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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사진 심진섭(전북본부)

숙면!

새벽 열차를 승무하는 데 이처럼 절실한 단어가 또 있을까? <곰돌이 푸>에서 푸가 “오늘이 무슨 날?” 하고 물으면 피그렛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날!” 하고 대답하며 서로에게 매일매일 주문을 건다. 늘 잠을 설치는 나도 꼭두새벽의 승무에 앞서 주문처럼 내게 위로를 건넨다. “누웠음 잔 거지. 됐네, 뭐.”

용산역!

남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지형이 용 형상을 닮았다고 해서 용산이라 한다. 용산역은 철도 교통의 르네상스다. 갈래를 이루는 분기점, 거미줄처럼 얽힌 철길, 13개의 플랫폼, 쉼 없는 이합집산, 무질서한 듯 정연한 집합과 분산. 레일 네트워크의 유기적 알고리즘 정점에 있는 용산역은 교집합이자 곧 소통이다. 용산역은 승무원에게는 1차 승무 시의 긴장과 피로를 완화하고, 2차 승무를 준비하는 충전을 위한 휴식처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강!

한국의 간선철도는 대부분 한강을 건너지 않고는 시작과 마침을 기약하지 못한다. 승무를 하면서 철교를 지날 때면 잠시 한강을 바라보는 일도 좋다. 도도한 아리수의 잔잔한 파문이 주는, 수다 같은 빛의 난반사를 경이롭게 바라본 적이 있는가? 동쪽 발치 아래로는 노들섬이 내려다보이고, 서쪽 저만치엔 밤섬이 아련하다. 상선철교의 서편 북쪽 둔치에 배 한 척이 덩그러니 있다. 거기에 왜 서 있을까? 정호승의 시를 빌려 남한강 갈대를 한강 둔치로 바꾸고, 궁금증을 내려놓기로 했다.
“나룻배를 사모하는 한강 둔치가, 하룻밤 사이에 봄을 불러들여, 아무 데도 못 가게 붙들어둔 줄을, 나룻배는 저 혼자만 모르고 있네.”

순회!

새벽에 객실을 순회하다 보면 애잔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물론, 불쾌할 때도 왜 없겠는가.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이, 노트북을 켜고 열공하는 이, 책이나 신문을 보는 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이, 술이 덜 깬 이, 차마 못 볼 실례를 아래위로 쏟아낸 이, 표 확인할 때 레이저를 쏘거나 모멸감을 주며 무례한 언사를 함부로 내뱉는 이, 열차를 잘못 타 쩔쩔매는 이, 눈을 감거나 안대를 하고 쪽잠을 자는 이, 한시적이나마 타지에 일할 곳이 생겨 먼 곳의 일터를 오가는 이, 무거운 손수레와 떡판을 끄는 고달픈 할머니들…. 어찌 이뿐이랴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꿈꾸는 이여! 허락한다면 한 번쯤 새벽 첫 열차를 타보라. 숙면에 목마른 안쓰러움을 볼 수 있으려니. 부지런히 살아도 삶이 버거운 애잔함을 만날 수 있으려니.

97년 말 IMF 구제 금융이라는 쓰나미가 몰고 온 줄도산과 IMF 권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대량 해고와 실직, 비정규직을 양산시킨 도화선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동안 기계화·자동화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만 명이 할 일을 몇 대의 기계가 담당한다. 앞으로 AI가 시대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들 한다. AI가 인간의 역할을 대신할 것이고, 기업은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에 인간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다. 로봇은 지치거나 힘들어하지도 않고, 위험한 곳도 가리지 않으며, 노사 협상도 필요 없고, 경상비마저 저렴할 것이다.

기계화, 자동화, 로봇화는 먼 미래의 상상 속 일이 아니다. 이미 인간형 로봇이 등장했다. 미국 핸슨 로보틱스의 ‘한(Han)’은 사람과 대화가 가능하고, 사람의 표정·성·나이 등을 감지하며, 놀랍게도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다. 만약에 정말로 노동을 로봇이 수행한다면, 그리고 그 로봇이 시장에서 물건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정지된다. 언젠가 그리 오래지 않아 맞닥뜨릴지 모를, 오늘날 당면한 과제다. 생산 효율성이 높아질수록 생산에 참여하는 고용 소득의 분배만으로는 경제가 돌아가지 못한다. 장차 휴머노이드(인간화된 로봇)와 인간의 공존, 인간과의 경계가 모호함으로써 어떤 일이 닥칠지 미래에 대한 우려가 없을 수 없다. 인간과 환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담론이 정말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순회를 하면서 신영복의 강의 ‘담론’을 떠올리는 건 기우이고 지나친 비약일까?

단상!

익숙한 모습들이 하나둘 예정된 역에서 내려 총총히 떠나가고, 어느새 먼동을 밀어낸 햇살이 이슬 아래 잠든 대지를 깨운다. 남아 있던 설핏한 잠이 달아난 아침은 싱그럽고 신비롭다. 나의 직업인 ‘승무’는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단조로운 반복 노동일까? 만일 승무가 그렇다면 다른 일들은 창의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승무 중에는 기록하지 않는 많은 서비스와 민원의 해결, 운행 안전과 관련한 고민이 항상 존재한다. 멈춤이 아니라 운행을 전제하기 때문에 더 긴장되는 상황에서 실시간 대처가 필요한 종합적 현장 업무다. 한편, 승무는 생각하기에 따라 여행일 수도 있다.어쩌면 삶이란 이런 과정이 그물처럼 씨줄 날줄로 엮이고 나이테처럼 쌓이는 것인지 모른다.

소로를 만나러 윌든 호수를 찾아가던 류시화는 길을 헤매다가 우연히 노인을 만나 자연과 인간의 교감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영감을 얻으며, “먼 길을 돌아갔지만 그것이 그에게 바로 가는 길”이었다고 “돌아간 그 먼 길이 곧 과정의 신비”라고 통찰했다.
자연의 신비, 진솔한 삶의 모습, 존재와 관계의 오묘함을 여과 없이 늘상 경험한다는 것! 삶은 경주가 아닌 이 모든 순간의 합이자, 과정 과정이 목적지임을 승무를 통해 경험하고 통찰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가?
‘열차는 거리와 시간의 셈법이자 사연을 담아내는 공간의 함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