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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종종 산과 바다 중 선택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맑은 공기와 녹음 속에서 상쾌한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산, 끝없이 펼쳐진 파란 풍경과 파도 소리가 우리를 위로해주는 바다. 한국철도 사우님들은 어느 쪽을 선택할까? 사랑하는 사우님들이 뭘 고를지 몰라 둘 다 준비했다! 산과 바다를 동시에 즐기는 ‘동해산타열차’가 지난 8월 19일부터 운행을 시작했다. 동해시 거주 4년 차의 바닷사람처럼 보이지만, 실은 뼛속까지 봉화 산골 출신인 ‘촌놈’ 기자가 사우 여러분을 위해 다시 나섰다.

글 홍충교 기자(강원본부) 사진 한국철도 명예기자단(유인수, 강봉관)

#0. 동해산타열차는?

경북 영주와 강원도 강릉 사이를 연결하는 영동선은 우리나라 철도 중에서 가장 ‘미묘한’ 노선이 아닐까? 영주에서 봉화, 태백을 거치며 백두대간의 험한 협곡을 따라 굽이치는 선형과 급구배를 힘겹게 달리더니, 동해와 정동진을 지나며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다 바로 옆을 스치듯 미끄러진다. 산업 철도로 개통했지만, 이제는 여행객에게 더욱 사랑받는 어색한 모습. 영동선 산악 구간을 운행하는 V-트레인과 바다 구간을 운행하는 바다열차는 영동선이 지닌 가치를 잘 보여준다.

지난 8월 운행을 시작하는 동해산타열차는 V-트레인과 바다열차를 합쳐놓은 개념의 관광 전용 열차다. 기존의 중부 내륙 순환 열차 O-트레인의 운행 구간을 강릉~분천으로 변경하고, 이를 강릉선 KTX 운행과 연계해 수도권 이용객이 보다 쉽게 영동선의 매력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 왕복 1회 운행하며, 강릉~분천 구간 기준 편도 이용 금액은 1만2,500원이다. 강릉, 정동진, 묵호, 동해, 신기, 도계, 동백산, 철암, 석포, 승부, 양원, 비동, 분천 등 구간 내 모든 여객역에 정차하기 때문에 일정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여행 코스를 설계할 수 있는 것도 장점. 동해산타열차의 운행 구간을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의 매력을 소개한다. 어떤 코스를 선택할지는 오롯이 사우님들의 몫!

#1. 철도와 바다, 강릉·정동진·묵호·동해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코레일관광개발의 ‘바다열차’로도 운영하는 매우 유명한 코스다. 심지어 요즘은 서울~동해 간 KTX도 개통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시원한 바다를 감상할 수 있다. 물론 강릉에서 출발한 동해산타열차를 타고 정동진이나 묵호, 동해에서 내리는 것은 비추. 남은 구간이 너무나 많기도 하거니와, 관광열차라 비싸다. 만약 그 구간만 이용하고 싶다면 동해~강릉 간 셔틀 열차를 이용할 것. 2,900원이라는 저렴한 운임으로 사우 여러분을 모신다. 물론, 분천에서 돌아오는 길에 묵호나 정동진에 내리는 것은 추천. 이제는 묵호와 정동진에도 KTX가 운행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기 전 바다를 더욱더 느끼고 싶은 분께 권한다. 이 구간의 자세한 추천 코스는 사보 3월호 ‘동해행 KTX가 온다’ 기사를 참고하시길(기자가 쓴 기사라서 드리는 말씀은 절대 아니다. 절대!).

#2. 막장이라는 가벼운 말의 무거움, 철암

‘막장 드라마’, ‘막장 인생’…. 언제부턴가 막장이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주로 비상식적이고 비윤리적 의미로 사용하는 ‘막장’이라는 말이 본래는 탄광 갱도의 맨 끝, 광부가 목숨 걸고 석탄을 파내는 뜨거운 삶의 현장을 의미한다는 것을. 한없이 가볍게 쓰이고 버려지기엔 막장이라는 단어에 담긴 우리 아버지 세대의 피, 땀, 눈물은 너무나도 무겁다는 것을.

