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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 가능성이 배제된 공상 상태를 우리는 ‘환상’이라고 한다. 환상은 때론 현실에 지친 우리에게 약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환상의 그대>에는 “삶에는 때때로 신경안정제보다 환상이 필요해”라는 대사가 등장하지 않던가.
사실과 허구 사이를 미묘하게 오가며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장르, 영화. 이 속에도 환상이 존재한다. 이달에는 현실을 배경으로 삼았으나 비현실적일 만큼 환상적인 촬영지로 안내한다.

상상만 하던 우주가 여기에 있다
<인터스텔라> 스비나펠스요쿨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대사다. 우주 영화의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 영화는 시각을 압도하는 영상미로도 유명하다.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게 된 인류가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찾아간 만(Mann) 박사의 행성. 하지만 구름조차 얼어버리는 얼음 행성에서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좌절에 빠진다. 그 황량함을 구현하기 위해 제작진이 찾은 답은 스비나펠스요쿨. 흡사 외계어처럼 들리는 이름이지만 실은 아이슬란드 스카프타펠 국립공원 동쪽에 자리한 빙하 구역이다. 낯선 지명만큼 풍경도 생경하다. 무려 100km에 걸친 거대한 얼음 절벽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우주를 간접체험하는 듯 경이로움이 온몸에 전해진다. 이 외에도 검은 사막과 웅장한 폭포, 꿈틀대는 화산까지 생명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에 있었을 법한 태초의 지구 모습을 그려보기 충분하다.

영원히 사랑하고 싶다면 여기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울루루

오스트레일리아 땅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산이 있다. 산은 산이지만, 풀 한 포기 돋아나지 않는 바위산으로, 5억 년 전 지구가 지각운동을 할 때 땅 위에 드러났다. 세상에서 가장 큰 단일 바위로 알려진 이 바위를 원주민은 울루루, 즉 ‘세상의 배꼽’이라 부르며 경배해왔다. 이곳 배경으로 삼은 영화가 있으니, 바로 일본 열도에 ‘세카추(<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일본 제목 약칭)’ 열풍을 일으킨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다. 서로에게 첫사랑인 아키와 사쿠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는 울루루를 백혈병을 앓는 아키의 버킷 리스트 장소로 설정했다. 아키가 세상을 떠난 후 사쿠 홀로 이곳을 찾는데, 영화 흥행 이후 많은 연인이 울루루 정상에 올라 변치 않는 사랑을 맹세하기 시작했다는 후문. 험난한 바위를 오른 후 ‘세카추’를 외치면 사랑이 변치 않는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생의 마지막 휴가를 즐기게 된다면
<라스트 홀리데이> 카를로비바리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 인생.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남은 시간이 3주뿐이라면?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의 주인공 조지아는 이제 겨우 30년을 산 가구 매장의 평범한 직원. 날벼락 같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대신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곤 평생 처음 용기를 내어 전 재산을 정리한 후 헬기를 타고 생애 가장 특별한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체코의 카를로비바리. 독일과 체코의 국경이 맞닿은 이 도시는 곳곳에서 온천수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이색 풍경의 휴양 도시다. 1358년, 당시 신성로마제국 황제이던 카를 4세가 사냥 중 다친 사슴이 온천수에 몸을 담가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본 후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고. 그 후 간 질환과 소화기계 질환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지며 베토벤, 쇼팽, 괴테 등은 물론 오늘날 마이클 더글러스와 우피 골드버그 등 유명인이 즐겨 찾는 명소로 거듭났다.

붉은 사막의 치명적 유혹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나미브사막

30년 만에 속편으로 돌아온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이 영화 역시 다른 시리즈처럼 호주 사막지대에서 촬영을 앞두고 있었으나, 폭우가 쏟아지면서 계획이 틀어졌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마르지 않는 사막에 각종 동식물까지 번식하기 시작한 것. 영화의 주 배경인 ‘핵전쟁 후 황폐화된 22세기 지구’를 구현하기 위해 차선책이 필요했고, 국토의 80%가 사막인 나미비아가 낙점되었다. 나미비아 국토의 반을 차지하는 나미브사막은 사하라사막보다 훨씬 전에 생긴,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이다. 넓이만 해도 남한 땅의 1.35배쯤 되는 면적이 전부 모래로 뒤덮여 압도적 스케일을 자랑한다. 끝도 없이 펼쳐지는 사막 풍경을 더욱 특별하게 해주는 건 철 성분을 함유해 붉은빛을 띠는 모래. 태양 아래 붉게 타오르는 사막의 유혹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