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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오십 고개를 넘은 삶의 변곡점에서 <한국수필>을 알게 되었고, 용기를 내어 응모했는데 신인상이라는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글밭을 일구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아기 같은 마음을 가꾸어가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소소한 행복도 누렸습니다.
추억이라는 시간 여행을 통해 웃음을 찾았으니까요. 앞으로 들꽃처럼 피어나는 수필가로서 문학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겠습니다.
끝으로 수필을 쓰면서 저와 소중한 인연을 맺은 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응원을 보내준 가족의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 신인상 수상 소감 중에서

글 류차열(전남본부)

수필을 쓰면서 예전의 상처투성이인 저를 만났습니다.
생채기를 토닥토닥 어루만져주고 성찰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회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삶이 버거울 때 알싸한 기억은 세상을 살아가는 버팀목이 되어준다. 아련한 그리움이 허깨비 같은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매일 바쁨에 휘돌아 사느라 오래된 기억들은 대체로 잊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니 어쩌면 세월의 더께에 묻혀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잊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얼마 전 김종길 님의 ‘성탄제’라는 시를 읽다가 문득 아버지에 대한 기억들을 생각의 창고에서 끄집어내었던 적이 있다. 그것은 마치 시네마 천국처럼 잊고 있던 조각들까지 생생하고 선명하게 떠올랐다. 내 고향 삼태마을은 소박하지만 아름답다. 마을 앞으로는 보성강이 흐르고 뒤로는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아늑한 곳이다. 남해의 다랭이 마을 계단식 논처럼 척박한 땅에서 아버지는 삶의 터전을 잡았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경북 고령군 편에 실려 있는 향토 문화전 ‘황소의 아들’이란 전설이 떠오를 만큼 늘 한 몸처럼 붙어 다녔다.

(중략)

새벽닭이 울고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하루를 외양간에서 시작한다. 칼날 같은 매서운 겨울, 아궁이에 솔가지로 불을 지펴 소먹이를 주기 위해 쇠죽을 끓인다. 타닥타닥 장작불 타는 소리 들려올라치면 소들은 벌써 구수한 냄새에 취해 코를 킁킁거린다. 쇠죽을 끓인 후아버지는 남은 장작불 위에 고구마를 구워주시곤 했다. 한 입 한 입 사르르 녹아드는 군고구마의 달달한 맛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입안 가득 군침이 고인다. 소를 길러 우리 4남매를 어엿하게 키워내셨으니, 아버지에게 있어전 재산 같은 존재였는지도. 그 시절 빈농의 시골에서 대학을 간다는 건 언감생심 꿈엔들 생각했을까. (중략) 내가 아플 적마다 아버지는 자전거에 나를 태워 보건소를 가시곤 했다. 물안개 자욱한 비포장 신작로를 따라 덜커덩 달리는 동안, 페달을 돌리는 무게만큼이나 아들 걱정에 힘들었을 것이다. 자전거 뒤에서 아버지 허리를 끌어안듯 두 손으로 붙잡고 갈 때 느껴지던 따뜻한 체온은 부정의 애틋한 사랑이었을 것이리라. 나는 지금도 펄펄 살아 파닥이는 생선의 숨 울림 같은 아버지의 숨소리가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10년 전 어느 날, 아버지는 태국으로 다 함께 여행을 가자고 제안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첫 번째 해외여행이다. 이국적인 방콕과 에메랄드빛 파타야 해변의 풍경에 취한듯 아버지는 편안하고 행복한 휴식을 만끽하며 가족들과도 허물없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처럼 너그들이랑 여행 오니까 아부지는 참 행복하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나는 앞으로 여행을 자주 다니자고 약속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몇 년 전 내 아들 수능이 끝나고 땅거미가 질 무렵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문득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아버지였다. “네. 아버지, 웬일이세요?” “119 구급대원입니다. 아들 맞지요?” 순간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버지가 오토바이 사고로 지금 응급실로 이송 중이라고 했다.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의 가슴은 떨림으로 아득해진다. 꿈인가 싶었다. 꿈이기를 바랐다. “아들아! 어쩌끄나. 느그 아부지 불쌍해서. 이제 살 만한디. 아이고.”

응급실로 달려간 나를 붙잡고 어머니는 오열하며 주저앉는다. 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린다. 황소처럼 강인한 아버지가 봄날 서러운 동백꽃이 ‘뚝’ 지듯이 허망하게 떠나가신 것이다. 아버지의 빈자리가 허허롭게 느껴지고난 뒤, 나는 지금껏 기대고 살았던 큰 산이 사라진 것을 깨닫는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부터 나는 시골집을 자주 찾는다. 홀로 계신 어머니를 본다는 이유도 있지만 아버지의 향기를 느끼고 싶은 충동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대문으로 들어갈라치면 아버지가 나와 반갑게 맞아주실 것 같다. 내 마음도 이럴진대 50년을 함께 산 어머니의 심정은 오죽할까. 며칠 전에도 시골집을 다녀왔다. 어머니는 언제나 동네 어귀에서 아들이 오기를 이제나저제나 기다린다. 집에 들어서자 텅 빈 외양간만이 주인 잃은 아픔을 아는 듯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에 올 적마다 나는 버릇처럼 외양간을 서성이곤 한다. 아버지의 들뜬 음성을 듣는다.

“아들아! 송아지가 간밤에 태어났구나. 빨리 와서 보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