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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철도사 연재는 청사에 남겨진 옛 이야기를 골라 소개하되, 가급적 현지를 직접 답사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장감을 가미하고자 한다. 연원에 대한 설명도 간결하고 분명해야 할 테지만, 방점은‘실지 답사의 생생한 감각’에 둘 생각이다. 부디 본 코너가 읽는 이들에게 철도교통사를 바라보는 좋은 창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조그맣고 단출해도, 쓰는 이의 자의적 필터를 씌우는 일 없이 늘 아담하고 투명한 창이 되도록 열심히 닦겠다.

글과 사진 김구현 기자(연구원)

공현진~간성 간 공현진터널.

아침 해가 뜨는 동해북부선

새해인 만큼 우리나라에서 아침 해를 가장 가깝게 맞이하는 옛 철길, 동해북부선 이야기가 어떨까? 동해안을 달리는 7번 국도 주변에 기차가 달렸거나 달릴 뻔한 자리가 점점이 퍼져 있다면 조금은 흥미가 동할는지 모르겠다. 기구한 내력을 머금고 담담하게 긴 잠에 든 옛 철도 부지 위로 새해 첫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해가 뜬다.

동해북부선을 포함한 모체, ‘동해선’ 철도 이름은 일제강점기 중반에 처음 등장한다. 경술국치 이래 총독부에 철도국을 두어 한반도의 철도를 주무르던 일본은 1917년 8월부터 남만주철도주식회사에 운영을 통째로 위탁했다가 1925년 4월에 철도국 직영으로 되돌렸다. 위탁 경영이 해제되고 1927년 8월, 총독부에서 ‘국유철도 12개년 계획’을 내놓는다. 1927년부터 1938년에 걸쳐 3억2,000만 원을 들여 국유철도 5개 노선을 확충하고, 여기에 연결되는 사설 철도 3개 회사의 5개 노선을 매수·개량해 국철에 편입하는 계획이었다.

일본은 이 계획의 목적으로 국방 및 경비 강화, 농림·수산자원·광물 개발과 반출, 일본인 이주 촉진, 만주~한반도~일본을 잇는 교통로 확충을 내세웠다. 또 노선 매수를 통해 사철 회사 중 경영이 부진한 곳에 자금을 지원하고, 국영 철도를 보조하던 사설 철도를 식민정책의 방향성에 맞추어 재편·통제함으로써 자원의 개발, 수탈과 식민 통치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였다. 구한말 이래 일제는 한반도 철도의 군사적·정치적 성격을 강조하며 자국 이익을 위한 술책을 써서 철도를 장악·운영해왔다면, 직영으로 환원한 후 12개년 계획은 군부의 입김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총독부의 관점에서 한반도 철도의 경제적 성격을 더 고려한 흔적이 엿보인다.

여기서 새로 놓기로 한 국영 철도 5개 노선 중 하나가 바로 동해안을 따라 부산과 원산을 잇는 동해선이다. 원 계획상 북부선·중부선·남부선으로 나뉘는데 부산진~울산 구간이 동해남부선이며, 기존 사설철도를 매수할 울산~경주~포항 구간은 동해중부선이라 했다. 그리고 나머지 포항~원산 간 장대한 구간을 동해북부선으로 구분했다. 이후 구간별 개통 진전에 따라 중부선과 남부선을 가르는 기준은 몇 차례 바뀌었다.

동해선 계획의 개관

동해선 부설은 남북 양쪽에서 진행되었다. 남쪽에서는 경부선 부산진을 기점으로 1934년 7월 15일 해운대까지, 같은 해 12월 16일 좌천까지, 다시 이듬해 12월 16일에 울산까지 개통했다. 북쪽에서는 원산 아랫동네인 경원선 안변을 시작으로 구간별 개통을 거듭하며 차차 남하하다가, 1935년 11월에 간성까지, 1937년 12월에 양양까지 철길이 뻗었다. 가운데 동해중부선 구간은 기존 사설 철도가 맞물려 경위가 다소 번잡하다. 이 지역에는 대구~포항~학산 및 경주~울산 구간 148.1km, 궤간 762mm 철도를 조선철도주식회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총독부는 이를 사들여 1928년 7월부로 ‘조선철도 경동선’에서 ‘국철 동해중부선’으로 소속과 명칭을 바꾸었다. 그리고 1936년 12월 1일에 울산~경주를 표준궤로 개축하고, 동해남부선으로 편입했다(부산진~경주 간 동해남부선, 대구~학산 간 동해중부선).

