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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 홍역, 조류독감, 사스, 메르스 그리고 최근에 나타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까지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치명적 적이다.
변변한 치료제도 없는 데다 청결하지 못한 환경 탓에 결핵, 홍역, 말라리아, 폐렴 등이 발병하면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맞은 19세기에는 물론 21세기에도 슈퍼 바이러스로 적지 않은 사람이 생명을 잃고 있다.
과연 인류는 언제부터 세균과 전쟁을 시작했을까?

글 이유미 사진 셔터스톡

널브러져 있던 배양 용기에 날아든 푸른곰팡이

제1차 세계대전 중 육군병원에서 근무한 알렉산더 플레밍(Alexander Fleming)은 부상당한 병사들이 상처의 직접적 후유증 때문이 아니라 세균 감염으로 죽는 경우가더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런던으로 돌아와 세인트메리 병원의 작고 낡은 연구소에서 항생제 연구를 계속했다. 세균을 죽이든지 아니면 세균 증식을 방해하는 천연 물질을 찾아내는 게 그의 목표였다. 그리고 1928년, 정말로 우연히 항생물질인 ‘페니실린’을 발견했다.
플레밍은 과학자였지만 성격이 꼼꼼하지 못하고 늘어수선했다. 이러한 성격처럼 뒤죽박죽 정신없는 실험실 책상 위에는 늘 세균의 표본과 배양접시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1928년 여름, 플레밍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는 접시들을 그대로 둔 채 휴가를 떠났다. 마침 플레밍의 연구실 바로 아래층에는 곰팡이를 이용해 알레르기 백신을 만드는 연구가 한창이었는데, 이 실험실에서 사용한 곰팡이 중 하나가 우연히 위층으로 날아왔다. 푸른곰팡이로 알려진 ‘페니실륨 노타툼’이었다. 이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던 플레밍의 배양접시에 가서 앉은 것이었다. 그해 여름은 다른 해와 달리 날씨가 서늘해 곰팡이가 증식하기 딱 좋은 기온이었다. 휴가에서 돌아온 플레밍은 푸른곰팡이가 접시 위에 자라 있고, 곰팡이 주변 포도상구균이 깨끗하게 녹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이 곰팡이가 포도상구균의 발육을 억제하는 것을 확인하고, 곰팡이의 학명 페니실륨에서 이름을 따 페니실린이라 명명했다. 하지만 그는 페니실린을 치료제로 상용화하지는 못했다. 불순물이 없는 순수한 페니실린을 뽑아내는 과정이 무척 어려운 데다 항균 효과 지속 시간도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약품으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플레밍은 가차 없이 실험을 중단했다. 플레밍은 꼼꼼하지도 않았지만 집요하지도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많은 군인을 살리며 대중화된 페니실린

영원히 묻힐 뻔한 페니실린은 10년 뒤, 하워드 플로리(Howard Florey)와 언스트 체인(Ernst Chain)이라는 두 과학자가 세상으로 끌어냈다. 플레밍의 연구가 너무 엉성해서 연구를 재개하면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두 과학자는 페니실린을 배양하고, 말려서 가루로 만들었으며, 이것으로 동물실험을 시작했다. 동물실험에 성공한 후 1941년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는데, 플레밍이 직접 했다. 그는 몇몇 의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뇌막염에 걸린 환자에게 페니실린을 주사해 성공을 거두었다. 플로리와 체인은 1943년 페니실린의 화학구조를 밝혀내 대량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그리고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발견해 인류를 세균성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페니실린을 본격 상용화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다. 전쟁 부상자 치료하기 위해 대량생산을 시작했다. 상처의 감염뿐 아니라 폐렴, 디프테리아, 수막염을 비롯한 질병에도 큰 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페니실린은 ‘마법의 탄환’이라고도 불렀다. 페니실린 효과가 알려지면서 민간에서도 페니실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부상당한 군인에게만 사용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1943년 210억 단위이던 페니실린은 사용 범위를 제한했음에도 불구하고 1945년 6조8000억 단위까지 생산했다. 페니실린의 발견은 20세기 후반 의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사건이다. 페니실린을 시작으로 1970~1980년대 항생제 황금기가 열렸다. 백신 접종과 함께 항생제는 곳곳에서 발병하는 결핵, 흑사병, 한센병, 콜레라 등 주요 전염병을 퇴치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이 발전했다. 세균을 정복하면서 제약 산업이 꽃피었고, 전 산업 영역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아주 컸다. 그러나 항생제의 오·남용이 만연하면서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슈퍼박테리아가 탄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를 비롯해 각국 보건 당국은 인류를 위협할 요인으로 슈퍼박테리아를 지목해 초국가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항생제 ‘역습’이 시작된 것이다.

우연과 행운이 이뤄낸 의학 발전

“저는 곰팡이는 물론 살균제와도 전혀 상관없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 한 연구실의 일원이었다면 분명 이 같은 ‘사고’를 무시한 채 진행하던 연구만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없었겠죠. 제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테고요.” 플레밍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의 말대로 페니실린은 우연과 행운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플레밍은 오랜 시간 동안 박테리아에 맞설 수 있는 해법을 연구했으나, 그 해답은 아래층에서 슬그머니 올라왔기 때문이다. 과학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체계적이고 타당해야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세상의 수많은 과학적 발견 중에는 우연, 행운 혹은 운명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 많다. 우연히 페니실린을 발견한 운 좋은 플레밍처럼 말이다.

저는 곰팡이는 물론이거니와 살균제와도 전혀 상관없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제가한 연구실의 일원이었다면 분명 이 같은 ‘사고’를 무시한 채진행하던 연구만 계속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페니실린을 발견할 수 없었겠죠.
제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도 못했을 테고요.

참고 도서 <세상을 바꾼 작은 우연들>(마리 노엘 샤를 지음, 윌컴퍼니), <우연과 과학이 만난 놀라운 순간>(라파엘 슈브리에 지음, 북스힐),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정진호 지음, 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