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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상인’에서 ‘평화주의자’로

알프레드 노벨의 다이너마이트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라는 폭약을 발명해
유럽 최대 갑부가 되었다. 그런데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기까지
행운의 여신이 두 번이나 손짓했다고 한다.
과연 어떤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그가 노벨상을 제정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글 이유미 사진 셔터스톡 참고 자료 〈세상을 바꾼 우연〉(윌컴퍼니), 〈우연과 과학이 만난 놀라운 순간〉(북스힐)

알프레드 노벨

“나의 무기 생산 공장은 앉아서 평화를 논하는 것보다 먼저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적과 아군이 1초 만에 서로를 완전히 전멸시킬 무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모든 문명국의 군대는 공포를 느껴 후퇴할 것이고, 전쟁을 중단할 것이며, 결국 각국의 군대는 해산할 것이다.”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살상 무기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은 늘 이렇게 말했다. 마치 핵무기가 있기 때문에 전쟁이 억제된다는 ‘핵 억지력’과 유사한 관점으로 살상 효과가 큰 무기를 개발할수록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는 역설적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알프레드 노벨은 전쟁 무기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지는 않았다. 그가 발명한 것은 산과 도로를 폭파하거나 운하를 만들고 철도를 건설할 때 매우
유용하게 쓰는 폭약이었다. 그러나 다이너마이트라 불리는 이 폭약은 안타깝게도 전쟁에서 어마어마한 인명 살상 무기로 사용되었다.
노벨의 아버지는 스웨덴에서 벌인 사업이 실패하자 러시아로 이주해 그곳에서 군수품 납품 공장을 운영했으나 1859년 파산하고 말았다. 액체 폭탄인 니트로글리세린에 관심이 많던 노벨은 부모와 함께 스웨덴으로 다시 돌아온 직후 니트로글리세린의 폭발력을 제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에 뛰어들었다.

톱밥과 규조토가 구한 노벨의 목숨

니트로글리세린은 1846년 어느 이탈리아 화학자가 개발한 폭발성 액체로, 그전까지 사용하던 가루 화약에 비해 폭발력이 강해 산과 도로를 폭파하거나 운하를 만들고 철도를 건설할 때 매우 유용했다. 그러나 작은 충격에도 잘 폭발했기 때문에 수시로 사고가 발생했다. 1864년, 노벨 가족에게도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다. 집안에서 운영하던 폭약 공장이 폭발해 막냇동생을 포함한 5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이렇듯 폭발 사고가 증가하자 세계 각국은 잇따라 니트로글리세린 사용을 금지했고, 알프레드가 무너진 공장을 재건축하려고 했을 때 스웨덴 정부는 인근 주민이 위험할 수 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노벨은 스톡홀름에서 떨어진 호숫가에 배를 띄우고 임시 작업실을 차렸다.
갖가지 방법으로 니트로글리세린을 길들이는 방법을 연구하던 알프레드에게 드디어 행운의 여신이 찾아왔다. 1867년 어느 날, 노벨은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기막힌 실수를 저지른다. 니트로글리세린이 든 플라스크를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다. 엄청난 폭발과 함께 죽는구나 싶었지만,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플라스크가 깨진 자리에 톱밥이 있었고, 니트로글리세린이 그 안으로 스며든 것. 알프레드는 그 톱밥을 모아 폭발력을 실험했다. 그러나 약했다. 톱밥에서 힌트를 얻은 알프레드는 니트로글리세린을 반죽 상태로 만들어 안전하게 옮길 수 있는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숯가루, 분필 가루, 종이 가루, 벽돌 가루 등 다양한 재료로 실험을 했지만 폭발력이 약했다. 그러던 중 행운의 여신이 다시 한번 노벨에게 미소를 지었다. 니트로글리세린을 가지러 창고에 갔다가 양철통에 보관한 니트로글리세린이 새어나와 바닥의 규조토와 엉켜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 혼합물은 반죽 상태로 만들기 쉬웠고, 폭발력도 다른 가루보다 높았다.
그리고 뇌관을 작동했을 때에만 폭발했다. 폭약으로 쓰기에 이상적인 상태였던 것이다. 알프레드 노벨은 우연한 기회에 니트로글리세린을 안정화하는 방법을 찾았고, ‘다이너마이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발명 특허를 낸 노벨은 이후 30년 가까이 20개국이 넘는 나라에서 100여 개 공장을 둔 거대 기업을 운영했다.

죄책감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제정한 노벨상

그럼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의 무기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다이너마이트는 연기가 많이 나고 폭발력이 약해 무기로는 적당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벨은 적극적으로 군용 화약 개발에 힘을 쏟아 다이너마이트보다 훨씬 강력한 ‘발리스타이트(Ballistite)’를 1888년에 내놓았고, 이를 대량생산해 유럽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다. 평화를 위해 강력한 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 알프레드 노벨. 그러나 정작 자신의 폭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사망하고 ‘죽음의 상인’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자, 후회와 속죄하는 마음으로 노벨상을 제정했다고 한다. 눈감기 전 느낀 큰 죄책감에 제정한 노벨상으로 알프레드 노벨은 ‘평화주의자’가 되었고, 이 시대 최고의 과학자이자 발명가로 남았다.

평화를 위해 강력한 무기를 생산해야 한다고 생각한
알프레드 노벨. 그러나 정작 자신의 폭약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사망하고 ‘죽음의 상인’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자, 후회와 속죄하는 마음으로
노벨상을 제정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