철암역은 막장이라는 단어의 무거움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국내에 몇 남지 않은 탄광,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가 위치한 철암에 태백시는 ‘철암 탄광역사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직 운영 중인 곳에 붙은 ‘역사’라는 단어가 묵직하게 다가오는 것은 어쩌면 동네 개도 1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옛 철암의 모습이 더욱 멀리 느껴지는 까닭이 아닐는지….

철암역에서 역사 반대편을 바라보면, 지하에서 올라온 석탄을 열차에 싣는 ‘선탄 시설’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초의 무연탄 선탄 시설로 지금은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철암역두 선탄장은 영화 <인정 사정 볼 것 없다>에서 안성기와 박중훈이 주먹을 마주하는 유명한 장면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6월부터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철암역두 선탄 시설 투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1일 4회, 1회에 각 15명씩 예약제로 운영한다. 투어 프로그램은 10월 말까지 진행하며, 예약은 태백시청 관광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으니 관심 있는 사우는 미리 예약하시길.

철암역 밖으로 나오면 철암천과 그 위로 펼쳐진 옛 건물들을 볼 수 있다. 철암이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절, 한정된 공간에 더 넓은 건물을 짓기 위해 하천 위에 기둥을 세우고 증축했는데, 어른들은 이 건물들을 ‘까치발 건물’이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볼 때마다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곤 했던 이 건물들은 지금 철암의 옛 모습을 간직한 소중한 자원이 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일부 점포는 회화나 설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 개조했다니 여유가 있다면 찾아가보자.

#3. 열차를 타고 떠나는 협곡 여행, 승부·양원·비동

강릉에서 시작해 동해와 태백을 거친 동해산타열차는 이제 강원도가 아닌 경북을 달리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최고의 오지로 불리는 BYC(봉화, 영양, 청송)의 선두를 차지하는 봉화군은 다름 아닌 기자의 고향인데, 영동선은 오지인 봉화에서도 최고의 두메산골을 이어 달린다. 한국철도에 근무하시는 선배들 중에 의외로 봉화 분이 많은 이유도 거기에 있다. 철도가 아니면 접근하기 힘들 정도로 오지인 탓에 철도 의존도가 높고, 주변에 먹고살 수단 중 철도는 최고 선택지였을지 모른다.

이곳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도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리는 봉화에 ‘환상선 눈꽃열차’가 생기면서 승부역이 관심을 받게 되고, 점점 입소문 나기 시작하면서 승부·양원·비동 등 영동선 주변, 낙동강천이 흐르는 협곡을 활용한 백두대간 협곡 열차 V-트레인이 운행을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승부역은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이라는 시로 유명한 역이다. 이 시는 1960년대 역무원으로 근무한 선배님이 쓰신 시라고 하는데, 자동차로는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골 오지에 있는 승부역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주변 트레킹 코스 이름도 ‘세 평 하늘길’이다. 지금이야 워낙 많은 관광객이 승부역을 찾고 있어 ‘오지’라는 말이 다소 어색할 정도지만, 열차가 지나가고 나면 적막이 흐르던 예전 승부역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다음으로 만나는 양원역은 매우 특별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워낙 열악한 교통 환경 탓에 열차로만 다닐 수 있는 이곳에는 원래 역이 없어 승부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주민의 간곡한 요청에 의해 임시 승강장이 만들어지고 열차가 정차하게 된 것이다. 바로 옆을 흐르는 낙동강천 반대편에 있는 아담한 역사도 주민이 손수 만들었다고 한다. 일종의 민자 역사(?)라고나 할까? 역사 옆과 승강장에서는 주변에 사는 할머니들이 산나물 같은 특산품이나 수수부꾸미, 엿 같은 주전부리를 판매한다. 기자의 추천 픽은 생강엿. 그리 달지 않기 때문에 하나 사놓으면 여정 중에 하나씩 집어 먹게 된다.

오지 역 트리오의 마지막은 비동역이다. 비동 역시 양원과 마찬가지로 임시 승강장인데, 양원역과 달리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사실 비동은 V-트레인 운행을 시작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승강장으로, 오로지 트레킹을 즐기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정차한다. 이왕 트레킹 이야기가 나온 김에 승부-양원-비동으로 이어지는 오지 역 트리오의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고자 한다. 약간 복잡할 수 있으니 지도를 참고할 것.