1938년 7월에 대구~영천 간, 1939년 6월에는 영천~경주 간이 뒤따라 표준궤로 전환되었으며, 후자에 맞춰 영천~경주 간은 중앙선(경경선)을 이루고, 떨어져 나간 대구~영천 간은 대구선이 되었다. 가장 늦게까지 협궤이면서 동해중부선으로 남아 있던 경주~포항 간은 광복 직전인 1945년 7월 10일에 표준궤로 바뀌는데, 이때 부산진~포항 간이 동해남부선으로 통합되고 중부선의 이름은 사라졌다. 그러나 후대의 시각으로 볼 때 동해안에서 철도가 없는 포항~삼척 구간이 위치상 중간이기에, 본래의 역사적 명칭과는 달리 이 구간의 건설 사업은 오늘날 동해중부선으로 불린다.

철길이 개통되지 않은 양양과 포항 사이에도 공사가 많이 진척된 구간이 여러 곳 있었다. 포항 북쪽으로 송라면까지 22.9km 구간, 양양 이남으로 강릉과 옥계를 거쳐 북평(지금의 동해)까지 140km 구간과 삼척 남쪽의 동막~용화 8.2km 구간 등이 1940년대에 노반을 완공하고 궤도 부설만 남겨둔 단계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일제는 모자라던 자원을 경부, 경의선의 복선화 등 자기네가 가장 긴요하게 여기던 사업에 우선 투입하였으니, 동해선을 비롯한 다른 여러 공사는 중단되거나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해방을 맞아 동해선은 북부선과 남부선, 그리고 그 사이 상당 구간에 텅 빈 노반을 남긴 채 건설이 중단되었다.

남과 북이 갈라서던 무렵에는 동해북부선 안변~양양 전 구간이 38도선 북쪽에 속했기에 북측에서 열차를 운행했으며, 시각표에 따르면 운행 편수나 역간 운전 시간은 일제 때와 대동소이했다. 이 철길이 큰 피해를 입고 우리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계기는 두말할 바 없이 한국전쟁의 치열한 공방 때문이다. 북한 측 수송로를 차단하기 위해 미 해·공군은 동해북부선에 화력 투사를 집중했기에 교량과 둔덕 곳곳이 무너지고 끊겼던 것이다.

휴전 이후 남한에 속하게 된 양양~초구 구간은 되살아나지 못한 채 하릴없이 풍화될 따름이었다. 근래 드러난 문건에 의하면 1955년에 옛 동해북부선의 레일과 교량 상판 등 철도용품을 철거·반출해 영암선(영주~철암) 건설에 사용한 정황이 있다. 정리하면 굴곡진 근현대사를 오롯이 반영한, 그리고 오늘날에는 경의선과 더불어 대륙을 향한 꿈이 투영된 남북 철도의 양대 화신으로 세간에 오르내리는 옛 동해북부선이다.

남쪽에서는 경부선 부산진을 기점으로 1934년 7월 15일 해운대까지, 같은 해 12월 16일 좌천까지, 다시 이듬해 12월 16일에 울산까지 개통했다. 북쪽에서는 원산 아랫동네인 경원선 안변을 시작으로
구간별 개통을 거듭하며 차차 남하하다가, 1935년 11월에 간성까지, 1937년 12월에 양양까지 철길이 뻗었다.

