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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둘레를 75바퀴 달렸다!”

300만km! 수치만 보면 도무지 감이 오질 않는다.
“빛이 10초간 이동한 거리,  지구에서 달까지 약 8회 왕복한 거리, 지구 둘레를 일흔다섯 바퀴 돈 거리,
서울과 부산 사이를 3539회 이상 왕복해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라는 설명을 듣고서야 이 300만km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 실감한다. 와! 그제야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글과 사진 신기훈 기자(부산경남본부)

부산고속기관차 승무사업소 감병근 기장을 만나다

2019년 12월 6일, 부산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는 ‘무사고 운전 300만km’ 기념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행한 기념행사는 가족과 수많은 동료의 진심 어린 축하 덕분에 온기가 피어났다. 이번 행사의 주인공 감병근 기장의두 눈에는 감동의 물기가 아른거린다. 하늘에서 점찍어준다는 ‘무사고 운전 300만km’의 주인공을 만났다.

기자  사보 애독자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감병근 기장(이하 감) 사보를 사랑해주시는 애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에서 기장으로 근무하는 감병근입니다. 1980년 9월 2일, 당시 부산지방철도청 대구기관차승무사무소로 초임 발령받아, 부산기관차승무사무소를 거쳐 현재 부산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를 지키고 있습니다.
지난해 ‘무사고 운전 300만km’ 달성을 축하해주신 직장 동료 그리고 관계자 여러분에게 사보를 통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기자  영광의 ‘무사고 운전 300만km’를 달성한 소감을 들려주세요!

  ‘무사고 운전 300만km’를 하다 보니 느낀 점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사 혼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슨 일이든 나 혼자서, 내가 잘나서 이룬 것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300만km의 완성인 H148 근무를 위해 기념행사 전날 잠시 서재에 앉아 있는데, 우리 부산고속기관차 동료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주위에서 묵묵히 도와준 선후배의 끈끈한 동료애와 직렬을 초월한 한국철도인의 하나 된 팀워크로 ‘무사고 운전 300만km’를 달성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한 가족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특히 불규칙한 교번 근무를 하는 제 생활에 맞춰 내조를 잘해준 아내가 정말 고맙습니다. 또 ‘KTX 기장’인 아빠를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며 잘 커준 두 딸과 막내아들도 고맙고 기특합니다. 여보! 그리고 우희야, 우미야, 우성아! 아빠가 많이 많이 사랑해!^^(부끄)
셋째는 다시 한번 더 우리 한국철도인의 노고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지난 1999년 철도의 날 100주년 기념행사 때최연소 ‘무사고 운전 70만km’ 달성으로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때는 우리 철도인의 노고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후 철도청에서 한국철도로 전환되어 2005년 5월 22일 최초로 ‘무사고 운전 200만km’를 달성하며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철도 안전 운행은 모든 직렬의 수많은 직원이 흘린 피와 땀이 섞인 결과물이라는 것을요. 차량을 완벽하게 정비해주는 차량 분야, 선로를 안전하게 유지·보수해주는 토목 분야, 기장(기관사)이 믿고 운행할 수 있게 정확한 신호와 통신을 책임지는 정보 통신 분야, KTX 동력차에 항상 안정된 전압을 유지해주는 전기 분야, 역사를 항시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주는 건축 분야, 고객에게 표를 판매함은 물론, 열차에 안전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무 영업 분야 등한국철도의 모든 분야 직원들께 우리 함께 만든 ‘무사고 운전 300만km’의 영광을 돌립니다.

기자  ‘무사고 운전 300만km’를 달성하기 위한 개인적 노력이나 노하우는 무엇인가요?