크게 산길을 타는 ‘낙동정맥 트레일(비동~승부, 5.9km, 2시간 소요)’ 코스와 낙동강천 옆 협곡을 걷는 세 평 하늘길(비동~양원~승부, 7.8km, 약 3시간 소요)’ 코스가 있다. 이 중 세 평 하늘길은 체르마트길(비동~양원, 2.2km)과 낙동강 비경길(양원~승부, 5.6km)로 나뉘는데, 이왕이면 세 평 하늘길 중 한 코스를 추천한다. 동해산타열차는 역마다 다소 다르긴 하지만, 오는 열차와 가는 열차의 사이 간격이 약 2시간이 되지 않으므로 코스 선택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겨울과 봄에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고 실제로 겨울 풍경이 무척 아름다운데, 이때는 등산화와 아이젠, 스패츠를 꼭 챙겨 가길 권한다.

#4. 산타 할아버지를 찾아서! 분천

동해산타열차에서 ‘산타’를 홀로 맡고 있는 분천역. V-트레인의 출발역으로 유명해진 분천역은 지난 2013년 스위스 체르마트역과 자매결연을 한 이후 역사를 전반적으로 스위스풍 외관으로 리모델링했다. 덕분에 조용한 시골 간이역이던 분천역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게 되었는데, 어린 시절 분천역의 소박한 모습을 기억하는 기자에겐 다소 씁쓸함으로 다가온다. 물론 이글루, 산타 썰매, 알파카(진짜 알파카가 살고 있다!) 등 크리스마스와 산타 할아버지가 떠오르는 많은 조형물과 즐길 거리가 생겨 어린이를 동반한 관광객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고 있다. 역사 옆쪽에는 새로 생긴 ‘분천 산타우체국’이 있어 방문해볼 수 있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살 것 같은 분위기로 조성해놓아 눈길을 끈다. 이곳에서는 일반 엽서와 느리게 가는 엽서를 선택해서 보낼 수 있다고 하니,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왔다면 여행의 추억을 기록한 엽서를 보내보자.

산타 할아버지를 찾았다면 분천역 바깥쪽에 위치한 상점에서 허기를 채울 수 있다. 주로 간단한 옥수수부터 전병, 부침개 등을 파는데, 지역 막걸리와 함께 맛보는 감자전을 추천한다. 보통 감자전은 감자를 갈아서 부치지만, 이 지역의 감자전엔 갈아 만든 반죽 위에 채 썬 감자를 올린다. 사실 특별한 맛은 아닐 텐데, 맛이 궁금한 사우는 한번 드셔보시길.

*외래어 표기법상 Zermatt는 체어마트로 쓰고 있으나, 봉화 체르마트길과의 연관성을 위해 사보에는 ‘체르마트’로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편집실)

 

사우님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인가요?

“고향이 봉화라고? 그거 진짜 큰 자산이 될 거야. 정말 부럽다.” 학부 시절, 내 고향이 봉화라는 말을 들으신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높은 건물도 없고 영화관도 없는 곳인데 대체 왜 저런 말씀을 하시는지 그땐 알지 못했다. 공부하느라 바빴고, 취업 준비하느라 정신없었으니까. 물론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전혀 없었다.

“이곳에 뿌리를 내린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믿어.” 얼마 전, 뒤늦게 보게 된 영화 <리틀 포레스트> 마지막에 주인공 혜원의 엄마는 혜원을 시골에서 자라게 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오래전 교수님의 말씀이 다시 기억났다. 어쩌면 나도 혜원이처럼 내 고향 작은 숲에서 위로받고 버틸 힘을 얻어 살고 있었을까? 그 작은 숲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큰 자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는다.

항상 열차를 타고 떠나는 행복한 고객을 바라보기만 했을 우리 사우님들. 업무로, 때론 고객의 민원 처리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사우님들의 리틀 포레스트는 어디인가요? 자연이 주는 위로, 힐링이 필요한 사우님들께 동해산타열차를 추천한다. 파란 바다와 우거진 녹음이 사우님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