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Friendly, PDF & Email

언제부터일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비난받고 마스크가 없으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현실이 되었다. 사방에서 위협해오는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거리를 두며 살고 있다. 열차를 타면 표정을 알 수 없는 승객들이 빼곡하고, 철도역에 가면 마스크 착용 문제로 입씨름하는 직원들이 곳곳에 눈에 띈다. 사람과 온정을 주고받으며 미소를 통해 대화하는 소중함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글과 사진 김정석(수도권광역본부)

2020년 한 해는 그렇게 보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 어쩔 수 없이 사람 냄새를 멀리해야 하는 마음 아픈 한 해를 보냈다. ‘안전’이라는 명분 아래 거리 두기를 정당화했지만, 그래도 마음 한쪽이 쓰라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해 마스크 한 장 구하기 어렵던 3월경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서 마스크를 쓰는 것이 무례하다는 말을 들을 법도 했고 감염으로 지역 곳곳이 떠들썩한 상황에서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친척들과 우리 집안 사람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스크를 쓰고 할아버지를 보내드렸다.
그리고 나에겐 또 하나의 큰일이 남아 있었다. 평생을 함께 온정을 나누며 살아갈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 딱딱함과 정교함의 집합체로만 알고 있던 철도에도 따뜻한 온정과 포근한 애정이 숨 쉬고 있음을 알게 해준 여인이다.

기관사 시절, 그녀는 틈틈이 내가 운전하는 전동 열차를 탔는데, 100번이 넘게 탔다고 자축하기도 했다. 나의 직업이나 사명은 물론이고 나 자체를 사랑해주는 사람과 영원을 맹세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한폭탄과도 같은 코로나19 확산이 지속되면서 결혼 일정을 고민하는 지인들을 보았고, 모르는 사우의 결혼식 연기 소식이 들려올 때면 남의 일 같지 않아 안타까웠다. 그때마다 마스크 안쪽으로 한숨을 머금은 뜨거운 공기를 내뱉곤 했다.

타인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시기에 결혼식을 진행한다는 것은 어느새 우리나라에 암묵적으로 생긴 규율을 위반하는 일탈 행위와도 같았다. 더군다나 안전환경처원이 되면서 안전이라는 사명감을 더욱 크게 가져야 하는데, 자칫 위험할 수도 있는 집합 행사를 벌인다는 것은 오랫동안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시련과도 같은 선택의 길목에서 문득 그녀의 얼굴을 봤다. 마스크로 얼굴의 반 이상이 덮여 있어도 나를 향해 웃음짓고 있음을 느낄 수 있고, 점점 더 각박하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따스한 애정이 담긴 눈빛을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그녀였다. 이를 생각하니 더 이상 결혼을 미루고 싶지 않았다.
마침내 9월 5일,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가 격상되던 시기에 예정된 결혼식을 진행했다. 하객도 많이 모시지 못했고 마스크를 쓴 채 인사를 드리게 되었지만, 축하를 표하는 눈빛만큼은 확실히 전달받았다. 영원을 맹세하는 자리에서 나의 신부는 마이크를 들고 직접 개사한 축가를 불렀고, 하객이 가득 찬 홀 부럽지 않은 박수를 받았다. 이날을 위해 열심히 준비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느덧 찬 공기가 감도는 겨울이 찾아왔다. 업무적으로는 4분기도 끝나간다. 코로나19 확진자 개개인의 행적이 상세히 공개되고 안전 안내 문자 하나에 긴장하던 때와 달리 확진자 수는 더 늘어가고 있는데도 람들의 관심은 점점 무뎌져간다. 그래도 마스크는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 규칙이 되었다.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0년 주요 교육은 사이버로 전환했으며, 비상 대응 훈련은 도상 훈련으로 진행했다. 비대면으로 인한 직원 간의 제한적 교류로 그 어느 때보다 아쉬운 한 해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마스크로 무장하고 빠른 발걸음으로 집에 가는 길이 허전하지만은 않다. 이는 어쩌면 코로나19로 인한 어렵고 힘겨운 시기 속에서도 일과 사랑을 모두 쟁취했기에 느낄 수 있는 승리자의 위풍당당함 때문이 아닌가 싶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결혼반지를 끼는 것이 마치 월계관을 쓰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나 혼자라면 절대 누리지 못했을 감정이었기에 아내에게 더욱 고마움을 느낀다. 아무리 힘든 시국이라 하더라도 일은 물론 사랑도 쟁취해 승리했노라 기뻐하며 한 해를 마무리한다.
그 모든 순간마다 감사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사명을 잊지 않으며 새해를 시작한다. 또 내 곁에, 내 주위에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온정을 물씬 느끼는 2021년이 되기를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