  노하우라고 하기는 부끄럽고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게는 ‘여섯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우선 첫 번째로는 ‘건강’입니다.
열차 안전 운행을 위해서는 본인의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즉, 불규칙한 교번 근무를 하면서도 틈틈이 운동해 체력을 유지해야만 300km/h의 속도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감과 정신적 착란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등산과 봉사 활동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며 승무해왔습니다.
두 번째는 항상 즐겁게 일하는 ‘긍정적 마음가짐’입니다.
기장(기관사)직에 대해 항상 장점만 생각하고, 다소 힘든 부분이 있더라도 좋은 점만 보려 노력합니다. 야간열차 출근 시피곤을 느끼기보다는 ‘오늘은 어떤 멋진 풍광이 펼쳐질까?’라며 기대감을 갖습니다. ‘초승달이 할머니 허리보다도 더 굽었구나!’ ‘잔잔한 달빛이 옛 추억을 선물해주네!’ ‘요즘처럼 겨울에는 높은 산꼭대기에 상고대가 하얗게 내려앉아 무척 아름답구나!’ 이렇듯 풍광을 보는 즐거움을 먼저 알아야 일이 즐겁습니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티베트 속담이 있습니다. 내일 걱정 때문에 오늘의 행복을 잃지 않는 티베트인의 삶의 지혜를 생각하며 근무에 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333전법’입니다.
열차 발차 5분 전, 저만의 ‘333전법’이라는 심호흡을 합니다. 숨을 들이쉴 때 일곱 번 나눠서 숨을 깊이 마시고, 7초간 들숨 상태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곱 번 나눠서 내쉽니다. 연속으로 3세트를 하는 것이 ‘333전법’인데, 하고 나면 모든 잡념이 싹 사라집니다. 이러한 깨끗한 정신으로 ‘1000명의 고객이 나 하나 믿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는 생각을 하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고, 결코 안전에 대해 소홀할 수가 없습니다.
네 번째는 ‘열차 발차 전 5분, 도착 전 5분!’입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축구와도 같습니다. 통계적으로 경기 시작후 5분과 끝나기 전 5분에 실점을 가장 많이 합니다. 그만큼 정신력이 흐트러지고 그 결과 실수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이지요.
열차 운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차 발차 5분 전, 앞서 말씀드린 호흡법으로 정신을 맑게 가다듬어 평정심을 유지한 후, 시간표와 열차 번호가 일치하는지, 선로와 출발 신호기가 올바르게 현시되어 있는지, 진로는 올바른지, 새로운 서행 개소는 어디인지 등을 최종으로 점검한 후 발차합니다. 또 도착 5분 전에는 곧도착한다는 안도감은 잠시 미루고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유지합니다. 열차가 정지 목표에 정확히 정차한 후에도 운전실 기기들이 올바른 위치에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한 후 승무 사업을 종료합니다. 초임 기장님, 기관사님! 이 5분을 기억해주세요!^^
다섯 번째는 ‘나만의 로그북(운전 상황 기록부) 작성’입니다.
현재 한국철도는 KTX-1 46편성, KTX 산천-1 24편성, KTX 산천-2(호남) 22편성(임대), KTX 산천-3(원강) 15편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저는 KTX를 도입했을 때부터 제가 승무하는 모든 편성의 습성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보지 못한 편성을 승무하게 될 경우는 로그북을 찾아 최근에는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고장이 발생했는지 승무 개시 전 차량에 대해 꼼꼼히 살펴봅니다. 즉,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기술적으로 즉각 대처할 수있도록 대비하는 것입니다. 여행도 알고 가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낀다는데, 차량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예컨대 어느 편성의 열차는 경전선 진입 시 ATP에서 ATS로 전환되며 비상제동이 체결되는 습성이 있다면, 비상제동 체결 시신속하게 조치할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미리 준비하는 것입니다.
‘자동 제동변 비상 위치, MC/IC 중립 위치 후, VCB 밑에 위치한 ATS RS(복귀) 스위치로 비상 복귀!’를 머릿속에 미리 입력한 후 승무한다면 문제 발생 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조치할 수 있습니다. 또 고속선에서 일반선으로 운행 중 5분 내에 전차선 전압 문제, 팬터그래프 관련 고장이 발생했을 때 거의 대부분 ‘팬터그래프 위치’에 문제가 있음을 미리 숙지하고 있다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안전에서 아집은 NO! NO!’입니다.
경력이 많고 적고를 떠나 안전 운행에 대한 충고를 제게 해준다면, 그 방법이 설사 틀렸다 할지라도 아니라고 말하기보다는 그 나름의 방법을 존중하며 배우려는 자세로 조언대로 해보려고 노력합니다.
안전과 관련해서는 항상 열린 마음으로 조언을 받아들여 기기를 능숙하게 다룸으로써 열차를 안전하게 운행하는 것이 기장(기관사)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라 확신합니다. 그러니 아집은 절대 금물이겠죠?! 부끄럽지만 이러한 저만의 노하우를 취사선택해 더욱 안전한 철도를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기장님께 ‘철도’란 무엇입니까?

