

소형 비행기로 퀘벡에 도착했다. 여기부터 토론토까지는 차로 이동하기로 했다. 단풍이 아름답다는 메이플 로드도 보고 야생동물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맘이 설레었다. 예약해둔 차를 찾으러 갔는데, 직원이 미묘한 표정으로 차를 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는 그녀를 보며 인종차별인가 싶기도 했지만, 나중에 그동안 움직인 거리를 확인해보니 차로 이동한다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캐나다가 어마어마하게 넓었던 것이다. 전국 일일생활권에서 살아온 거리 감각으로 엄청난 일을 저지를 뻔했다. 100년 이상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퀘벡에는 유럽의 향기가 짙게 남아 있다. 인구의 90% 정도가 프랑스 출신으로, 지금도 영어보다 프랑스어를 보편적으로 쓴다. 특히 나이 든 분과는 영어가 통하지 않아 숙소에 체크인할 때 꽤나 애를 먹었다.

식사를 하고 몬트리올행 열차표를 구하기 위해 퀘벡 역으로 향했다. 캐나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역으로 꼽힌다는 이곳은 멋스러운 외관과 둥근 천장이 돋보였다. 아빠는 창구에서 “우리 딸도 철도 회사에 다녀요!”라고 자랑하셨다. 나이 지긋한 역무원은 친절한 미소와 함께 엄지를 치켜세웠다. 퀘벡의 명물은 단연 샤토 프롱트나크 호텔이다. 웅장한 고성을 닮은 이곳은 1893년 착공해 지금 모습을 갖추기까지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1939년 영국 처칠 수상과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논의한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호텔 앞 덱을 따라 이어진 강변에는 ‘단풍국’이란 캐나다의 애칭답게 알록달록한 단풍이 지천이었다. 어떤 물감이 도시를 이토록 아름답게 채색할 수 있을까. 참 좋은 계절이었다. 구수한 팝콘 냄새에 걸음을 멈췄다. 뻥튀기 아저씨를 닮은 사장님의 미소에 못 이기는 척 한 봉지 구입했다. 팝콘집 바로 옆은 ‘목 부러지는 계단’이었다. 경사가 급해 술 취한 사람이 굴러 목이 부러지곤 했다는 장소다. 아래로 유럽 감성의 아기자기한 상점이 모인 프티샹플랭 거리가 이어졌다. 프랑스인 정착촌이던 플레이스 로열이라는 작은 광장은 18세기 초 건립한 ‘승리의 노르트담 교회’와 퀘벡의 역사적 인물들을 그린 5층 높이의 대형 벽화로 유명하다. 벽화가 어찌나 정교한지 마치 건물 사이에 다른 골목이 있는 것 같았다.

 

# Day 4
왠지 익숙한, 몬트리올

퀘벡 역에서 국영 철도인 비아레일을 이용했다. 비행기가 닿지 못하는 캐나다 구석구석을 핏줄처럼 연결하는 고마운 교통수단이다. 차창 밖으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황금빛 가을 풍경이 눈부셨다. 겨울을 앞둔 계절임을 믿을 수 없을 만큼 따뜻한 색감이었다. 아빠는 이때 기차에서 본 광활한 옥수수밭 얘기를 두고두고 하셨다. 예전 부루마블 게임에서 캐나다 대표 도시로 등장해 많은 어린이에게 혼란을 준 몬트리올. 덕분에 나도 오랫동안 몬트리올이 수도인 줄 알았다. 주민 대부분 가톨릭 신자라 성당이 많은데, 그중 몬트리올 노트르담 대성당은 북미 대륙 최대 규모다. 당연히 여행 코스에 넣었는데 트러블이 발생했다. 입장료를 낸다고 하니 아빠가 성당은 다 비슷하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신 것. 한참 말씨름하다 결국 아빠는 밖에서 기다리고 엄마와 둘이 성당을 둘러봤다. 딸의 돈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아가라폭포와 유람선. / 토론토 시내의 CN 타워. / 시민을 위한 공간 역할을 하는 토론토 시청 전경.