더듬어보는 철로 위의 기억

포항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가며 동해선의 기억을 차례차례 더듬어본다. 포항 지역에서는 1940년대에 조성한 노반과 구조물 흔적을 아직도 찾아볼 수 있다. 옛 포항역에서 공원 산책로가 된 철도 부지를 따르다 짧고 긴 터널을 하나씩 지나면 흥해역, 다시 터널 두 곳을 넘으면 청하역이었다. 하천에는 원통형 또는 타원형 콘크리트 교각이 태연히 늘어섰으며, 흥해읍과 청하면의 옛 정차장 예정지에는 철도역 형상을 띤 부지에 플랫폼을 이루는 연석이 새삼스럽다. 뚜렷하던 노반의 흐름은 송라면에 들어서 어물쩍 사라지고, 고가 위 새 철길을 따라 영덕을 오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무심히 그 자리를 지난다. 울진, 영덕 일대는 1940년대 공사에 착수하지 못했으나 철도 놓을 부지는 확보해두었기에 그 땅이 국유지로 전해져왔으며, 더러는 택지 개발에 이용되기도 했다. 강원도 삼척으로 넘어가면 산지가 해안으로 곧장 치닫는 험준한 지형이 이어지며, 그 중심에 있는 옛 동해선 동막~용화 구간 노반은 수려한 풍광에 힘입어 과반을 레일바이크로 활용하고 있다.

삼척선 구간을 건너뛰면 동해(옛 북평), 그 다음이 묵호다. 묵호항은 1940년대 철암 일대에서 개발한 무연탄을 일본으로 빼내기 위해 축조한 항만이다. 철암과 묵호항을 잇던 옛 삼척철도주식회사 노선은 광복 후 국유화되고, 나중에 영암선(영주~철암)과 이어졌다. 1960년대에는 묵호에서 옥계를 거쳐 경포대까지 ‘동해북부선’이 뻗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말 쌓은 이래 방치되던 옛 노반을 보강해 철로를 놓은 것이다. 이들 세 구간이 합쳐져 오늘날의 영동선이 되었다. 1979년 4월 경포대역이 폐지되면서 종점이 강릉역으로 후퇴해 현재에 이른다.

경포대 해변은 누구에게나 열린 곳이지만, 옛 경포대역 터는 리조트가 들어서 아무나 드나들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 동해북부선은 해안을 따라 북상해 사천진역 예정지에 잠시 머물렀다 연곡천을 건너 주문진에 접어든다. 철둑길이라 이름 붙은 골목 주변을 잘 뒤져보면 주문진 정차장 부지의 플랫폼 흔적을 볼 수 있다. 옛 철길은 논밭으로, 집터로, 소나무 숲으로 변화무쌍하게 모습을 바꾸며, 하천을 건널 때면 철교 양쪽 끝단 교대(橋臺)를 단서로 흘리면서 꾸준히 발길을 지시한다. 남애리 해변을 낀 임호정 정차장, 죽도 해변 옆 인구 정차장을 거쳐 38선휴게소 부근에서는 드높은 철둑과 교대를 위시로 기찻길다운 면모가 제법 강렬해진다.

하조대가 가까운 광정 정차장 부지를 떠나면 양양읍을 목표로 양양공항을 크게 감싸는 유장한 곡선을 그리는데, 통행이 뜸한 바닷가와 구릉지를 넘실거리며 유유히 지나는 옛 철길이 선형 그대로 농로가 되어 거닐다 보면 독특한 운치가 있다. 이 구간에는 장존(長存)터널과 노고(老姑)터널이 있다. 터널 이름조차 옛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배어나는 것처럼 아련하기만 하다. 읍내를 앞두고 건너는 양양남대천철교는 본래 길이 629m, 중간 교각 27기가 있는 장대한 규모였다. 지금은 남쪽 끝단 교대만 덩그러니 남아 강안을 지킬 따름이다. 양양부터는 하루 네 차례 원산을 오가던 동해북부선 열차의 기적 소리가 실제로 메아리치던 구간이다. 대관령을 넘는 육로가 미비하던 당시, 강릉·속초 등 영동 지방에서 서울로 가려면 양양으로 와서 동해북부선과 경원선을 통하는 여정이 보통이었다. 동해북부선이 운행하던 때 영동 지방의 관문이나 다름없던 양양역은 규모가 상당하던 보통역으로, 7동 14세대의 철도 관사가 있었으니 상주하는 역원 수도 꽤 많았을 것이다.

