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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될 것 같아도 일단 한번 해보세요. 아무도 당신의 한계를 단정 짓지 못하게 하세요. 누구든 요리할 수 있어요.”

–영화 <라따뚜이> 중에서
글 정고운(대구본부 하양역)

2020년이 쥐띠 해인 만큼 쥐가 주인공인 영화를 소개한다. 이름하여 2007년에 개봉한 <라따뚜이>.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라따뚜이를 쥐로 착각해 웃음을 산 적이 있다.
우리에게 영화 속쥐의 이름처럼 여긴 이 라따뚜이는 프랑스 가정식 야채 스튜 이름이다.
영화 속 쥐의 이름은 ‘레미’. 레미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더럽고 쓰레기를 먹는 쥐가 아니다.
요리를 좋아해서 청결을 중요시하고 상한 음식은 먹지 않는다.
요리에 천부적 소질이 있는 레미는 재능 없는 요리사인 링귀니를 조정해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한다.

 

쥐와 주방의 이질적 조합

이 영화는 ‘더러운 쥐와 청결한 주방’이라는 상반된 소재를 기발하고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레미가 자신의 몸보다 큰 조리 도구와 재료를 사용하는 장면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묘기를 보는 듯한, 한 편의 현란한 요리 과정이 끝나면 따끈따끈한 음식들이 나온다. 그걸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푸근해진다. 차가운 미식가의 마음을 연 건화려하고 비싼 음식이 아닌 평범한 가정식이었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먹어보지도 않은 먼 나라 음식, 라따뚜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먹어봤는데, 정말 맛있었다!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그런지 친근한 맛이기도 했다.

Anyone can cook!

이 대사는 영화에 나오는 유명한 주방장인 ‘구스토’가 한 말이자, 레미가 꿈을 키우는 데영감을 준 말이다.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의그 ‘누구나’에 쥐가 포함될 줄 상상이나 했을까? 대상을 사람에서 동물로 확장시키는 픽사(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가장 안 어울리는 캐릭터로 인해 영화의 의도가 더욱 신선하게 와닿는다.
구스토는 출신이나 편견이 본인의 한계를 단정 짓지 않기를,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이리저리 눈치 보고 조건을 따지다 보면 자신이 없어진다. 레미도 처음에는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편견을 깨기는 어려울지라도 적어도 나 스스로 안 된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는 내 고정관념을 깨준 사랑스러운 영화다.
가족과 따뜻한 음식을 먹으면서 함께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 2020년은 모두가 레미처럼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행복한 한 해가 되면 좋겠다. 그것을 잘하든 못하든 눈치 보지 말고 말이다.

하루는 무덥고 시끄러운 정오의 길바닥에서/ 그 노인이 조용히 잠든 것을 보았다/ 등에 커다란 알을 하나 품고/ 그 알 속으로 들어가/
태아처럼 웅크리고 자고 있었다/ (중략)/ 거대한 도시의 소음보다 더 우렁찬/ 숨소리 나직하게 들려오고/
웅크려 알을 품고 있는 어둠 위로 종일 빛이 내리고 있었다/ 다음 날부터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김기택의 시 ‘꼽추’ 중에서
글 이주희 기자(수도권동부본부 정자역)

오이를 심었다. 내가 알고 있는 오이가 아니었다. 참으로 낯설었다.
오돌토돌 작은 돌기들은 진딧물인줄 알았고, 어느 정도 컸다 생각해 따려는데 따기가 힘들었다. 때가 되니 저절로 떨어졌다.
자연을 통해내 안에 기다림의 여유를 채웠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는 것이 거의 없다. 우리가 받는 수업은 우리에게 인내와 복종을 각인시키는 데 가장큰 의의를 둔다”로
시작하는 소설 <벤야멘타 하인학교>는 많은 것을 암시한다.
또한 다양한 삶을 살아온 독자에게 맞춤형 물음을 던지며 여러 가지 해석을 이끌어내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해 결국 삶이 원하는 것은 격동적 움직임이라는 것,
성찰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야콥 폰 군텐의 이야기다.

 

벤야멘타 훈련생이 된 야콥

야콥의 내면에는 선조부터 내려온 길들여지지 않은 반항심이 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경험하기 위해, 착하고 성실하게 행동할 것을 결심하면서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훈련생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의 시중을 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스스로 불안한 상념의 세계에 접근하면서 “내가 만약… 한다면 어떨까?”라는 말로 자신을 결박하거나 구속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결국, 벤야멘타 하인학교와 영원한 작별을 고하고 새장 속의 사자 벤야멘타 교장과 함께 사막으로 떠난다. 자아분열을 통해 무의 세계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만들어진 길을 걸어온 우리에서 돌아서기를

지금, 우리는 거대한 벤야멘타 하인학교에 들어와 있다.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은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작은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는 법칙, 가해지는 강요, 나아갈 방향 등 많은 냉혹한 규정은 위대하지만, 우리는 위대하지 않음을 정확히 인지해야 한다. 태어나자마자 하인학교의 교육 목표에 길들여지고, 내 존재와 본성대로 살고자 하는 욕구도 없이 구속된채 모범적·사회적 인간으로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기에 명령이 떨어지면 주어진 과제에 즉각 대처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크라우스 같은 인물, 즉 상투적 빈말과 거짓, 허영 위에 세워지고 길들여진 세상에서 평온한 삶을 찾아가는 훈련생들은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훌륭한 학생들이다.
그동안 우리는 하인학교의 훌륭한 학생이 되기 위해 정의와 선함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만들어진 길을 걸어왔다. ‘이것이 나의 인생인가?’ 하며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그야말로 사치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에 때가 되어 알기엔 시간이 없다. 그러나 이제 나는 볼 수 있다. 너무나도 지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며, 만들어진 조직에 순종하고 겸손하게 살아가고자 지친 나. 내등에 커다란 알을 품고 있어 곧 껍질을 깨고 등뼈가 부서지도록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날 것 같은 이방인의 기질을 지닌 나. 아! 어찌할까, 아직, 나는 경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