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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직장은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실생활 곳곳에 침투해 소통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작은 메모지 ‘포스트잇(Post-it)’의 우연한 발견.

글 이유미 사진 셔터스톡

포스트잇은 실패작이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발생한 중국 후베이성 우한과 인근 지역에 체류하던 한국 교민들이 국내로 돌아와 진천과 아산에 14일간 격리되었다. 온라인상에서 많은 논란이 펼쳐진 가운데 우한 교민들의 ‘포스트잇’ 메시지가 화제를 모았다. 하나같이 ‘감사하고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단순 사무용품을 벗어나 메시지 전달과 소통 역할까지 하고 있는 포스트잇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1968년 미국 3M사 직원 스펜서 실버(Spencer Silver)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고 있었다. 3M사는 산업용 접착제를 중점적으로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항공기 제작에 사용되는 초강력 접착제 개발 연구에 참여하고 있었다. 당시 항공우주산업에 이용되던 것보다 접착력이 더 뛰어나고 내열성이 강한 접착제를 만들기 위해 실버는 여러 가지 단량체(고분자화합물 또는 화합체를 구성하는 단위가 되는 분자량이 작은 물질)를 다양하게 조합해보곤 했다. 하지만 초강력 접착제는커녕 접착력도 떨어지고 끈적임도 없는 접착제가 만들어졌다. 어떻게 보면 실패작이었지만 실버는 이 접착제의 독특한 성질에 주목했다. 접착제를 바른 종이를 다른 종이에 붙였을 때 계속 붙어 있을 정도의 접착력이 있으면서도 신기하게 떼어냈을 때 붙인 종이에 접착제가 남아 있거나 묻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실버는 직감적으로 대단한 발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쉽게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신기한 접착제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실버는 그 후 5년 동안 자신이 만든 접착제의 구체적인 활용 방안을 연구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20세기 10대 히트 상품
그런데 1974년, 같은 연구소 직원인 아서 프라이(Arthur Fry)가 실버의 접착제를 되살렸다. 교회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던 프라이는 찬송가 악보집에서 불러야 할 곡에 서표를 끼워놓곤 했는데, 이것이 빠지는 바람에 당황한 적이 많았다. 떨어지지 않는 서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프라이는 버의 접착제를 종이에 발라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서표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제품화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접착제를 바르는 종이의 면을 얇게 깎는 기술과 떼었을 때 종이에 손상을 주지 않는 일정한 강도를 찾아내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실버와 프라이는 포기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해 서표는 물론이고 메모지로도 활용 가능한 포스트잇을 개발했다. 1977년 3M사는 포스트잇의 초기 제품 ‘프레스엔필(Press’n Peel)’ 상업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예산이 부족해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남은 노란색 종이로 시제품을 제작했고, 이때부터 포스트잇의 상징은 노란색이 되었다. 이후 포스트잇은 1980년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캐나다와 유럽 등 전 세계로 판매가 확대되었다. 포스트잇은 AP통신이 선정한 ‘20세기 10대 히트 상품’에도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서표로 만들려고 했던 포스트잇은 사무용품 용도를 넘어 시위 도구, 응원 도구, 예술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가로세로 각각 7.5cm 크기에 불과한 작은 포스트잇이 소통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을 바꿔 새로운 사용처를 찾아낸 발명가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다.

3M사는 포스트잇의 초기 제품 ‘프레스엔필(Press’n Peel)’ 상업화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예산이 부족해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남은 노란색 종이로 시제품을 제작했고, 이때부터 포스트잇의 상징은 노란색이 되었다. 이후 포스트잇은 1980년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1년 후에는 캐나다와 유럽 등 전 세계로 판매가 확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