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riendly, PDF & Email

감독 윤단비 / 개봉 2019년
주연 양흥주, 박현영, 최정운, 박승준

수상 및 초청 내역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
(한국영화감독조합상, 시민평론가상, 넷팩상, KTH상)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밝은미래상
제45회 서울독립영화제 새로운선택상 외 다수

관계와 감정의
사려 깊은 초상화

남매의 여름밤

<남매의 여름밤>은 여름방학 동안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게 된 어린 남매, 아버지와 고모라는 어른 남매, 그리고 할아버지까지 3대에 걸친 평범한 가족의 일상 이야기와 성장의 순간을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 윤단비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글 윤혜주 기자(미래전략실)

 

뭉클하고 아련한 추억 소환

많은 감정의 변화와 성장을 겪는 옥주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저런 비슷한 일이 있었지” 하며 유년기의 너울대는 기억이 여백마다 파도처럼 밀려온다. 정적인 연출과 섬세한 미장센,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오래되고 정겨운 소품들.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 같은 색감이 어릴 적 어느 날의 계절로 우리를 데려간다.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맺힌다. 세월이 묻어나는 평범한 동네, 집 안에 계단이 있는 오래된 2층 양옥집, 안방 한 벽을 차지한 자개장, 거실장을 가득 메운 빛바랜 트로피, 대문 위의 포도 넝쿨, 창가의 녹슨 재봉틀, 마당의 고추와 방울토마토, 콩국수, 수박, 센베이 과자, 매미 소리, 모기장, 물건 파는 트럭의 확성기 소리, 옆집 강아지 짖는 소리, 바구니 달린 낡은 자전거, 노란 장판이 깔린 슈퍼 앞 작은 평상, 동생과 끓여 먹는 라면, 새벽에 커다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옛날 노래, 김추자의 목소리로 들리는 신중현의 ‘미련’, 삐거덕거리는 계단 소리, 알 수 없는 담금주와 자잘한 물건이 가득한 작은 방, 파란 날개의 선풍기….

할아버지 생신날 가족들 앞에서 웃긴 춤을 추는 어린 동생, 자신의 아버지가 어릴 때 자신에게 치던 장난을 아들에게 하는 아버지, 모기장 속에서 같이 자자며 응석 부리는 동생, 서로 투닥거리고 동생은 울음보를 터뜨렸지만 금세 사과하고 같이 라면을 끓여서 나눠 먹는 남매, 말없이 다독여주는 할아버지의 손길. 파편화된 가족이 보편적 현상으로 비치는 현대사회에서 잊고 지냈던, 좋든 나쁘든 어딘가 뭉클하고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만들어줄 <남매의 여름밤>.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익숙하고도 그리운 집밥 같은 위로를 주는 영화다.

화기만당: 화목한 기운이 온 집안에 넘친다는 의미.

다시 찾은
근무지에서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마정리.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줄곧 성장했다. 그 기간 동안 철도에 대해 알지 못했고, 기차 또한 타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군대에 입대할 때도 논산 제2훈련소로 가는 바람에 트럭을 타고 교육을 받으러 갔다. 1963년 2월 전역, 그리고 1년 5개월 후 나는 당시 영주철도국 관내에 있는 정동진역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이것이 난생처음 맺은 철도와의 인연이다.
글 문윤식(퇴직 사우)

 

56년 만의 추억 여행

당시 정동진역에는 여객 수송보다는 정동진 광업소가 있어 연탄 수송이 우선이었다. 정동진역 근무 이후에는 옥계역으로 전입명을 받았는데, 옥계역 역시 화물 수송이 주를 이루는 곳이었다. 이후 또 인사이동을 통해 묵호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묵호에는 묵호항역과 묵호역이 있는데 묵호항역은 화물 수송만 하며, 묵호역이 여객 업무까지 모두 취급하고 있었다. 출찰은 하루 2명. 1출찰은 영주역까지며, 2출찰은 영주 이후로 가는 매표를 진행했다.

이후 다시 한번 인사이동이 있어 영동선 철암역으로 옮겼다. 철암역 역시 여객 수송보다는 대한석탄광업소가 위치한 덕분에 석탄 수송이 주를 이뤘다. 고향 근처인 대전철도국 관내 강경역, 충북선 목행역, 연무대역 등에서도 근무를 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박봉이라 생각해 환직 시험을 준비했고, 상공부 산하 한국종합화학으로 이직해 10여 년 정도 근무하다 퇴직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항상 철도를 잊지 못했다. 그 그리움이 켜켜이 쌓여 더 시간이 흐르기 전에 내가 근무하던 역들을 둘러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첫 발령 때 정동진역으로 곧잘 데려가곤 하던 큰아들이 때마침 지난 7년간 네덜란드 주재 근무를 마치고 귀국했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옛 근무지 여행을 그렇게 아들의 도움을 받아 다녀오게 되었다.

정동진역부터 옥계, 묵호, 철암역 등을 차례차례 둘러봤는데, 정동진역은 더 이상 연탄 구경을 할 수 없었고, 역사도 아주 깨끗했다. 또 정동진에는 당시 옥수수로 만든 막걸리가 명품이자 일품이었는데, 현재는 양조장조차 구경하기 어려웠다. 정동진역, 묵호역, 철암역에서는 “과거에 여기서 근무했다”고 전하자 직원들의 환대도 받을 수 있었다. 철암역은 내가 근무할 적엔 대한석탄광업소가 있어 석탄 수송이 우선이었는데 현재는 볼 수 없었다. 또 통리역에서 흥전신호소를 거쳐 나한정역까지 보조 기관차를 후미에 연결해 갈지자 형식으로 다니던 선로가 없어졌다는 점이 못내 아쉬웠다.

만약 다시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열차를 이용해 숙박도 하면서 더 여유 있는 추억 여행을 하고 싶다. 아직 들르지 못한 대전 관내 충북선 목행역, 연무대역, 강경역을 그렇게 둘러보고 싶다. 왠지 모르게 다른 직장보다 애틋한 마음이 드는 한국철도. 나의 머릿속에 항상 남아 있는 근무지로 56년 만에 여행을 다녀올 수 있어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