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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선은 경부선 천안과 호남선 익산을 잇는 154.4km의 노선을 말한다. 원래 장항선은 이름 그대로 천안에서 장항 사이를 오갔으나 장항과 군산을 이어주는 금강 하굿둑이 만들어지면서 노선이 연장되었다. 이 노선은 일제강점기인 1922년 6월 1일 사설 철도인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에서 충남선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온양온천 구간 14.6km를 부분 개통한 것이 그 효시다.

글과 사진 배은선 기자(수도권서부본부)

충남선에서 시작하다

당시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는 천안을 기점으로 충남 서부 해안을 따라 남하해 전북 군산 대안에 이르는 구간(장항선)과 천안에서 북상해 안성에 이르는 연장 158.8km의 표준궤 증기철도 부설을 신청해 1919년 9월 30일 허가를 받았다. 이 구간은 비옥한 평야 지대와 굴곡이 많은 해안선을 둘러싸고 있어 해륙 산업 개발과 경제 지역의 교역 발전을 촉진할 만한 철도로 인식되었다. 이른바 식민지 철도로서의 요건을 잘 갖추고 있는 노선이었던 것이다.
충남선은 연장 공사를 계속해 1922년 6월 15일 온양온천~예산 간 25.9km를 개통했고, 이듬해인 1923년 11월 1일 예산~홍성 간 22km를, 1924년 12월 1일에는 홍성~광천 간 12.7km를 개통했다. 광천까지 개통된 충남선은 몇 년의 공백기를 거쳐 1929년 12월 1일 광천~남포 간 24.8km가 영업을 개시했고, 남포~판교 간 24.3km를 제외한 판교~장항 간 19.2km가 1930년 11월 1일 먼저 영업을 개시했다. 남포~판교 간 잔여 구간이 개통된 것은 1931년 8월 1일이었으며, 이로써 충남선 천안~장항 간 143.6km 전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 이후 1933년 10월 20일 장항에 잔교(棧橋)가 만들어지면서 영업 거리가 0.7km 늘어나 144.3km가 되었다. 열차 운행 상황을 보면, 1925년 말 기준 천안에서 광천까지 혼합열차 4왕복, 화물열차가 비정기적으로 1왕복 운행했다.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는 안성선 운행 차량을 포함해 탱크형 증기기관차 4량, 객차 4량, 화차 52량을 보유하고 있었다. 1930년 12월 자료에 의하면 가솔린동차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천안~남포 구간뿐 아니라 서천~장항 구간에도 동차를 운행했다. 평균속도는 증기동력 열차가 30km/h 이하인 데 반해, 동차의 경우 40km/h 가까운 속도를 유지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5년 사이에 차량 보유 대수는 증기기관차 8량, 객차 18량, 가솔린동차 4량, 화차 132량으로 늘어났다. 1931년 천안~장항 간 전선 개통 당시 소요 시간은 약 5시간이었다.

1934년이 되면 가솔린동차는 경유동차로 바뀌며, 열차 운행 횟수나 평균속도 면에서도 많은 진전을 보인다. 천안~장항잔교 간 여객열차는 4시간에서 4시간 10분, 혼합열차는 5시간 30분 소요됐으며, 천안~온양온천 간 여객열차는 23분 소요됐다. 또 장항잔교와 군산잔교 간 하루 여덟 차례 연락선이 왕복하며 장항선과 군산선을 이어줬다. 소요 시간은 15~25분이었으며, 운임은 8전이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미군정은 사설 철도를 국유화하는 정책을 폈는데, 이에 따라 충남선은 1946년 5월 10일 소유주가 국가로 바뀌었고, 지금처럼 장항선이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은 1955년 6월 14일 일이었다.

장항선은 연변에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이 있고, 홍성·광천·대천 등 충남의 주요 지방 도시로 연결되어 지방 교통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는 피서기가 되면 폭증하는 인파로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경향신문 1975년 8월 2일 자 보도에 의하면, 당시 장항선을 이용하는 피서 인파는 연간 약 300만 명이었다고 한다. 피크 때에는 하루 10만여 명이 장항선 기차를 탔는데, 당시 정규 열차 18개, 임시 열차 4개, 도합 22개 열차가 운행했다고 한다. 신문에서는 객차에 평균 200명 넘게 탄다고 했지만, 계산상으로나 당시 자료를 보나 객차당 400명 이상 탄 것으로 보인다.

급행열차의 좌석 정원은 72석 정도고, 완행열차라고 해야 시트당 3명씩 앉아도 100석 조금 넘을 뿐인데 무려 400명이라니! 지옥철이라고 부르는 지금의 지하철 9호선이나 예전 1·2호선 러시아워 때 상황이 서울을 출발해 대천까지 가는 4~5시간 동안 이어졌으니, 기차 바퀴를 지지하는 대차의 스프링이 내려앉을 만도 하다. 하지만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도로가 발달하면서 콩나물시루 같았던 장항선 피서 열차는 옛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장항선 역사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약 30년간 활발히 전개된 민수용 석탄 수송 사업이다. 남포역과 여기서 분기된 남포선의 옥마역이 그 중심에 있었는데, 1970년대 후반 두 역의 무연탄 발송량은 연간 100만 톤을 훌쩍 넘겼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1989년 정부가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을 시행하면서 수송량은 급감했고, 2009년 12월 28일 남포선은 결국 폐선되었다.

