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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팬톤 컬러인 생생한 노란색과 함께한

장성 노랑마을 여행기

코로나19로 코로나 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 및 무기력증)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진 요즘, 옛 추억과 사람들의 따뜻한 정이 그 어느 때보다 그리워진다. 모처럼 쉬는 주말, 부모님과 함께 조용한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광주에서 자동차를 타고 약 1시간 이동하면 도착하는 장성군 노랑마을. 팬톤이 발표한 2021년 컬러가 ‘생생한 노란색(일루미네이팅)’이라던데, 정말이지 화사하고 상큼한 노란색이 가득한 마을이었다.

글과 사진 김현아 기자(광주전남본부)

온통 노랑, 생기가 가득한 마을 속으로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도 사실 직장 생활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이번 여행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괜스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에 마음이 뭉클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2019년 초만 하더라도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는데, 지금은 마스크 없이는 거리를 돌아다닐 수조차 없으니 답답하기도 하고 아쉬웠지만 안전을 위해서는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야 하기에 꼼꼼하게 방역을 한 채 출발했다.
장성군이 농촌 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통해 작은 옐로 시티로 재탄생시킨 북하마을은 노랑 표지판, 노랑 간판, 노랑 카페 등 어느 곳 하나 노랑이 빠진 곳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곳을 노란색으로 칠해 왠지 모를 생기가 느껴졌다. 노란색이 주는 특유의 밝음, 따뜻함, 정겨움 등의 느낌과 추억을 되새기게 만드는 레트로스러움이 어우러져 코로나19로 우울하던 마음에 활기가 도는 것 같았다.
주말에 이렇게 평화롭게 거리를 걸어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사람이 별로 없기도 했고, 한적한 시골길을 부모님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다 보니 골목길 어귀에서 눈을 즐겁게 하는 예쁜 스토리텔링 벽화들을 발견했다. 여수, 부산 등 유명한 벽화마을에는 가봤지만 장성의 벽화마을은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이끌리듯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약수마을에서 만난 옛 시절의 추억

약수마을은 말 그대로 마시거나 몸을 담그면 약효가 있는 샘물인 약수(藥水)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약수가 사람의 병을 치료하는 데 효험이 있다는 옛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약수는 말뜻처럼 정말 특별한 효능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들면서 약수터에만 가면 꼭 약수를 한 잔씩 마신 것 같다. 물을 마시려고 줄을 서서 기다릴 때 나는 앞사람이 어느 쪽으로 물을 마셨을까 고민하다가 항상 손잡이 달린 쪽으로 마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은 모두 나처럼 생각해 손잡이 달린 쪽으로 마시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요즘처럼 환경오염이 심각하지 않아 깨끗한 물을 그대로 음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약수터가 음용 부적합 판정을 받는다고 하니 안내판을 잘 확인하고 마셔야겠다.
골목 벽화의 테마는 약수마을에 사는 철수와 영희의 약수장 이야기로, 약수마을에서 함께 자란 둘은 결혼한 후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하지만 마을을 떠나 도시에서 살다 보니 고향이 그리워진 철수와 영희가 약수마을을 회상하는 이야기다. 고령 사회에 진입한 우리 시골 마을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벽화에선 미완성의 스토리로 결말을 그려놓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시골에 살아본 적이 없어 고향을 그리워하는 철수와 영희의 마음을 100%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시골에서 자라 현재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는 부모님께서는 공감이 된다고 하셨다. 은퇴한 후 시골에서 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고 하시는 부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나와는 다른 것 같다는 생각과 요새 귀촌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라 시골 마을이 어떻게 변화할지 괜스레 궁금해졌다. 방앗간을 그린 벽화를 보니, 어릴 때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들기름 짜러 방앗간에 가시던 할머니를 따라나선 기억이 떠올랐다. 걸어서 방앗간에 가면 기다리는 동안 아주머니가 바로 뽑은 따뜻한 가래떡을 주시거나 기다란 절편을 주신 기억이 난다. 어릴 때는 꿀이 들어 있는 꿀떡을 주시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나고 나니 그게 다 시골 사람들의 정이었다. 고마운 줄 모르고 지나왔단 생각에 특유의 고소한 방앗간 냄새와 인정이 그리워졌다. 동심으로 돌아가 그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 바퀴를 돌았다. 부모님의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일으켜 잔잔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마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벽화. 간판 역시 벽화로 만든 점이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학림마을의 전설, 그리고 인생 사진

다음은 옛날 냇가 옆 숲에 학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인 학림마을로 향했다. 정확한 마을 역사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내 엄청 큰 정자나무를 보니 새삼 신기했다. 엄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 동네에도 이런 정자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거기서 하교 후 자주 놀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런 큰 정자나무를 보면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오른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런 큰 나무를 보니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자나무는 마을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줄 뿐만 아니라, 추억을 회상하게 해주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림마을에는 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이어져오고 있다. 숲에 나무하러 간 남자가 활에 맞아 울고 있는 학을 구해주고 정성껏 치료를 해줬다. 이후 남자 집에 아름다운 처녀가 찾아왔고, 둘은 첫눈에 반해 함께 살게 되었다. 여자는 매일 베를 짜고 남자는 그 베를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을 이어갔다. 사실 남자가 구해준 학이었던 여자는 자신이 베 짜는 모습을 절대 보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남자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해 그 모습을 몰래 봤고, 여자는 남자가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한 탓에 다시 학이 되어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새삼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인간의 심리가 발동했구나 싶었다. 하지 말라면 하지 말아야지,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도 그렇고 옛날이야기에는 이런 스토리가 많은 것 같다. 뭐, 사람의 심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지만. 만약에 나라면 꼭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잘 지킬지는 모르겠지만)
학을 떠나보낸 안타까운 사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이 마을에 천사의 날개 벽화가 새겨져 있는 듯하다. 이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마치 이야기 속 여자가 된 듯한 마음으로 포즈를 취했다. 인생 사진을 건지려면 100장은 찍어야 그중 2~3장 정도를 건진다던데, 결국 나도 그만큼 사진을 찍고서 인생 사진을 건졌다! 사우들도 이 마을을 방문한다면 사진을 꼭 남겨보길 바란다. 답답하던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거리 두기를 실천하며 다녀온 작은 마을. 벽화에 담긴 이야기를 보니 고전을 읽는 듯 재미도 쏠쏠했다.
다음에는 4색 마을로 불리는 곳 중 아직 가보지 못한, 용의 전설을 담은 화룡마을, 곶감과 호랑이 이야기를 그린 중평마을까지 가봐야겠다. 장성 하면 백양사, 남창계곡 말고는 가볼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는데,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아쉬운 노랑마을에 다녀올 수 있어 아주 행복했다.
코로나19로 지친 심신의 우울감과 무기력함을 날리고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철수와 영희의 추억과 함께 펼쳐진 약수마을.

학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고귀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동물이며 무병장수를 상징한다. 학림마을에는 예부터 전해지는 ‘베 짜는 학’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