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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정선군 신동읍은 한때 함백광업소로 남부럽지 않은 번영을 구가하던 지역이다.
지금은 한 세대 전의 빛바랜 이야기로 가볍게 치부하지만, 1930년대 태백에서 한반도 남반부 최초로 무연탄이 발견된 이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국내에서 가장 필수인 동력원이자 난방 연료는 석탄이었다.

글과 사진 김구현(연구원 연구계획처)

국내에서 가장 큰 탄전 지대인 강원도 남부에서도 정선 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사북, 장성, 도계와 더불어 규모가 크고 활발한 주요 탄광으로 꼽히던 곳이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분단과 전쟁을 지나오며 한반도 북쪽에 편중되어 있던 산업 기반 시설을 상실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하던 경제 부문 과제 중 하나가 바로 석탄 채굴을 늘리고 이를 효율적으로 수송하여 부족한 전력을 생산하는 일이었다. 탄전에서 발전소나 공장, 도회지 내 무연탄 취급 역 같은 수요처로 석탄을 운반하는 데는 철도의 역할이 지대했다. 특히 매년 겨울이 다가올 때마다 ‘월동 수송 대책’을 세워 난방에 필요한 석탄과 기름, 김장 채소나 양곡, 소금 같은 민생 물자를 전국 대도시에 공급하는 모습은 1960~1970년대 우리나라 철도에서 지극히 일상적인 일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큰 탄전 지대인 강원도 남부에서도 정선 석탄공사 함백광업소는 사북, 장성, 도계와 더불어 규모가 크고 활발한 주요 탄광으로 꼽히던 곳이다. 1957년 3월 9일 제천에서 영월을 지나 함백까지 철로가 뻗은 것도 여기서 채굴하는 무연탄이 당시 미약하던 산업 기반을 일으키는 데 아쉬웠기 때문이다.
함백탄광은 전성기이던 1970년대를 거쳐 지역사에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1993년에 폐광되었지만, 현지에는 아직도 탄광의 자취가 짙게 배어 있다. 고산지대를 가르는 골짜기를 따라 태백선과 함백선 철로가 나란히 마주보는 가운데, 예전에 탄광 사택이었던 집들이 그 사이에 늘어선다. 탄광촌으로서의 향토문화를 기억하고 전승하는 전시관이나 관광 명소도 풍경에 어우러진다.
지금 소개하는 조동간이역은 오늘날 함백선과 태백선이 만나는 조동신호장과는 관련 없는 별개의 장소다. 여기서 조동간이역이란 1960년대 함백선(오늘날 태백선의 전신으로 1957년 3월 9일 영월에서 연장해 함백까지 개통)이 다니던 시절, 종점 함백에 못 미처 구룡동 마을 앞에 설치해 지역민이 타고 내리던 임시승강장이다.
기록도 찾기 힘든 임시승강장이 이곳에 있었고, 실제로 여객을 취급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은 수년 전정선군이 제공하는 향토 지리 자료에 짧게나마 언급되어 있어서였다. 위치는 조동3리 1반으로, <정선군보> 제468호를 보면 아직도 여기에는 ‘간이역’이라는 자연 지명이 등록되어 있다. 과거 조동 임시 승강장이 있던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이 조동 임시승강장이 있던 터를 답사하는 데는 고맙게도 다른 분들의 도움이 컸다.
지난 2013년 7월, 조동리에 직접 가서 마을의 연로하신 분들에게 얻은 증언을 종합해 임시승강장 터를 추정하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다. 그 후 뜻밖에도 고향이 함백이어서 옛 조동간이역을 분명하게 기억하는 분이 글을 보고 연락을 준 덕에 오차를 줄이고 정확한역 터를 특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새로 얻은 증언에 의하면 간이역 터는 지금의 조동3리 버스 정류장 앞함백선 조동 건널목에서 함백역 방향을 보고서 곧바로 철로 오른편에 있었다. 변변찮은 대매소나 플랫폼조차 있었을지 모를 임시승강장이지만 통학생이나 장 보러 가는 마을 사람들이 여기서 잠시 정차하는 열차를 타고 내렸고, 조간신문 배달도 이곳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한다.
탄광이 한창 활기를 띨 무렵에는 집들이 골짜기를 메우고 산등성이에까지 올라앉았다고 하니 임시승강장을 짓고 열차를 세울 만도 했으리라.
당시 동네에서는 이 임시승강장을 두고 ‘구룡동 간이역’이나 ‘조동간이역’, 아니면 그냥 간이역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듣기로는 정식 역명이 조동이었다는데 근거가 궁금하여 찾아보던 중, 철도교통사(史)를 함께 공부하는 분이 1964년도 <철도연감>에서 단서를 잡아내어 일러주었다. 1963년 9월에 교통부에서 철도청이 분리되면서 그때까지 매년 <교통통계연보>로 나오던 ‘철도교통 통계연보’가 이듬해인 1964년부터는 <철도연감>으로 발간된 것으로 아는데, 1964년 첫 번째 <철도연감>에서 역별 상·하행 인-킬로미터 수송 거리 표를 보니 함백선 예미와 함백 사이에 ‘조동’란이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예미에서 갈라져 산 중턱을 타고 증산, 정선 방향으로 향하는 태백선도, 함백역에서 또아리굴을 지나현 조동신호장에서 태백선에 합류하는 구간도 전혀 없었을 때이니 이는 물론 지금의 조동신호장과는 관계가 없고, 우리가 찾는 임시승강장을 가리키는 것이다.
기왕이면 과거 지방철도국 시절 문건을 살펴 신설, 폐지된 날짜까지 알아보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니, 정식 역명이나마 확실히 알게 되어 다행이었다. 임시 승강장답게 표에서 승하차 통계 수치는 적혀 있지 않았다.
게다가 1965년 연감부터는 ‘조동’란이 아예 삭제되니, 1964년 연감에서 미처 지우지 못하고 드러났음이 기막힌 행운이라면 행운이었다. 미루어보건대 이 역은 늦게 잡아도 70년대에는 이미 없어진 모양이다. 임시승강장 터전후로 함백선에 구배(경사)가 상당한지라 정차했다가 발차하기가 운전상 큰 애로였을 수도 있겠다. 향토사 구석에 한두 줄 짧은 기록으로 오르다가 그마저도 누락되기 일쑤인, 지역의 옛 모습과 더불어 알아주는 사람 없이 점차 잊힐 운명을 지닌 자디잔 간이역이지만, 한때 많은 지역민들의 생애 한 조각이 서린 그곳에 나도 조용히 마음한 조각을 놓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