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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태백역 구내에는 날씨가 추울수록 더욱더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바로 순백의 수피를 자랑하는 자작나무다.

글과 사진 김응기 기자(수도권동부본부)

자작나무의 다양성

자작나무는 자작나뭇과에 속하는 대표적 한대 수종으로,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얼지 않고 살아남을 만큼 추위에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부 이북의 고산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하얗고 깨끗한 수피가 눈길을 끄는 데다 이른 봄에 돋아나는 연둣빛 이파리와 노랗게 물드는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조경용으로 심고 가꾸는 곳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자작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는 자작나무 외에도 물자작나무라고도 부르는 거제수나무를 비롯해 물박달나무, 사스레나무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자작나무와 닮은꼴이라 가려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잎 모양과 잎맥 수, 껍질 색 등에 약간 차이가 있어 이를 구분점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자작나무는 특히 껍질 색이 유난히 희고 깨끗하며, 잎 모양이 삼각형에 가까워 눈에 띈다. 잎맥은 6~8쌍 정도다.

나무의 의미와 용도

자작나무는 얇고 하얀 껍질이 여러 겹으로 줄기를 둘러싸고 있다. 껍질은 기름기를 많이 머금고 있어 불에잘 타는데,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하여 자작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작나무 껍질은 등불이 없던 시절에 어둠을 밝히는 재료로 쓰였다.
결혼식을 일컫는 ‘화촉(華燭)을 밝히다’라는 말도 자작나무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화촉’은 중국 육조시대부터 경사스러운 날에 사용하던 ‘붉은색 초’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꽃 화(華)’ 자와 ‘자작나무 화(樺)’ 자의 음이 같아 부회(附會)한 것이 아닌가 여긴다.
자작나무 껍질[樺皮]은 방부 기능이 있어 잘 썩지도 않는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지붕의 재료나 배를 만드는 자재로 쓰였다.
그뿐 아니라 종이 대용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다래[障泥]의 ‘천마도’나 말다래 옆에서 발견된 ‘서조도(瑞鳥圖)’의 재료 등이 그 예다.
이 외에 인도 북부 지역을 비롯해 아시아 각지에서 발견된 산스크리트어 불경 재질 역시 자작나무 껍질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자작나무는 재질이 단단하고 조직이 치밀한 데다 결이 고와 가구나 조각의 재료로 쓰였다.
뒤틀림과 변형이 적어 팔만대장경 경판 일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자작나무는 사우나를 할 때도 이용했다.
핀란드와 러시아에서는 사우나를 할 때 잎이 달린 자작나무 가지를 다발로 묶어서 온몸을 두드리며 마찰을 일으킴으로써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을 이용해 자일리톨을 개발해 충치 예방에 도움이 되는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활용했다. 이 외에도 자작나무 수액은 시럽의 재료였으며, 자작나무는 우리 문학의 소재로도 쓰였다. 평안도 출신 시인 백석(白石)이 지은 ‘백화(白樺)’라는시 전문이다. 백화는 수피가 하얀 자작나무를 일컫는 한자어다. 자작나무는 북녘을 대표하는 나무답게 백석이 살던 평안도의 산촌을 온통 지배했나 보다. 집도, 산도, 땔감도, 우물도 모두 자작나무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없을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북에 고향을 둔 이들에게 자작나무는 고향을 상징하는 나무가 되었다.

자작, 그 자태가 드러내는 경이로움

자작나무는 찬 바람이 쌩쌩 부는 한겨울에라야 진가가 드러난다. 모두 다 잎을 떨군 차가운 계절에 하늘 높이 곧게 솟은 채 군락을 이루며 나란히 서 있을 때 자작나무는 순백의 수피가 더욱더 돋보인다. 몇 해 전 북유럽 여행길에서 본 새하얀 아름드리 자작나무 숲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무척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툰드라의 차가운 공기와 설원 속에서 의연하게 버티고 서 있던 노르웨이 자작나무 군락은 경외감마저 불러일으켰다. 지의류(地衣類)를 이불 삼아 동토에 뿌리 내린 키 작은 자작나무 군락은 한마디로 경이 그 자체였다.
태백역 구내 자작나무 숲은 북구(北歐)의 자작나무 숲에 비하면 하등 내세울 것이 없다. 하지만 굳이 고산지대를 찾지 않더라도 가까운 기차역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태백역의 자작나무 숲은 특별하다. 지금은 비록 보잘것없다 하더라도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언젠가 격조 있는 숲으로 변모할 것이다. ‘숲의 여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새하얀 수피의 위용을 과시하면서 귀족적 자태를 여지없이 드러내게 될 터다.

산골 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山)도 자작나무다그 맛있는 메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甘露)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山) 너머는 평안도(平安道) 땅도 뵈인다는이 산(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