변화의 물결

세월도 느릿느릿 쉬었다 갈 것 같은 단선철도 장항선에 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것은 1997년부터다. 개량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1974년 8월 15일 수원까지 개통된 경부선 수도권 전철이 천안까지 연장 개통된 것은 2005년 1월 20일이었다. 경부선 천안역까지 내려온 광역 전철 노선은 그 방향을 틀어 장항선으로 연장됐는데, 2008년 12월 15일 신창역까지 장항선에 전철역 6개가 새로 태어났다. 새로 설치된 역은 봉명·쌍용·아산·배방·온양온천·신창역으로, 온양온천역과 신창역은 기존 장항선의 역명을 그대로 적용한 경우이며, 다른 4개 역은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장항선의 시발역인 천안역과 온양온천역 사이에는 모산역이 있었는데, 장항선과 기존 경부고속선을 연결하기 위해 장항선 선로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모산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배방역이 새로 태어났다. 새 전철역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아산역으로, 이 역은 고속철도 천안아산역과 연결되어 장항선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신창역까지 수도권 전철이 연장 개통되면서 ‘1만 원의 행복’으로 불리는 수도권 어르신들의 천안·아산 나들이가 유행해 연평균 80만 명 넘는 관광 수요가
생겼고, 역세권을 중심으로 개발도 촉진하고 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전철을 타고 천안이나 온양에 가서 온천욕을 즐기고 순댓국도 한 그릇 먹고 올 수 있는 소박한 행복! 이러한 무임승차 제도는 철도 운영 기관의 경영에 많은 부담을 주고 있으며, 일부 젊은이는 출퇴근 시간에도 할 일 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년층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 덕분에 경제적 여유가 없는 노령 인구가 부담 없이 야외 활동에 나서게 되고, 이것이 치매를 비롯한 각종 질병이나 고독사 등의 위험으로부터 사회적 취약 계층을 지켜주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큰 틀에서 볼 때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좋은 제도라는 것이다.

장항~군산 간 철도 연결 개통식에서 선보인 열차(2007년12월 28일). / 초창기의 군산역(1920년).

장항선은 연변에 온양온천과 도고온천이 있고, 홍성·광천·대천 등 충남의 주요 지방 도시로 연결되어 지방 교통의 중심축 역할을 담당해왔으며,
도로가 발달하지 않은 시기에는 피서기가 되면 폭증하는 인파로 극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경향신문 1975년 8월 2일 자 보도에 의하면,
당시 장항선을 이용하는 피서 인파는 연간 약 300만 명이었다고 한다.

군산선 끌어안기

근래에 장항선이 겪은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종착역 변경이다. 기존 장항선 종착역인 장항역은 금강 하구를 사이에 두고 군산선 종착역인 군산을 마주 보고 있었다. 군산선은 호남선의 지선으로 건설되었는데, 1911년 6월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인 1912년 3월 6일 이리(현재의 익산)~군산 간 23.1km의 영업을 개시했다. 호남평야 지대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모아 일본으로 보내는 통로이자 배출구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군산선과 군산역의 역할은 매우 중요했다.

1931년에는 군산항까지 1.6km가 연장되어 군산선 영업 거리는 24.7km가 되었다. 초창기에는 혼합열차가 3~4회 왕복했고, 이후 1918년 7월 5왕복, 1922년 5월 7왕복으로 늘어났다. 이 노선은 광복 이후에는 통학·통근 노선으로 많이 이용됐는데, 장항 지역에서 연락선을 타고 군산에 가서 이리까지 다니는 학생이나 직장인도 많았다. 개량 공사를 통해 장항과 군산이 연결되면서 기존 뱃길은 철길이 대신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 28일은 군산역에서 그 개통식이 열린 날이다. 이로써 장항선은 일제강점기 충남선으로 불릴 만큼 충청남도에서 시작해 충청남도로 끝나던 시대를 마무리하고, 금강을 건너 전라북도로 연결됨으로써 새로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반면 군산선은 철도 노선에서 그 이름이 사라지게 됐다.

이 과정에서 각 선의 종착역인 장항역과 군산역은 기존의 도심을 벗어난 외곽에 새로 지었으며, 기존 역은 여객 취급을 중지하고 화물 취급만 담당하다가 지금은 철도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장항선 연장이 지닌 빼놓을 수 없는 의의는 호남선 우회 기능이다. 호남선 익산 이북 지역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장항선을 우회해 호남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충북선이 중앙선의 우회 경로로 유용하게 이용되는 것을 보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식민지 철도로 시작했지만, 광복 이후 혼란과 격동의 세월을 지나면서 지친 우리 국민에게 휴식과 위로를 전해주고,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던 장항선. 그 풍요로운 참살이의 고장에 광역 전철이, 서해금빛열차가 달리고 있다.

1970년대 피서 열차(1972년 촬영). / 새 장항역.

장항선 연장이 지니는 빼놓을 수 없는 의의는 호남선 우회 기능이다.
호남선 익산 이북 지역에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장항선을 우회해 호남선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충북선이 중앙선의 우회 경로로 유용하게 이용되는 것을 보면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