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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충청남도 천안시에 위치한 병천면,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동네일 수도 있지만, 천안 병천에는 우리가 꼭 가봐야 하는 특별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안 유관순 열사 유적지입니다. 병천은 유관순 열사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기도 하고, 1919년에 독립운동을 한 곳이기도 합니다. 1972년 10월 14일에 사적으로 지정된 유관순 열사 유적지에는 기념관, 추모각, 초혼묘 등 열사를 기리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글과 사진 노계범(수도권동부본부)

눈을 감으면 당시 먼 마을로 봉화가 들불처럼 번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관순 열사께서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을 것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병천면에서 태어난 소녀를 만나다
길게 뻗은 유관순 열사의 거리를 따라가면 나무들 사이로 유적지가 나옵니다. 유적지 왼편에는 기념관이 있고, 기념관에는 유관순 열사의 일생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열사가 주도했던 병천(아우내) 독립만세운동까지 자세히 기술해 이곳을 둘러보면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902년 12월 병천면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똑 부러지는 소녀였습니다. 신실하고 학업에도 열정적인 그녀는 이런 면을 인정받아 경성의 이화학당
보통과로 편입하게 됩니다. 이렇게 평범한 여학생이 어떻게 독립투사로 변모했을까요?
기념관을 다 관람하고 나와 정면으로 걸어가면 우뚝 선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치는 그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심을 갖게 만듭니다. 18세가 되던 1919년,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 바람이 불었습니다.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에 자극받아 국내 종교계 인사들과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3월 1일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3월 1일 오전 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은 경성 곳곳으로 이어졌고, 충격을 받은 일제는 조선 사람들을 잔혹하게 탄압했습니다. 학교에도 휴교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경성으로 유학 온 지방 출신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유관순 열사의 동상을 뒤로하고 우측으로 돌아보면 높은 계단 위로 추모각이 보입니다. 언제나 푸른 소나무 두 그루가 길을 감싸 안듯이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그 끝의 추모각에 올라서면 유관순 열사가 하얀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태극기를 양손에 쥐고 있는 그림이 걸려
있습니다. 그곳에 향을 피워 열사님께 묵념을 드려봅니다. 고향인 천안 병천으로 돌아온 유관순 열사는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께 경성에서 일어난 3·1운동에 대해 자세히 말씀드립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은 유관순 열사와 함께 병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합니다. 열사께서는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태극기를 만들고, 수십 리 떨어진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만세운동을 함께 하자고 설득하셨습니다.

만세운동을 향한 열망
추모각에서 내려와 초혼묘로 향합니다. 10분 정도 산길을 걷다 보면 울창한 소나무 앞으로 초혼묘가 나타납니다. 초혼묘는 유관순 열사의 유해가 있는 묘는 아니고 그분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1919년 4월 1일 정오, 병천(아우내) 장터에서 유관순 열사를 필두로 한 3000여 명의 주민이 태극기를 손에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행진을 하던 중 일본 헌병대가 출동해 사람들을 총칼로 죽였습니다.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은 현장에서 돌아가시고, 열사를 비롯한 시위 주동자들은 천안 헌병대로 압송됩니다. 이후 법원으로부터 3년형을 선고받아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지독한 고문을 당해 1920년 9월 28일 1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열사의 시신은 이태원 공동묘지에 안장했으나, 후에 공동묘지 이전 과정에서 망실되어버립니다. 이러한 이유로 초혼묘에는 열사의 유해가 없습니다. 초혼묘에 절을 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자 너른 둔덕에 봉화지가 나타납니다. 봉화대란 조선 시대에 긴급사태 발생 시 먼 마을에 위급 상황을 알리기 위한 통신수단이었는데요, 1919년 3월 31일 밤, 유관순 열사는 만세운동의 신호로 이 봉화대에 올라 불을 붙였습니다. 그 결과 목천, 안성, 진천, 청주 등 각지의 산봉우리 스물네 곳에서도 봉화를 올렸고, 다음 날 여러 마을에서 동시다발적인 만세운동이 이루어졌습니다. 눈을 감으면 당시 먼 마을로 봉화가 들불처럼 번지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관순 열사께서 그 모습을 보고 기뻐했을 것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나무에 꽃잎이 피는 계절, 춘삼월이 왔습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중요한 것을 잊고 살기 마련인데요, 2020년은 유관순 열사께서 돌아가신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번 봄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돌아가신 유관순 열사와 순국선열들을 기억하는 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유관순 열사 영정.

추모각 올라가는 길.

추모각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