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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선 예미역(禮美驛)에는 전신주처럼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채 훤칠한 자태를 자랑하는 가문비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다. 가문비나무는 전나무와 더불어 구내 담장을 따라 도열해 있는데, 하나같이 쭉쭉 뻗어 기품 있게 자랐다.

글과 사진 김응기(서울본부)

가문비나무 열매.

가문비나무에 깃든 사연

가문비나무는 고산지대에 자라는 북방계 식물로, 소나뭇과에 속하는 늘푸른바늘잎나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일본, 극동 러시아가 원산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이나 계방산, 설악산, 백두산 등 높은 산지에서나 볼 수 있는데 요즘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온 상승으로 그 수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가문비나무는 추운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인 만큼 폭설과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원뿔형으로 뾰족하게 자란다. 그러다 보니 수형이 단정하고 아름다워 전나무와 함께 크리스마스트리 소재가 되고 있다. 높이는 최대 40m에 이른다.

가문비나무는 ‘감비나무’라고도 부른다. 한자로는 가문비(假紋榧)를 비롯해 당회(唐檜), 어린송(魚鱗松), 가목송(椵木松), 흑피목(黑皮木) 등으로 쓴다. 그중 ‘어린송’은 고기 비늘처럼 벗겨지는 나무껍질 모양에서, ‘흑피목’은 흑갈색을 띠는 나무껍질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가문비나무 이름은 ‘흑피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가문’은 ‘감다(검다)’의 관형사형 ‘가믄’에서, ‘비’는 한자 ‘皮’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오늘날 유기음으로 발음되는 한자음 가운데 옛날에 무기음으로 발음된 흔적을 보이는 예가 많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즉 ‘皮’는 ‘피’로 발음하지만 ‘鹿皮(녹비)’에서 보듯 ‘비’로 발음하는 경우가 있어 ‘가문비’는 ‘검은색 껍질’이란 뜻의 ‘가믄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충북대 조항범 교수) 이 외에도 가문비나무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假紋榧(가문비)’설, ‘검은 비자나무’설, ‘검은 피(皮)나무’설 등이 있다.

독보적 쓰임새를 갖춘 나무

가문비나무는 나무 모양이나 잎 생김새, 솔방울처럼 길쭉하게 생긴 타원형 열매 등이 전나무와 아주 흡사하다. 그러나 열매가 달리는 모습이 확연히 달라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위로 곧추서서 달리는 전나무 열매와 달리 가문비나무 열매는 처음에는 위를 보며 자라다가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아래를 향해 축 늘어지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가문비나무는 어린 가지에 엽침(葉枕)이 발달해서 잎 떨어진 자리가 까칠까칠한 데 비해 전나무는 잎 떨어진 자리가 매끄럽다.

가문비나무는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만큼 쉽게 볼 수 없는 나무다. 그러다 보니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문비나무는 은청가문비나무를 비롯한 개량형 가문비나무이거나 독일가문비다. 독일가문비는 1920년경 유럽에서 들여왔는데, 가문비나무에 비해 열매가 무척 크다. 또한 잎 횡단면이 렌즈 모양인 가문비나무와 달리 사각형이다.

가문비나무는 아주 오래전 껌 재료로 쓰였다. 일찍이 고대인은 나무에서 나오는 수지(樹脂)를 이용해 껌을 만들어 씹었다. 마야인은 사포딜라(sapodilla)에서 나오는 수액인 치클(chicle)을, 고대 그리스인은 유향나무에서 나오는 수지를 씹었다. 또 북미 인디언은 가문비나무에서 나오는 진액에 밀랍을 섞어 씹었다. 나무에서 나오는 수지를 이용해 껌을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에 접어들어서다. 미국인 사업가 존 B. 커티스(John B. Curtis)는 1848년, 가문비나무에서 추출한 원료를 이용해 ‘스프루스(Spruce)’라는 천연 껌을 만들어 상업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사업은 기대한 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그 후 스프루스 껌은 ‘파라핀 왁스’를 원료로 만든 껌으로 대체되었다.

가문비나무는 재질이 연하고 부드러운 데다 나이테가 일정하고 세포 구조가 촘촘해서 건축재나 가구재, 악기재, 펄프재 등으로 두루 쓴다. 그중에서도 소리 전달성이 좋고 높은 음역대에서 울림이 좋아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 기타 등 서양 악기의 울림 판 재료로 인기가 높다. 특히 여음(餘音)이 길어 바이올린이나 기타의 울림 판으로 많이 쓰는데, 수목한계선 바로 아래 척박한 환경에서 자란 가문비나무일수록 울림이 좋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나 악기나 명품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가 보다.

가문비나무가 있는 예미역 풍경.

태백선 예미역

함백선(咸白線)이 개통되던 1957년 3월에 함백선 예미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역 이름은 마을에 있는 예미산에서 유래했다. 함백선은 영월선의 연장으로 영월역에서 함백역에 이르는 산업 철도로 부설되었다. 그러다가 1962년 5월 예미역~정선역 간 정선선을 착공하고, 1966년부터 제천역에서 민둥산역(구 증산역)에 이르는 구간을 태백선이라 부르면서 태백선 지선이 되었다. 그 후 1977년에 함백역에서 조동신호장역에 이르는 함백선 구간을 연장·개통하게 됨에 따라 예미역~조동신호장역 구간은 태백선과 함백선이 공존하는 지금의 복선 형태가 되었다.

예미역은 조동신호장역 방면으로 선로 기울기가 무려 30퍼밀(‰)에 이를 만큼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의 시·종점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한때 기관차의 견인력이 부족할 경우를 위해 예비 기관차를 대기시키고, 제동 기능에 이상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피난선을 설치하는 등 사고 위험에 대응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관차 성능이 점차 개선됨에 따라 더 이상 예비 기관차를 상주시킬 필요가 없게 되었고, 2009년에는 피난선마저 모두 철거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