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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근대의 흔적을 가장 잘 보존한 곳 중 하나가 대구광역시 중구다. 핫 스폿이 서로 인접해 있어 한꺼번에 둘러보기 좋다. 개화기부터 시작해 일제강점기를 지나 산업화 시대까지, 우리나라 20세기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대구. KTX와 대구시티투어버스 타고 그곳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글과 사진 제윤빈 기자(대구본부)

이번 여행에 이용한 투어버스는 도심 순환 코스였다. 레츠 코레일에서 KTX와 시티투어버스 이용권을 예약했는데, 동대구행 승차권과 버스 이용권이 하나로 합쳐져 있다. 가격도 더 저렴하고 동대구역에서 작은 기념품도 받을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버스는 동성로, 이월드, 수성못 등 도심 속 명소를 지나지만, 나는 뉴트로 여행지인 김광석다시그리기길과 서문시장, 근대문화골목을 다녀왔다.

가객을 추억하는 김광석다시그리기길

김광석은 1964년 대구 방천시장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방천시장은 광복 직후 일본과 만주 등에서 온 이주민들이 모여 형성되었지만, 시대가 변하며 쇠락한 곳이었다. 그런데 2011년부터 예술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고, 김광석의 고향이라는 점이 조명받아 김광석을 추억하는 이들이 모이는 골목길까지 생겨났다. 거리 입구에는 김광석 동상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스피커에서는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살아 돌아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 같았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삭막한 콘크리트는 그를 기억하는 예술 작품, 사랑을 약속하는 글귀로 채워졌고, 작은 공연장에는 또 다른 김광석을 꿈꾸는 음악인들의 공연이 지금도 이어진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누군가가 김광석이 왜 유명한지 물었다. 그 질문에 다른 누군가가 남긴 댓글이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이 사람 노래가 내 마음을 읽는다”고. 맞는 것 같다. 김광석 노래를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빗속에서 들려오던 그의 노래는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를 위로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기에 그의 별명이 ‘가객’이었고, 그가 떠나고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는 게 아닐까 싶었다.

도시의 활기가 살아 있는 서문시장

도시에서 가장 활기찬 곳은 전통시장이 아닐까? 새벽부터 밤까지 분주한 그곳, 그래서 여행 프로그램이나 여행 서적을 보면 항상 전통시장이 등장하는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또 점심 요기를 위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전통시장인 서문시장을 찾았다.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 대구읍성 북문에 처음 생겼다. 17세기에 오늘날 도청 역할을 하는 경상 감영이 대구로 옮겨오면서 더욱 발전해 읍성 서문 밖으로 옮기게 되었고, 이때부터 서문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지금은 6개 지구 4,000여 개 점포 규모로 성장했다. 지하철 청라언덕역에서 내려 5분 정도 걸어가니 서문시장에 도착했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수많은 인파를 볼 수 있었다. 골목마다 수제비, 칼국수, 떡볶이, 만두 등 갖가지 먹거리를 파는 노점이 많아 어디서 식사를 해야 하나 고민했다. 한 노점을 골라 칼제비 한 그릇을 먹었다. 면발이 쫄깃쫄깃해서 맛있었다. 가격도 4,000원이라 가성비가 뛰어났다.

붓글씨로 쓴 간판을 내건 약재상부터 현대적 신축 상가까지, 시장 속의 수많은 가게에서 다양한 것을 팔았다. 그리고 그동안 전통시장은 어르신들이 주로 찾는 곳이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는데, 서문시장에는 청년 상인들, 젊은 고객들, 부모님과 함께 온 어린이도 많아 놀라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장의 활기찬 모습에 여행을 이어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비 오는 날이라 그런지, 김광석의 수많은 노래 중 ‘사랑했지만’이 가장 와닿았다.

서문시장은 대구는 물론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큰 규모의 전통시장이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에도 시장에는 많은 인파가 몰렸다.

시대의 아픔이 남아 있는 근대문화골목

근대문화골목은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우리나라 근대사를 관통하는 대구 도심 속 여행 코스다. 서문시장 맞은편 청라언덕에서 출발해 3·1만세운동길, 계산성당, 이상화·서상돈 고택, 대구제일교회를 거쳐 동성로 근처 화교협회까지 이어지는 코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3분의 2 정도 되는 대구제일교회까지만 둘러볼 수밖에 없었지만 1시간 정도 거닐며 많은 유산을 봤다. 이역만리 타국 사람들에게 교육과 의술을 펼치며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헌신한 선교사들, 빼앗긴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애국지사들의 흔적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나간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나라 첫 사과나무는 벌써 손자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고, 멀리서는 현대적 고층 빌딩, 건물을 짓는 크레인이 빗속에서도 불을 밝히고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 우리 민족은 어둡고 힘든 시대를 겪었다.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의 시대였지만, 시대의 등불이 되어준 많은 애국지사, 우리 민족을 사랑한 선교사들도 있었다. 그 시대에 살았다면, 과연 나는 그들처럼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을까?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서문시장의 활기가 있고, 그 가운데 지친 영혼을 위로하던 가객이 나올 수 있었을 테다. 그리고 그 역사가 모이고 모여 오늘의 우리가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 도심 속 시간 여행이었다.

청라언덕의 선교사 주택. 외양은 전형적인 서양식인데 기와지붕을 얹은 것이 특이하다. / 3·1만세운동길은 만세 운동을 계획하던 학생들이 오가던 길이라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좌우에 당시의 사진과 만세 운동에 참여한 분들의 회고가 있어 생생했다.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의 고택. 그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고택 뒤 현대 건물들이 변화한 대구를 보여준다. / 대구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모이던 교남 YMCA 회관. 맞은편 대구제일교회와 함께 물산장려운동, 신간회 운동 등 민족운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