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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기자의 2012년 해외 봉사 활동 후기

‘시간이 더 가기 전에 더욱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고 싶다’고 굳게 마음먹은 나였다. 그 첫 도전이 해외 봉사였고, 출국하는 순간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내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글과 사진 정승화(부산경남본부)

함께라면

8월 뜨거운 여름방학, 타지로 향하는 두려움과 설렘을 안고 비행기에 올랐다. 필리핀 공항에 도착해 습한 공기를 마시고 나서야 비로소 이국땅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숙소에 도착한 후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물품들을 보니 이 타지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곳 아이들을 마주하기에 앞서 여름방학 내내 교육 프로그램, 문화 공연, 벽화 준비 등 많은 것을 팀원들과 함께 준비했다.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꿔주었다.

# 가슴으로 듣는 아이들_사랑을 심다

거친 소리를 내며 시동을 거는 자동차와 시커먼 매연으로 가득 찬 도로, 네온사인 불빛…. 지프니*를 타고 좁은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낡은 건물이 서 있는 공터가 나온다. 그곳에 놓인 작은 나무 책상과 작은 플라스틱 의자가 이곳이 학교임을 알려준다. 우리가 지프니에서 내리면 눈망울이 큰 아이들이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겨준다. “아농 팡알란모(네 이름은 무엇이니?)” “일랑 타온가나(네 나이는 몇 살이니?)” 처음 아이들을 보았을 때 이 말만 셀 수 없이 되풀이하며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짓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한지 필통 만들기, 전통 부채 만들기 등의 교육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진행해나갈수록 주춤거리던 아이들이 먼저 다가오기 시작했다. 자그마한 손을 내밀고 내가 웃으면 따라 웃기 시작한다. 어느새 우리는 언어가 아닌 눈빛과 마음으로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향해 수줍게 미소 짓던 아이들 얼굴에서 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다.
*지프니(Jeepney) 필리핀의 대표적 대중교통수단.

아이들이 직접 그린 스크래치화. / 비누방울을 부는 아이들.

# 소년처럼 투명한 그 시절로_사랑을 쓰다

필리핀에서 만난 아이들의 첫인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커다란 눈망울과 긴 속눈썹, 우리를 향해 연분홍 미소를 지으며 웅얼웅얼 이야기하던 아이들. 우리는 첫날 아이들에게 이름표를 만들어주고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영어로 말하면 선생님께서 통역해주시는 방식으로 진행했는데, 아이들과 완벽하게 소통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익혀서 간 몇 가지 말로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자 신이 나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던 우리는 언어를 좀 더 배워 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2~3일이 지나자 소통으로 당황하던 순간은 잊어버리고 우리 모두 눈빛과 마음으로 아이들과 공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맑은 눈동자만큼이나 곱고 순수했다. 우리는 물품을 준비할 때 아이들이 싸울 수도 있으니 스티커를 똑같은 개수로 공평하게 나누자고 계획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아이들 모습은 억지로 만든 규율을 무색하게 만들었고, 욕심 없이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우리가 부끄러웠다. 태권도를 할 때 어린 친구가 다칠까 봐 꼭 붙들고 있던 아이의 모습부터 수업이 끝날 때 사인펜을 양손 가득 모아서 직접 가져다주던 아이의 모습까지 모두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 어울림을 노래하다

일곱째 날. ‘어떻게 한국 문화를 알리고 함께 즐길 수 있을까?’ 1시간 남짓 주어진 문화 공연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습실을 오가며 구슬땀을 흘린 우리가 놓칠 수 없었던 질문이다. 모두가 땀 흘리며 열심히 연습했지만 막상 아이들과 수많은 주민 앞에 서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코 아이 마이 로보~♪”, “통통통파키통키통~♬”. 우리가 필리핀 동요를 부르자 아이들이 다 같이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필리핀 동요를 시작으로 난타, 컵 난타, 태권도 격파 시범, K-Pop 댄스, 강강술래에 이르기까지 총 8개 공연을 1시간 동안 진행했다. 그동안 흘린 땀방울의 보상이었을까,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으로 무사히 공연을 마쳤다. 아이들의 재밌어하는 표정에 오히려 우리가 더 신이 나 공연을 즐긴 것 같다. 너무나 푸른 하늘 아래, 아이들과 함께 노래하며 고사리손을 맞잡고 강강술래를 하던 그 순간은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

종이배에 적은 서로의 꿈(종이배를 접어 바다 그림 도화지에 붙여 완성하였다). / 다함께 즐긴 강강술래. / 학교 창고 외벽에 완성한 벽화.

# 한여름 날의 동화

한 달여 간의 준비 기간 동안 ‘내가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어떤 것을 느끼고 돌아올까?’에 대한 답을 몇 번이나 고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러한 질문들에 답을 하는 것이 막연했지만,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온 것 같다. 소중한 팀원들, 아이들에게서 배운 순수함, 현지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 언어와 문화를 초월해서 느낀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한마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선물이었다. 활동 마지막 날. 모든 활동을 마무리하고 지프니에 앉아 있던 우릴 향해 하나둘 몰려들던 아이들이 생각난다. 어떻게 보면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짧은 만남이었음에도 항상 먼저 다가와 손잡아주며 떠나는 우릴 향해 계속해서 손 흔들던 모습이 가슴 한쪽에 잔잔하게 그려진다. 내 생애 어떤 순간보다 따뜻하던 8월, 우리가 벽에 그린 추억은 그대로일까? 학교도 문을 열었겠지. 문득 떠오르는 한여름 날의 동화가 나를 미소 짓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