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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트레인 소나타

글 손민두 기자(광주본부 광주고속철도기관차승무사업소) 일러스트 박경진

아직 차창 밖 먹빛 어둠은 그대로다.
나는 코트 깃을 여미며 얼굴을 창가에 내밀고 차창 너머로 시선을 무심히 던졌다. 홀로 서 있는 외눈박이 수은등이 고개를 숙인 채 눈보라를 맞으며 희끄무레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싸리눈이다. 흰 가루가 휘날리듯 바람결을 따라 나부끼는 오돌토돌한 눈입자들이 어둠 저편에 숨어 있다가 느닷없이 수은등 불빛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플랫폼 바닥에 나뒹군다. 굉장한 바람이다. 과연 오늘 배가 무사히 뜰 수 있을까? 나는 어느새 눈을 감은 아라의 가슴께를 가로질러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차창에 바짝 얼굴을 대보았다. 하지만 콧김이 먼저 차창에 달라붙어 뿌옇게 흐려져서 소매를 당겨 훔쳐내야 했다. 한겨울에 울릉도를 찾는 것은 모험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부는 강한 바람에 배가 뜰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었다. 어렵사리 그곳에 도착해도 폭풍주의보가 내리면 몇 날 며칠 섬 안에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된다고 했다. 오히려 그조차 즐기는 여행 마니아들도 있지만 나와 아라처럼 깊은 사연이 있지 않고선 떠나기 어려운 여행임이 분명했다. 혹시 배가 결항되면 어쩌나, 어젯밤 늦게까지 일기예보에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다행히 남부 지방은 서울과 달리 날씨가 맑고 바람이 덜 분다는 거였다.
한 달 전, 아빠와 함께 이 겨울이 가기 전 울릉도에 꼭 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아라의 연락이 왔다. 나는 태어나 가장 달뜬 마음이 되었다. 무릇 사람이 느끼는 기쁨이나 슬픔 같은 개별적 감정 속에는 여러 마음이 뒤섞이기 마련이다. 기쁨 속에도 불안이 있고 불안 속에도 희열이 있는 법, 그러나 아라의 울릉도 여행 제안은 그 무엇도 생각할 필요 없이 내 마음 안에 오롯한 기쁨을 불러일으켰다. 아라가 자신의 영혼이 태동한 울릉도 여행을 기회 삼아 부모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겠다는 뜻으로 읽혔기 때문이었다.
열차가 고속으로 달리는데도, 리듬이나 높낮이조차 없이, 단조롭고 따분한 주행 소음은 차 안의 승객을 곧장 곤한 새벽잠에 몰아넣고 있다. 객실 안은 건너편에 앉은 승객이 내는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정숙하기만 하다. 차창 너머, 새벽의 어둑한 산들이 고개를 숙인 채 소복이 쌓인 눈을 품고 있다. 나는 눈을 한 아름씩 안고 있는 산들을 바라보며 그 옛날 하얀 블라우스 교복을 입은 아라의 엄마, 오윤희를 떠올렸다. 둘이서 처음 기차에 오르던 날, 그녀가 내게 해주던 이야기가 지금도 귓가에 쟁쟁하다.
“기차를 타면 한 편의 교향곡을 듣는 것만 같아. 느릿한 출발은 곡의 시작과 같고, 덜컹거리며 구르는 바퀴 소리는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경쾌한 리듬을 만들어내잖아. 이뿐만이 아니야. 우렁찬 기적은 트럼펫의 힘찬 기상을 떠올리게 하고, 전속력으로 달리면 절정을 향해 박력 있게 치닫는 오케스트라의 클라이맥스를 방불케 해. 기차가 속도를 줄이며 정거장에 도착할 때도 편안하게 결말을 맺는 곡의 마무리처럼 멈추는 안정감이 느껴지거든.”
레일 이음매 위를 구르는 바퀴의 타닥거리는 소리에서 박자를 읽고, 속도의 변화에서 선율을 잡아내다니. 나는 그녀의 예리한 음악적 감수성에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더욱이 기차가 내는 굉음에 질려 늘 귀를 막고 살아온 나로선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같은 소릴 듣고도 어찌 이리도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기차와 처마가 닿을락 말락, 철길에 바짝 붙은 허름한 집에 살며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놀란 가슴을 움켜쥐던 나로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힘든 노동을 마치고 곤한 잠에 빠진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랑곳 않고 잘도 주무셨다. 하지만 신경이 예민한 나는 기차가 올 시간이 됐다 싶을 때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고 맥박이 빨라졌다. 기차가 지나간 후에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나이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 버거운, 단순한 소음과 진동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것은 일찌감치 내게 지워진 고달픈 삶의 멍에, 즉 가난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그만큼 기차 소리는 나에게 견디기 힘든 고통이자 공포였다.
그런 내게 전해진 그녀의 기차에 대한 낭만적 사유는, 그것이 비록 잘 훈련된 음악적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소음에 대한 나의 통념을 깨부수기 충분했다. 그 후, 나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던 기차에 대한 공포가 차츰 풀어지기 시작했다.
감벽 색깔의 하늘이 실눈 사이로 여틈하게 보인다. 이제 눈발은 그쳤다. 금세 차창에 해 뜨는 모습이 장엄하다.
여전히 눈을 감고 있는 아라가 부신 눈을 가리기 위해 손을 뻗어 햇빛 가리개를 아래로 잡아당기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하얀 손가락이 내 눈길을 잡아챈다.
우윳빛처럼 희고 고운 아라의 손가락은 마치 긴 다리의 여인이 요리조리 놓인 징검다리를 사뿐히 건너듯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던 윤희의 손가락과 많이도 닮았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장 한가운데를 뚫고 뜨거운 피가 솟구치는 것만 같다.
좌석 앞 테이블 위에 놓인 전화기가 반짝 빛나며 문자 수신 신호가 들어온다.
선생님, 우리 영화 이달 중 촬영 끝나고 다음 달부터 편집 들어갑니다. OST 작곡 다 마무리되셨지요?
약속 어기신 적 없지만 날짜가 다가와 연락드립니다. 영화사 음악 감독으로부터 온 문자다. 이럴 땐 얼른 답을 보내는 게 상대에 대한 배려다.
네, 마무리 작업만 남았습니다. 울릉도 다녀와서 완성해 보내겠습니다.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내 민머리를 덮은 헌팅캡을 눈자위까지 끌어 내리고 눈을 감았다. 그러곤 아라에게 영혼의 고향이랄 수 있는 30년 전 울릉도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 2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