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riendly, PDF & Email

“필리핀에 철도가 있어?” “산미겔은 맥주 회사 아니야?”
2018년 3월 ‘마닐라 메트로 7호선 기술 자문 사업’ 수행차 필리핀에 온 후로 한국 지인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맥주 회사가 무슨 철도 사업을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산미겔(San Miguel)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한다.

글과 사진 임채복(한국철도공사)

산미겔은?

필리핀에서 산미겔의 위치를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현대나 삼성 같은 이미지다. 1890년에 설립한 이 회사는 식품·음료 사업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에너지, 도로, 통신 등 인프라 사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마닐라에서 시외로 나가기 위해서는 산미겔의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고 산미겔이 운영하는 고속도로를 타야 할 정도였다. 산미겔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해 한 해 매출 20조 원 이상의 대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런 기업이 2016년을 기점으로 메트로 사업에 뛰어들었으니, 바로 마닐라 메트로 7호선(MRT-7)이다.
이는 산미겔이 정부로부터 건설권과 운영권(25년)을 받은 민관 협력 사업(Public-Private Partnership, PPP)이다.
한국철도는 필리핀 철도 사업을 위해 산미겔과 꾸준히 쌓아온 신뢰 관계와 전문성을 바탕으로 선제적으로 자문 사업을 제안했고, 사업 초기부터 함께하고 있다.

우리 한국철도와 산미겔의 관계는?

한국철도의 필리핀 진출이 처음부터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2012년 산미겔과 MRT-1 남부 연장 사업 입찰을 준비했지만, 제안서 제출일 당일 산미겔에서 입찰을 포기했다. 파트너사로서 이의를 제기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컨소시엄 주관사인 산미겔의 전략적 판단을 존중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해당 사업은 용지 확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사업 추진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2014년에는 MRT-2 운영 및 유지·보수 사업에 함께 참여했다. 제안서부터 입찰 자격 심사 통과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치가 문제였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취임하며 “정부에서 추진 중인 모든 민관 협력 사업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사업은 무기한 연기된 끝에 결국 무효화되고 말았다.
평탄치 않은 산미겔과의 인연은 2016년 MRT-7 운영 및유지·보수(O&M) 자문 사업으로 결실을 보게 된다.
첫 인연 이후 수주까지 4년 이상이 걸린 것. 그렇게 선배들이 일궈놓은 길을 따라 이곳 필리핀에서 한국철도라는 이름으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행동과 말에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MRT-7 건설 자문 사업은 필리핀 현지와 차량 제작 검사를 수행하는 창원, 분야별 시공 자문과 사업 관리를 하는 대전까지세 곳에서 10여 명이 함께 한다. 설계 단계부터 한국철도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하고 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얼마 전 한국철도는 ‘마닐라 신공항 및 3개 메트로 노선 건설 사업’에 철도 운영 예정사로 참여해줄 것을 요청받기도 했다.

필리핀 MRT-7 사업은 지금

필리핀의 MRT-7 사업은 착공한 이래 4년 차를 맞고 있다. 그간의 노력으로 공정률은 50%를 넘어섰고, 지난해 하반기에 드디어 철도 상부 구조(궤도, 신호, 전철 전력, 통신) 시공을 개시했다. 하지만 필리핀 토목 사업의 고질적 문제인 시공과 용지 수용 지연으로 당초 목표보다 2년 늦은 2021년 부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발주처(필리핀 교통부)와 사업자(산미겔) 간 이슈 사항도 많아져 자문 업무량도 처음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는 만큼 산미겔과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그만큼 보람도 크다.
2012년부터 시작한 한국철도의 필리핀 철도 시장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6년 전 처음 필리핀 철도 시장을 두드린 선배들의 노력으로 MRT-7 건설 자문 사업이라는 결실을 얻은 것처럼 이 사업이 한국철도의 첫 해외 철도 운영 및 유지·보수 사업이라는 열매의 씨앗이 되기를 바란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씨앗이 싹을 틔웠는지도 모른다. 우리 한국철도가 전사적 관심과 지원 아래 미래의 수익 기반이 될 해외 사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육성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한국철도 해외 사업 파이팅!

1 지프니

미군 트럭을 여객용 버스로 개조한 지프니(Jeepny)는 필리핀 대중교통의 핵심이다. 매연과 굉음을 내뿜으며 달리기에 개선 대상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필리핀인에게는 서민의 삶을 대변하는 상징과 같은 존재. 옆으로 비좁게 앉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신체 접촉도 발생하지만, 필리핀인은 공동체적 문화라고 생각한다.

2 교통 체증

마닐라에서 지내본 사람은 “거기 얼마나 멀어?”라고 묻지 않는다. “거기 얼마나 걸려?”라고 묻는다. 마닐라의 교통 체증을 겪어보면 거리와 시간은 비례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출퇴근 시간에는 10km 남짓한 거리를 가는 데 무려 2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3 치밥

한국에 치맥(치킨+맥주)이 있다면 필리핀에는 치밥(치킨+밥)이 있다. 한국 사람만큼이나 이곳 사람들의 치킨 사랑 역시 만만치 않다. 점심시간에 맥도날드에 가면 햄버거를 먹는 사람보다 치밥을 먹는 사람이 훨씬 많다.

 

4 Ber Months

필리핀의 크리스마스 시즌은 9월부터 시작된다.
‘Ber Months’라고 해서 영어로 ber로 끝나는 네 달(september, october, november, december)이 크리스마스 시즌인 것.
그래서 주요 쇼핑몰은 늦어도 10월이면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마치고 디데이 카운트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