  제게 철도는 ‘인생의 전부’입니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한 열아홉 나이에 입사해 철도를 통해 거의 모든 삶을 완성했습니다.
철도에 몸담으며 세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꼈고, 자아실현 또한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소소하지만 많은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철도를 통해 이룰 수 있었습니다. 철도가 이어준 아내와의 소중한 사랑도 평생 잊지 않을 것이며, 평행선의 철길이 변함없이 영원한 것처럼 철도에 감사하는 마음을 평생 간직하려 합니다.
정년퇴직이 약 2년 5개월 남았는데, 철도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아쉽고 섭섭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철도와의 인연을꼭 부여잡으며 늘 그래 왔듯 철도 안전 수호자로서 지금 이 길을 꿋꿋이 걷겠습니다.

기자  앞으로 남은 철도 생활과 2020년 목표는?

감  우선 오는 4월까지 부산고속 상조회 회장직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약 3년 3개월이라는 역대 최장기간 회장직을 수행하며 사업소의 길흉사를 챙김은 물론, 노사 화합을 위한 소통의 장을 마련했기에 굉장히 만족스럽고 보람찬 시간이었습니다.
또 공사 출범 후 부산고속기관차승무사업소 기장 전체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봉사 동호회 ‘어울림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해 제가이 자리에 있기까지 받은 수많은 사랑을 돌려줄 수 있는 활동을 이어가려 합니다. 저와의 약속을 계속 지켜나갈 것입니다.
그동안 제게는 경청의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올 한 해에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 천천히 교감하며, 제 말을 하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고자 합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202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나온 300만km의 철길 위에는 지금 제가 있기까지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하나하나 추억하며 아름다운 부분은 노트에 남기는 기록 작업을 하려 합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동안 남북 교류가 활성화되어 부산역을 출발한 KTX가 서울, 평양, 신의주를 거쳐 유라시아로 뻗어나가 유럽까지 닿을 수만 있다면, 그 열차를 꼭 운행해보고 싶습니다. 시간이 허락지 않는다면 퇴직 후에라도 후배 기장님이 운행하는 KTX를 타고 유럽까지 꼭 여행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한국철도의 숙원 사업인 대륙 철도 진출의 염원을 영원히 함께하겠습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 열린 기념행사에서 감병근 기장 자녀들의 감동적인 인사말이 아직까지 메아리처럼 귓가에 울린다.
둘째 딸 감우미 씨는 2018년 상반기 공채 차량 분야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부산철도차량정비단 고속차량운영처 중정비기술부’에서 대차 차축 비파괴 분석을 맡고 있다.
“앞으로 기장님들께서는 걱정 없이 안전 운행 하시면 됩니다! 제가 차축만큼은 철저한 비파괴 검사와 분석을 통해 완벽히 정비하겠습니다!”

아버지는 KTX 기장, 딸은 아버지가 운행하는 KTX를 정비하는 차량 분야 전문가!
애사심 가득한 두 부녀 덕분에 한국철도는 영원히 절대 안전할 것이다!

세월은 유수와 같다. 하지만 무의미하게 흐르지 않는다.
우리 한국철도를 안전하고 든든하게 견인하는 오늘의 주인공이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그와 함께 일하는 우리의 가슴도 뜨거워진다.
감병근 기장의 남은 철도 인생을 위하여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