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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함, 끈기, 보람을 선사한 예술

나를 변화시킨 한지 공예

2019년 크리스마스. 대구본부 경산역에는 트리가 아닌 한지 스탠드가 전시되어 역사 내를 밝혔다. 한지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은은한 빛을 바라보며 한국적인 느낌의 크리스마스를 만끽하는 사람들로 경산역 대합실이 메워졌다. 한편 전시장 맞은편 매표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며 힘을 내는 사람, 바로 경산역에 한지 스탠드 작품들을 전시한 한지 공예 작가이자 경산역 3조 매표 담당인 조정희 과장이다. (사)한국미술협회 전통공예 이사 역임, 개인전 4회 및 한지 공예 대회 다수 수상 등 화려한 이력과 상반되는 겸손하고 수수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글과 사진 유연희 기자(인재경영실) 사진 김종일(대구본부 경산역)

기자  첫 공모전 수상은 2009년에 열린 제25회 통일맞이 한국미술대전 한지 공예 우수상입니다. 한지 공예를 시작한 지 5년 만에 이룬 쾌거인데요,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요?

조정희 과장(이하 조) 바로 ‘열정과 노력’입니다. 한지 공예를 처음 시작했던 2004년에는 한지 공예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었어요. 직접 발로 뛰며 한지를 구매하고 자료를 수집했죠. 전북 전주, 경북 문경, 강원도 원주, 서울 인사동 등 한지가 유명하다는 전국 곳곳을 방문하며 한지를 구매했습니다. 꽃 그림이
화려한 화지를 사기 위해 일본도 다녀올 정도였죠. 또 점점 실력이 늘고 안목이 높아지자 값비싼 천연 염색 한지에 관심이 가더군요. 그래서 경북 안동에 가서 6개월 동안 홍화 가루, 치자, 양파 껍질 등으로 한지 천연 염색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어요. 또 ‘어떻게 하면 한지 공예를 더 잘할 수 있을까? 무엇을 접목해볼까?’ 고민하다가 서예와 한국화, 캘리그래피도 배웠고요. 한지 공예는 제 능력과 가능성을 무한히 넓혀주고 있어요. 앞으로도 한지 공예를 위한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기자  한지 공예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는 ‘실용성’입니다. 작게는 손거울부터 보석함, 스탠드, 서랍장, 장롱까지! 쉽게 접할 수 있는 생활용품이나 가구가 한지 공예라는 예술이 될 때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저 감상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고요. 이 매력을 중시하기 때문에 한 번 만들고 버리는 건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돈과 시간이 더 들더라도 한 번이라도 더 쓸 수 있는 걸 만들려고 해요. (“그럼 가구를 따로 구매하실 필요가 없겠네요?” “한지로 만드는 게 돈이 더 들어요. 호호호.”) 또 다른 매력은 ‘유일함’이죠. 천연 염색으로 똑같은 무늬와 색깔의 한지를 여러 장 만들 수 없어요. 딱 한 장 나오죠. 그걸로 만드는 작품 또한 세상에서 단 하나뿐입니다. 이 소중한 의미를 담아 감사한 분들에게 한지 공예 작품을 선물하고는 합니다. 기뻐하는 지인들을 보면 제가 들인 시간과 노력과 정성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기자  한지 공예라는 특기를 살려 봉사 활동을 하고 계시죠?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대구본부 재능 기부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2년 가까이 지역의 차상위 계층 어린이들과 함께 한지 공예를 했습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좋은 걸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개당 2만 원이 넘는 한지 스탠드를 만들어줬어요. 선물 받고 기뻐하는 아이들의 화사한 미소를 기대했는데 막상 선물 받은 아이들의 표정이 밝지 않은 거예요. 당황했고 의아했죠. 그때 한 아이가 쭈뼛거리며 답을 알려주었어요. “선생님 이거 켜면 전기세 많이 나가나요? 우리 엄마가 전기세 나간다고 못 쓰게 할 텐데….” 아차! 조금 더 비싸고 예쁜 거니까 당연히 좋아할 거란 믿음은 온전히 제 착각이었습니다. 아이들 입장은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셈이죠. 그때 제 눈높이가 아니라 대상자의 눈높이에 맞춘 재능 기부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배움이 있으니까.

기자  한지 공예를 시작한 후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하나. 스트레스가 해소됩니다. 근무 중에 민원인을 만나더라도 퇴근 후에는 한지 공예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언짢던 일은 금방 잊게 되더군요. 한지를 만지는 동안은 잡념이 사라지고 즐거움만 가득합니다.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도 크고요. 동료 직원들에게 몰두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을 하라고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스트레스 해소뿐만 아니라, 꾸준히 성장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자존감이 향상되거든요.
둘. 가족과의 사이가 더욱 돈독해집니다. 집에서 매일 한지 공예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신랑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지금은 함께 작품을 만들고 전시회도 열 정도로 신랑의 실력이 수준급입니다. 공유하는 관심사가 같아 서로 대화도 많이 하고, 한지도 같이 사러 다니니 더욱 친밀해질 수밖에요. 그리고 지난 2015년 제34회 대한민국미술대전 전통미술공예부문 2차 심사위원을 맡았을 때, 한 수상작에 남긴 제 심사평을 본 두 아들의 반응에 참 뭉클해졌던 기억이 납니다.
“엄마! 이런 심사평은 대학교수나 권위 있는 사람이 하는 거 아니에요? 엄마도 하셨다니 정말 대단해요!” 엄마로서, 작가로서 인정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남편과 아들들이 저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랍니다!

기자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알려주세요.

  한지 명인(名人)이 되는 것입니다. 또 퇴직 후에 우리 전통을 잇는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강의를 하며 한지 공예를 널리 전파하고 싶어요. 이 꿈을 향해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지 공예를 시작한 지 16년이 됐는데 여전히 단 하루도 빠짐없이 한지 공예를 합니다. 현재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한지 공예 기법이 나올 때마다 배우러 다니고요. 한지 공예를 가르치는 봉사 활동 덕분에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자연스러워진 것도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특히 젊은 분들에게 한지 공예의 재미를 알려주고 싶어요.
제 주변에는 아직 한지 공예를 하는 젊은 분들이 없습니다. 스펙 쌓기나 회사 업무 등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한지 공예는 한 번에 뚝딱 결과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리는 예술입니다. 문양을 세심하게 오리고, 한지를 몇 겹씩 붙이기 위해 풀칠을 하고 빠짝 말리는 걸 서너 번 반복하다 보면 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달은 걸리거든요. 작품이 서서히 완성되는 과정을 통해 꾸준함과 끈기의 보람을 느끼게 해주고 싶습니다. 미래를 그리다 보니 벌써 노후 준비를 해둔 것 같아서 든든하네요.

인터뷰가 끝나자 조정희 작가가 쇼핑백 2개를 내미셨다. 갸우뚱거리며 받아 들고 보니 한지 공예 보석함과 손거울이 가득 들어 있었다. 멀리서 인터뷰하러 와준 게 고마워서 준비하셨다고. ‘매일 한지 공예를 하면 만들어지는 작품이 참 많을 텐데 그걸 다 어디에 보관할까?’ 내심 궁금했는데 답이 나왔다. 선물을 참 많이 하신다고 한다. 이 말은 조정희 작가가 감사한 마음을 느끼는 따뜻한 사람이란 뜻, 또한 주변에 감사한 분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눔에서 나오는 넉넉한 여유가 느껴지는 조정희 작가의 다음 전시는 5월 1일부터 31일까지 대구시 남산동 예담 갤러리에서 열린다. 한지의 질감처럼 부드러운 미소로 여러분을 맞이해주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