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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원선 대광리역 광장에는 이름도 생소한 귀룽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귀룽나무는 손만 뻗으면 이내 닿을 만큼 역사와 가까운 거리에서 밑동을 키웠다.

글과 사진 김응기(수도권동부본부)

귀룽나무 열매와 꽃.

우리 가까이, 부지런한 나무 한 그루

귀룽나무는 이름 때문에 무척 낯설게 느껴지지만, 우리 주변에 늘 가까이 있어온 나무다. 물기를 좋아해 주로 산골짜기 계곡 근처나 개울가 등에서 자라는데, 중부 이북에서나 볼 수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귀룽나무는 평안북도 의주 구룡(九龍)이라는 지역에 많이 자라 구룡목(九龍木)이라 부른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전한다. 일설에는 나무껍질이 거북이[龜] 등처럼 생긴 데다 줄기와 가지 모양이 용틀임하는 것 같아서 구룡(龜龍)나무라 부르던 것이 귀룽나무로 변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구름나무’라 부르던 우리말 이름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음이 비슷한 구룡나무로 바꾸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 있다.

구름나무는 이른 봄에 나무를 뒤덮는 하얀 꽃타래가 마치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흰 구름 같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북한에서는 지금도 귀룽나무를 구름나무라 부른다. 귀룽나무는 아주 부지런한 나무다. 다른 나무들이 미처 겨울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인 3월 하순부터 가지마다 조용히 연둣빛 새순을 밀어 올린다. 그러고는 무채색 일색인 이른 봄을 화사하게 수놓으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래서 김동호 시인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귀룽나무를 이렇게 노래했다.

아직도 깊은 겨울인 양
흑갈색 나목이 빼곡히 하늘을 막고 있는 숲속에서
문득 녹색의 횃불을 보면
놀라지 않을 자 있을까

겹겹이 둘러싼 흑갈색 장대 벽을
봄은 어떻게 뚫고 들어왔을까
어떤 경로를 거쳐서 어떤 속삭임
어떤 암호를 따라 들어왔을까

귀룽나무는 또 어떻게 그 소식을
은밀히 받아 푸른 횃불 들게 되었을까
(이하 생략)

 

아낌없이 내어주는 나무의 힘

귀룽나무는 농사철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지표목(指標木) 역할을 하기도 했다. 우리 선조들은 귀룽나무에 잎이 피기 시작하면 한 해 농사를 시작했다. 귀룽나무 이파리는 농사철이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귀룽나무는 봄맞이 채비를 서두른 만큼 겨울나기 준비도 무척 서두른다. 가을에 접어들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잎을 모두 떨군다. 하지만 꽃이 피는 시기는 의외로 늦다.

산벚꽃이 질 무렵에야 느지막이 하얀 꽃망울을 일제히 터뜨린다. 꽃은 햇가지 끝에 모여서 다발로 핀다. 나무 전체를 뒤덮을 만큼 풍성한 꽃차례는 가느다란 가지와 함께 치렁치렁 늘어져 바람이 불 때마다 파도처럼 일렁인다. 그럴 때면 무성한 초록의 이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풍광이 더할 나위 없이 멋스럽다. 꽃이 진 자리에는 버찌 모양의 열매가 드문드문 달린다. 풍성한 꽃차례에 비해 열매는 실속이 없다. 열매는 한여름이 되면 까맣게 익는데, 맛은 떫고 쓰다. 하지만 새들이 좋아하는지 영어 이름은 ‘버드 체리(bird cherry)’다. 귀룽나무 열매는 가지와 더불어 약재로 사용했다. 열매는 ‘앵액(櫻額)’이라 하여 복통과 이질에 쓰였다. 가지는 각종 간 질환과 관절염, 근육통, 신경통 등 온갖 질환에 두루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잘게 썰어 그늘에 말렸다가 물에 달여 마시거나 술에 담가 복용했다.

민간에서는 음식을 먹고 체했을 때 귀룽나무 가지를 달여서 마시곤 했다. 귀룽나무 생즙은 부스럼 같은 피부 질환 치료에 사용했다. 귀룽나무 어린 가지는 파리를 쫓는 데도 쓰였다. 우리 선조들은 귀룽나무 어린 가지를 다발로 묶어 부엌에 매달아두었다. 귀룽나무 어린 가지를 꺾었을 때 풍기는 고약한 냄새를 파리가 싫어한 까닭이다. 이 외에도 귀룽나무 잔가지는 양봉업자들이 벌통을 관리할 때도 요긴하게 사용했다. 귀룽나무 잔가지를 꺾어 벌통 주변에서 흔들면 귀룽나무에서 발산하는 정유(精油) 성분 때문인지 벌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둔화되어 양봉업자들은 이때를 틈타 벌통을 수월하게 관리했다

귀룽나무 밑둥 및 대광리역 전경.

경원선 대광리역

소요산역에서 연천역에 이르는 전철화 공사로 잠정 휴업 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무인 역사로 운영하던 대광리역은 찾는 이 하나 없어 을씨년스럽다. 가뜩이나 낡고 오래된 역사는 눈에 띄게 쇠락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