역 주변에는 상점이 구색을 갖추어 꽤나 흥성이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양양 장승리에 위치한 철광산에서 양양역까지 화물열차가 철광석을 실어 날랐다. 이 지선은 일제의 비호를 받으며 우리나라 곳곳에 공장을 세우고 사업을 영위하던 종연방적(鐘淵紡績, 가네가후치 방적) 계열 사업자가 1943년 5월 24일 면허를 받아 놓은 전용철도다. 동해북부선이 양양까지 우선 들어올 수 있었던 데는 이곳 철광석을 군수물자로 수탈하고자 함이 한몫했을 것이다. 아직도 당시의 플랫폼이 남아 있는 청동리 양양역 터를 출발한 열차는 좌우로 굽은 곡선을 따라 구릉을 가르다 마침내 짙푸른 동해 바다를 마주한다. 낙산연수원 자리를 지나면 낙산사역이다. 강현파출소 뒤편이 그 자리로, 이곳에도 아직까지 플랫폼 일부가 남아 있어 몹시 기껍다.

강폭이 제법 큰 물치천과 쌍천을 연달아 건너고 산기슭에 올라타 대포항을 내려다보며 가다가 대포역을 지난다. 속초 시가지에서는 청초호를 둘러싸듯 지나갔는데, 기찻길 자리는 시내 도로가 되었다. 지역민의 추억과 애환이 깃든 옛 속초역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으나 속초시립박물관에 당시의 속초역사 모습을 고증해 전시해놓았다. 토성면 천진초등학교 옆이 천진리역, 다음은 철도역 모양을 닮은 자국이 농토에 선명한 문암역이다. 문암역 앞에는 역원이 기거하던 철도 관사 두 채가 지금도 남아 있다. 철길은 희미할지언정 쉽사리 끊이지 않는 가늘고 긴 자국을 남겼다. 아름다운 송지호에 발을 담글 듯 가깝게 스쳐간 후 공현진역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머잖아 공현진터널(길이 140m)을 지나고 7번 국도 옆으로 붙은 다음 간성읍에서 북쪽으로 진로를 꺾으면 간성역이다. 생생한 플랫폼 흔적을 바라보며 다시 출발해, 점차 전방다운 분위기가 짙어짐을 느끼며 적막한 산야를 달리다가 거진읍에 들어서면 약간의 활기나마 새삼 반갑다. 거진역과 현내역 자리에는 흔적이 없지만, 현내역 북쪽 무송터널(115m)과 봉현터널(358m)은 제자리에 그대로다. 최북단 해수욕장이 있는 명파리를 지나면 동해북부선 옛길은 더 이상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 너머로 사라져버린다. 멀지 않은 곳에 동해선 남북 철도 연결 사업으로 만든 제진역이 있다.

미래를 향한 주도적 태도, 철도와 함께

여러 매체에서 가장 흔히 묘사하는 동해북부선의 이미지는 굴절된 과거를 넘어 평화와 화합의 미래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다. 지당하고도 필요한 시각이라 할 만하다. 다만 이제부터는 ‘언젠가 복원해야 할 대륙 철도’라는 일회성, 단편적 인식으로 치부하기보다는 동해선을 포함해 남북한을 아우르는 한반도 철도의 어제와 오늘에 복합적이고 다채롭게 깃든 수많은 성격과 표상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더 늘어났으면 한다. 남북 철도를 대하는 관점이나 온도 차가 어떻든 상관없이 말이다. 자포자기나 당리당략을 버리고, 과거 반추를 통해 얻은 균형 잡힌 지혜로 임할 때 우리가 바라는 주도적 미래가 열릴 것이다.

요즈음 동해북부선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 커졌다. 그러나 누구도 알아주는 이 없는 옛날부터 일찍이 동해북부선의 유구에 묘미를 느끼고, 이를 세상에 알리는 데 공들인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존경하는 나의 벗과 선배들을 비롯한 선행 답사가이며, 나도 그 길을 뒤따랐음이다. 새해를 맞아 나는 그분들이 때로는 진지한 얼굴로,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사회 각지에서 암약(?)하며 이 세상에 건강한 위트를 더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그랬으면 한다. 지구의 공전궤도에는 시작도 끝도 없다. 연도 끝자리가 바뀌었지만 새해 첫날은 작년 말일과 다를 바 없다.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두면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시간을 크고 작은 주기의 틀로 묶어놓고 재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더 나은 미래를 희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금 새 주기에 접어든 이때, 동해선 너머로 떠오른 새 햇살이 이 글을 보는 모든 분들의 생명력을 일깨웠으면 한다.

간성역 플랫폼. / 주문진 정차장 예정지 플랫폼. / 문암역 7등갑, 7등을 연립 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