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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인 소나타

글 손민두 기자(광주본부) 일러스트 박경진

나와 윤희가 여섯 달가량 함께 살았던 곳이 저동이었다. 내가 처음 오징어잡이 배에 오른 곳도, 우리가 자주 찾았던 울릉종합고등학교도, 바다에 몸을 던지고도 기적같이 살아난 촛대바위 방파제도, 수없이 머리를 찧고 손톱으로 기둥을 후벼 팠던 아름드리 후박나무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저 아래 저동항이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차가 저동항 부근에 이르자 가장 먼저 커다란 후박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아직 저 나무가 그대로 살아 있구나. 나는 반가우면서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나무와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기억 세포가 살아나며 그날의 슬픈 기억이 치올라왔다.

“저 나무 아래 가서 멈추자.”
마음을 진정시키려니 목소리마저 가늘어졌다. 차에서 내리자 뒤따라온 아라가 나의 민머리에 털모자를 씌워주었지만, 쓰는 둥 마는 둥 하고서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는 30년 전에 비해 몸피가 두꺼워지고 가지와 이파리도 훨씬 풍성하게 자랐지만, 세 갈래로 뻗은 수형은 여전했다. 나는 수피를 윤희의 몸이라도 되는 양 만지고 쓰다듬었다. 갑자기 제어할 수 없는 응어리가 꿈틀댄다. 또 눈물이 쏟아진다. 지금 아라가 뒤에서 바라본다는 생각에 등이 따갑다. 하지만 아라의 시선을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설움이 복받친다.

시간이 지나면 잊힐 줄 알았다. 아니, 잊지는 못해도 희미해질 줄은 알았다. 역시 윤희를 향한 내 마음이 아직 흩어지지 않았구나. 내 앞에 서 있는 후박나무를 바라보며 새삼 깨달았다. 내 무의식 속에는 눈앞의 나무보다 더 굵고 무성하게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자라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딸 앞에서도 이토록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단 말인가. 슬픈 기억의 나이테가 새겨진 나무와 더 이상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서둘러 자리를 떴다. 차가 다시 구불구불한 일주 도로를 말없이 질주한다. 저만치 코끼리바위가 보이고 그 옆을 작은 어선 한 척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아마도 오징어잡이 배일 듯싶다.

“배에서 일하실 때 무섭지 않았어요?”
한동안 말이 없던 아라가 시선을 앞에 둔 채 무심한 듯 말을 건넨다. 아까부터 침묵의 어색함을 깨뜨리기 위해 고심하다 기회를 보아 던진 질문인 듯싶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배에서 일한 기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맨 처음 배에 올랐을 때 파도에 요동치는 배
안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대다 쓰러지길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게다가 뱃전을 때리는 날 선 파도가 잘 벼린 칼날처럼 어찌나 날카로웠던지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역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속 바다는 달랐다. 바다 밖에서 바라보는 바다가 낭만과 서정이 깃든 관념의 바다라면, 바다 속 바다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치열한 삶의 현장, 즉 실제의 바다였다.

“삶을 내주는 대신 가혹한 값을 요구하는 곳 중 하나가 바로 바다지.”
“아!”
아라의 짧은 탄식이 터진다.
“그 위험하고 힘든 일을 견딜 수 있던 건 순전히 네 엄마 때문이었지. 생각해보렴. 세상의 온갖 굴레에서 벗어나 둘만의 절대 자유를 누린다는데, 그만한 고통쯤 문제가 되겠니?”
아라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차 안엔 다시 침묵이 감돈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바다가 쉴 새 없이 파도를 끌고 왔다 끌고 가기를 반복한다. 그 끝없는 반복으로 바다임을 알리려는 듯.

“그 와중에도 네 엄마를 위해 악상을 가다듬었다는 게 참 신기하지? 어찌 그 악조건에서 일하면서도 작곡할 생각을 했을까. 역시 네 엄마는 내게 창조적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였어.”
“엄마가 아빠가 배에서 일하며 작곡한 곡을 칠 때 가장 행복해했다면서요?”
“처음 조업을 마친 다음 날 수평선 너머에서 장엄하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작곡한 곡을 연주하면서 얼마나 감격해하던지, 그때 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구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보다 더 장엄하고 찬란한 화음이라고.”
“이해가 돼요. 칠흑 같은 바다에서 밤새 힘든 일을 마친 다음 아침 햇살의 눈부심을 몸으로 느끼고 작곡한 곡이니까.”

나는 오래전부터 내 일생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그리하여 한 편의 표제음악을 작곡하기로 마음먹고 작곡을 거의 마쳤는데, 힘든 뱃일을 마치고 맞이한 눈부신 일출 장면을 곡의 첫머리로 장식했다. 윤희가 그렇게 좋아하고 감동했던 바로 그 선율, 아라는 지금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맞다. 시시각각 영원한 이별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내 삶에서 그리도 찬란했던 순간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 그것을 오롯이 음악으로 표현했으니 그럴 만도 했지.”
나는 차창 밖 바다를 바라보며 다시금 작곡 중인 곡을 떠올렸다. 나의 미완성 음악 자서전은 비록 눈부시게 찬란한 화음으로 시작하지만 계속 비탄과 절망의 테마가 슬프게 이어진다. 처음 관현악곡으로 시작했다가 아라가 그 곡을 연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피아노소나타로 바꿨다. 그런데 아직 코다 앞 마지막 카덴차를 완성하지 못했다. 그것을 무엇으로 채워 넣어야 하나? 나는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10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