 

“엄마는 커다란 창문에 다가서는 순간 탄성을 지르셨다. 도도하게 이어지던 강줄기가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숙박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 Day 5
오타와의 가을을 만끽하다

오타와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로 이동했다. 낯설지 않다 했더니 예전에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훈련 중에 타봤다고 하신 그 버스였다. 그때 할아버지는 수십 년 뒤 당신의 자손들도 이 버스로 여행을 다닐 거라 생각하셨을까? 길쭉한 그레이하운드가 그려진 버스가 정겹게 느껴졌다. 캐나다의 수도 오타와는 도시를 흐르는 오타와강에서 이름을 따왔다. 왠지 일본어 같다고 생각했는데, 원주민 언어로 ‘무역’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빌딩 숲을 지나자 국회의사당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이 어찌나 정교하고 아름다운지 이런 곳에서라면 의원들도 국민을 위한 정책을 적극 펼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들었다.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리도 운하를 지나 단풍나무가 줄지어 선 산책로를 걸었다. 어디를 보아도 온통 가을이었다.

# Day 6
여기가 바로 나이아가라폭포

‘너무 정돈돼 있다.’ 나이아가라폭포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주변 공원과 상업 시설 때문에 마치 테마파크 같았다. 그래도 가까이에서 본 폭포의 규모는 놀라웠다. 감정 표현을 잘 하지 않는 부모님도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이 엄청난 물살에 폭포 절벽이 매년 1m씩 깎여 지금은 댐으로 수량을 조절하고 있다고 했다. 나이아가라폭포는 캐나다와 미국에 각각 속해 있는데 캐나다 쪽이 훨씬 장엄하다. 나이아가라폭포 하면 나오는 대표적 이미지도 이곳이다. 폭포 관련 액티비티 중 우리는 가장 얌전한(?) 유람선을 택했다. 캐나다 유람선은 빨간색, 미국 유람선은 파란색 우의를 나눠준다. 물론 정신없이 몰아치는 물보라 앞에 무용지물이었지만. 우리는 온몸이 흠뻑 젖은 채 레인보 브리지를 구경했다. 이곳을 통해 캐나다와 미국 국경을 넘을 수 있는데, 간단한 입국 심사만 거치면 된다고 했다. 실제로 미국 여행객이 캐나다 쪽 폭포를 보기 위해 많이 넘어오는 듯했다. 이날 숙소는 나이아가라폭포 옆 호텔이었다. 엄마는 커다란 창문에 다가서는 순간 탄성을 지르셨다. 도도하게 이어지던 강줄기가 거대한 폭포수가 되어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숙박비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일몰과 일출도 또 다른 장관이었다. 여기서 찍은 사진은 오랫동안 엄마의 SNS 배경 사진으로 남아 있었다.

# Day 7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마지막 여정은 토론토였다. 캐나다에서 가장 큰 도시인데 서울과 비슷한 듯 달랐다. 우리는 토론토의 명물 CN 타워와 시청 앞을 둘러보았다. 마지막 식사는 고급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그동안 식사와 숙박에 가장 신경을 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마찰이 생겼다. 부모님은 딸이 번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고, 나는 열심히 알아본 노력을 몰라준다고 짜증을 냈다. 이번에는 내가 이겼다. 부모님은 큼직한 스테이크와 샐러드가 맛있다며 연신 감탄하셨다. 다시는 부모님과 먼 데 안 오겠다고 생각한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기분이 묘했다. 어릴 땐 내가 부모님을 따라다녔는데, 어느새 부모님이 나에게 많은 걸 의지하고 계셨다. 잘 모르던 부모님의 모습을 발견한 시간. 아직도 새로운 것을 보면 신기해하고, 꾸밈없이 웃을 줄 아는 분들이었다. 넓은 세상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비록 배낭 하나 메고 다닌 여행이었지만 그 옛날처럼 함께하면 추억이 두 배, 아니 몇 배가 될 테니까.

오타와에 위치한 캐나다 국회의사당. / 나이아가라폭포로 가는 길, 버거킹 매장의 프랑켄슈타인 조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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