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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기차

단남수(인재경영실)

새벽 4시, 첫 기차는 동대구역을 출발한다.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빈속을 급히 채우며
오늘도 중력을 나눠 담은 보따리들을 들어
재깍재깍 시침에 등을 떠밀려 열차에 오르면
출발을 알리는 기적(汽笛)이 객실 바닥에
은하수 별빛과 같이 쏟아진다.

여름이면 뜨거워지고
겨울이면 차가워지던 강철의 평행선을 따라
들끓던 가슴도 차가워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동안
식솔들의 밥줄은 정거장과 정거장을 잇고
쇠바퀴는 한 번도 역행을 모르고
묵묵히 앞으로 굴러왔다.

차창에 하얗게 입김을 불며
새로운 궤도를 그리는 떨리는 손끝엔
불길한 예감들이 뒤따라와
하나, 둘 일상을 스스로 잠그고
어둠 속에 열쇠를 스스로 던져버린 후
과거의 궤적을 따라 역행하여 복기(復棋)를 하다
기차가 정차할 순간이 오면
체념은 선반에 남겨둔 채
서둘러 역에 내려 여명 속으로 걸어간다.

도고역

박현진(회계통합센터)

끝없이 넓은 들판과 이어진
플랫폼에서
산모퉁이 고개 드는 한 점을
기다린다

철길 따라 하늘하늘
오가는 기차에 올라탈 듯
흩날리는 연분홍 코스모스

희망을 뿜어내는 기적 소리
꼭두새벽부터 달려온
곰삭은 황새기 한 광주리
목 좋은 곳을 찾아 발걸음 총총
플랫폼을 벗어난다

우리 집이 보였다 이내 없어진다
한동안 볼 수 없을 고향 들판,
부모 형제
낯선 사람들 속 홀로 서는 길
빠르게 흐르는 풍경처럼
어린 내 마음

어디서 무슨 일을 할까?
내 삶의 종착역은 어디로 향해 갈까?
이 생각 저 생각
썼다 지웠다
그래, 차창에 적어본다

도고역

옛일

김중신(수도권서부본부)

가슴속
한 줄의 시로 남아
더는 그 모습 볼 길 없어
기억의 안개 너머 물소리 되어

가을을 타는 마음으로
가을을 타는 가슴으로
조심스레 손을 들어
먼 곳을 향해 흔드나
이제는 옛일 어린 시절
멀어져 간 종이배일 뿐
춤추는 시냇가 버들잎 떠 흐르던

이젠 창을 닫고 돌아와 떠 흐르던
더는 생각지 말자 해도
어느덧
빈방에 가득 차
가슴으로 올려오는
그 목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